사는 이유

'나' 처럼 살자는 안된다!

참 나 2007. 11. 13. 11:47

사람의 삶에 목적이 있는가? 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나누어 생각해 봅니다.  

 

1.개인의 <목표>

2.그가 속한 집단의 <목적>

3. 인류의 <목적>

 

먼저, 개인의 삶에서의 '목표' 는 각 者에게 맡기면 됩니다.  '남의 사생활' 이니까요. 

각 개인은 모두 다 자기 삶의 주체요, 삶은 자기책임... 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하나님 조차도 개인이 원치않는 간섭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다음, 어떤집단의 '목적' 이라면, 애초에 그 집단을 구성한 '목적사업', 즉 이익이나 친목 등을 추구하면 됩니다. 

그 목적에 어긋나는 짓들은 용납되지 않겠지요. 

 

'인류' 의 목적은 당연히 '유전자의 보존' 이겠지요.

여기서 김아무개, 이아무개...하는 개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자건 여자건, 영재건 둔재건...'사람의 씨' 만

퍼뜨려 주면 개인으로서는 할 일을 다 한 것입니다.  개인은 자신의 씨를 퍼뜨리는 의무를 충실히 해야 합니다. 

 

각 개인은 자신의 '주특기' 에 맞춰서 삶을 영위하면 됩니다. 

지게꾼이나 사기꾼이나 철학자나 각자 자신의 영역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육의 이상인 것입니다.

사람마다 그 재주가 다 다르니, 섣불리 '나 처럼 살자' 라고 말할순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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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목적, 인생의 목적' 을 정했다면... 이제 그 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장, 내가 지금 하는 일,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하는 일부터 그 목적이라는 잣대로 재어야 겠지요?    

이제, 그렇게 걸러진 삶들은 쓸모없고 무가치한 것이 되나요?   쓸모 없는 것, 목적에 어긋나는 '삶/행위'... 라면

다 쓸어 없애야 할까요?


'목적' 이란 단어가 그런 무시무시한 폭력적인 내용을 갖고 있습니다.  '철학폭력'

어느 인간 (神이 아닌 주제에...!) 이 감히 생명의 '쓸모' 를 말하리오?  세 잎/네 잎 클로바도, 도토리도... 그것이 누가

만든 것이관대...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사는 목적' 운운하는 자는 필시 사이비종교의 교주가 아니고 무엇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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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을 정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

목적을 정했다면 그것은 '반드시 달성' 해야 합니다.  목적이란 단어는 '반드시 해야 한다' 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굳이 '목적' 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겠지요)   

 

'사랑' 또는 '자비...?'

이것은 듣기 좋은 개념이긴 하나, 사람이 '사는 목적' 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습니다. 과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것은 목적달성 불가능...입니다.  인류의 영원한 꿈과 理想, 가치추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애들도 알고 있을 법한 그런 내용을, "우리 모두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적(!)" 이라고 말한다면 '픽~' 하고 콧방귀를

뀌고 말 것입니다.

 

너무 순진한, 사고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랑과 증오, 전쟁과 평화는 마치 낮과 밤처럼 서로 뒤엉켜 돌아갈 때, 그것이 정상(!)이며, 건강한 모습인 것입니다.   

증오,전쟁,갈등,시련 이런 개념들은 없어져야 할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사랑과 평화...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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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굳이 '사는 목적' 을 알려고 하는가?

나 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궁금하다...혼란스럽고 자신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우리는 '목표(비젼)' 가 뚜렷하고,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을 때,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자신있게 일을 해 치울 수

있습니다.

'목표/목적' 이 뚜렷하면 일 하기가 (또는 살기가) 쉬워 집니다.  그러나 목표나 목적이 불확실한 때는 뭘 해야 한다는

것인지, 하긴 하는데 잘하는 건지 못하고 있는 건지... 어딘가 묻고 싶을 때가 있을겁니다.  마치 점쟁이 한테 묻기라도

하듯이...  그럴때, "우리는 왜 사나요?" 와 같은 목적을 찾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 주체적 삶이 아니고, 남이 주는 목적에 따라서, 시키는 대로, 편하게, 살고 싶어하는 의타적 삶의 모습입니다.  

결과가 잘못되었을 경우, 그것을 말해 준 사람을 탓하고자 하는 '나약한 마음' 의 소산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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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완성' 도 마찬가지 입니다.

완성이라니? 완성을 어떻게 판단한다는 말인가.  깨달음, 완성... 이는 주변에서 붙여 주는 '명예스런 호칭' 일 뿐입니다. 

본인 스스로 "나, 깨달았소!"  하거나 "나, 이제 완성되었소!" ...이는 과대망상이며, 있을 수 없습니다.  

'목적' 이란 일단 정해지면, 모든 사람이 반드시 그것을 달성해야 하고, 달성여부 또한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영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기에는 현실성이 없습니다. 

 

설사, 영혼이 완성되고 해탈이 되었다 치더라도 '삶' 이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영혼완성, '목적이 달성'  되었다 해서 인류의 삶이 그만 둘 수는 없습니다.  

'영혼의 완성'...이란 추상적인 얘기 입니다. 사람들이 '영혼'이 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완성합니까.   

삶/ 생명은  자연의 영역인데,  자연은 존재코자 할 뿐이요, 목적이 없습니다. 무위 (無爲,), 억지로 함이 없다, 

목적이란 인위(人爲)다, 사람 만이 이런 걸 묻는데, 뭘 좀 (잘)해 보고자 하는 의지요 욕심이란 것이다,


덧붙여, 만물이 내재한 내 안의 '意識(의식/알아챔/주/하나님)'은 이미 완성인 것입니다. 더 나아질 대상이 아니다,

나, 너, 우리 모두, 만 생명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참 나(순수의식)다, 그 사실을 먼저 깨달은 후, '자아'를 다스리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