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유

목적과 목표의 혼동에서 온 질문의 오류

참 나 2007. 1. 31. 11:36

사람은 왜 살까요?

사람들이 하는 일들은  '한가지 목적' 에 귀결됩니다. 

그것이 다  '살자고 하는 일'  이란 것입니다.

사는 것, 살아 존재하는 것...그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거기에 인간의 욕심이 들어서면,  '잘' 먹고 '잘' 산다 가 될 것이고,

탐욕이 생기면... '남 보다' 더 잘 먹고 잘 산다 가 되어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유명한 임상심리학자 '에릭프롬' 은   쾌락추구 행위는 통상적 만족은 고사하고  '정신파탄' 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즐거움의 추구'  그 또한 마찬가지란 생각입니다.  

 

"어떻게 살 것이냐?..." 는 삶의 '목표' 를 묻는 것이지요?

각 자 알아서 살면 되는 것이지요. 때론 어떤 리더가 이런 저런 방향으로 우리들 삶을 이끌 수도 있을겁니다. 어쨌든 나름대로 구구절절 사연들이 있을 터이니 스스로 알아서 산다는 것이 정답일 겁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

목적추구의 행위란... 그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 더 이상 지향할 바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목적이 달성되었으니...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삶, 생명은 어디까지나 '지속된다' 고 하는데 그 '궁극의 가치' 를 둡니다. 끊김이 없이.

따라서 '특정의 목적' 따위를 정해 놓고 한시적으로  영위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담 "왜 살려고 하는가?" 

이 질문은  어린아이들이 말꼬리를 잡듯이 집요하게 반복하여 왜?...왜? 를 되묻는 행위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질문: 너는 왜 그걸 알려고 하니?  

대답: 궁금하니까? 알고 싶어서...

질문: 그것이 왜 궁금하냐?  왜 알고 싶으냐?

대답: "  ... ... ... "

 

"왜 사느냐? " 는 질문은  '끝' 이 되어야 할 부분에다 "왜?" 를 한 번 더 붙인 것이다...  '가장 큰 數' 가 있다고 했을 때, 거기에 1을 더해서 그보다 더 큰 수를 만들듯이 말입니다.   

 

'목적' 이란 단어는, 만들었거나 창안해 낸 그 주인만이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목표' 란 단어는 보다 짧은 구간에서 각자 나름대로의 삶의 지침이나 방향을 묻는 것입니다. 다분히 개인적인 것이겠지요.  이 두 단어의 뜻을 자칫 혼동했을 때, 사람은 왜 사나요? 처럼 목적의 목적을 묻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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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목적이 있다...고 했을 때, 그 때 설명되어진 '목적' 이란 것은 칼 포퍼가 말하듯이 '반증가능한 것' 이어야 합니다.  부질없이 영혼을 얘기하던지, 신을 얘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존재' 란 죽어 본 사람만이 '거 가보니까 틀림없이 있긴 있더라...' 고 말할 수 있을 터인데, 죽었다 살아난 사람 -게다가 證明 제시까지- 은 없으니까, 반증가능한 분야가 아닙니다.  신이나 영혼은... 없다는 증명도, 있다는 증명도 할 수 없는... '반증불가능' 이다... 

 

'무조건 믿어라' 했을 때, 그것은 '신앙' 에 관한 얘기일지언정, 과학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족: 현대과학은 '미완성' 입니다. '양자론' 을 이해하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다...고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주의 시초' 와 '정신현상' 에 대하여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정황상, 신앙의 가치는 그 실용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신앙' 뿐 아니라 다른 그 무엇을 써서라도 시련과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겠지요.

이미 다 아는 부작용들은 경계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