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유

떨어져 봐야 안다

참 나 2006. 11. 20. 15:29

 

아빠...엄마...여보...아무개야...하고 부르며 반가워할 수 있다는 것은  이들과 그간 떨어져 지냈기 때문이겠지요. 

늘 붙어 살았다면 굳이 그렇게 반가워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늘 같이 지내노라면 자연히 에너지를 교환하게 됩니다.
떨어져 살면 그 흐름이 막힙니다.  마치 개천물을 둑으로 막아 놓았다가 한꺼번에 터뜨리듯 하는 모습이 바로 이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의 감정상태가 아닐까요.

 

'떨어져 봐야 안다'


늘 붙어 있는 것은 그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사람이고, 돈이고, 그 뭣이건 간에...

삶과 죽음이 또한 그런 짝일 거란 생각입니다.  늘 살고 있으니 삶이 반갑기는 커녕 지겹기도 하고, 도대체

왜 살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니 삶에서 좀 떨어져 볼 필요가 있겠지요.  그 기회란 것이 무얼까요.

 

병에도 걸려 봐야 합니다. 죽을 병만 아니라면...
사고로 죽음 문턱 까지 가 본 사람이라면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겠지요?
(저는 절체절명의 죽을 뻔한, 주로 부주의로 인한 교통사고 경험을 그간 예닐곱번은 족히 겪었습니다...) 

 

비행기가 돌연 난기류에 휩싸이고 오르락 내리락 할라치면 승객들은 그만 자지러진다고 하지요? 

(장인어른은 지난 일들이 스크린 위에서 휙휙 펼쳐 지나가더라고 얘기를 하더구만...)

그런 임사체험을 해 본 사람들은 대개 착해지고, 남에게 베풀줄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안 그런 사람도 있음)

그러니 삶이란 사람이 반갑다... 세상만물과 만나서 반갑다...그런 '기꺼운 감정' 이 바탕에 깔려 있을꺼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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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

나의 '정체성' 에 관한 심대한 질문이지요?

내가...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란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일까... 잘하면 얼마나 잘하는 것일까...

그러한 '객관적 기준'이 무엇인가.

'우물안 개구리' 는... 내가 누군지 절대로(!) 알 수가 없지요. 그런 질문이 성립할 수 조차 없겠지요.

세상에 '나 혼자' 뿐이라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비교할 대상이 없다...아니, 비교할 필요 조차도 느낄 수 없다...

남과 어울리고 지내봐야 비로소 나의 정체성이 드러납니다.

잘난 놈과 못난 놈이 두루 다 자기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역할을 수행하는 본인은 채 

알지도 못합니다.   
세계화의 물결...내 것을 내 줘야 하지만 내 놓음으로써 남의 것을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비약이 되겠습니다만...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는 이치가 또한 이런 것이다, 주제넘은

설명을 붙여 보기도 합니다.

1(하나) 이 어느날 '자신을 닮은 2(둘)' 를 복제합니다,
그 둘 사이에는...서로를 의식, 소통하는 3 (셋) 이라는 현상이 생깁니다.
1 은 하나님(자연/god)...2 는 인간(만물)... 3 은 영성(파동)...이되어 '삼위일체(trinity)' 를 이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