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察人事

삶에 정답을 둘 수 없는 이유...

참 나 2004. 6. 7. 10:15

우리가 사는 목적...이나 삶의 정답이 있느냐... 또는 사람이 완전하냐...이러한 생각들이 철학, 관념적 유희에 그칠 뿐 실제로 삶의 방향타로서 유용한 역할을 하는 것을 보기는 힘들다...는 면이 아쉽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피부에 닿아 있는 일들이 중요하니까요...

 

종교적 대답도 있지만 종교는 믿음...이지요.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한 것은 '믿는다' 고 하지 않고 '내가 안다...' 고 합니다.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고 날이 밝는 것을 '믿는다' 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알고 있다...고 하지요. 종교는 원하는 사람들끼리 '믿으면서' 정신적 위안을 삼는 겁니다.  남들이야 뭐라 하건 말건...

 

삶의 정답이 있느냐?...사는 목적이 뭐냐?... 흔한 질문이죠.


여러 지식들이 이 문제에 접근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었다고 봅니다. 
즉, 사람이 사는 목적은 모든 짐승들...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죽는 날 까지 '존재하는 것 뿐...' 이다.  그 밖에 행복을 추구...하거나 사랑한다거나... 영적인 완성을 해야 하고.... 절대 神 을 믿고...  그런 것들은 '개인적 관심사' 일 뿐이다.

 

'그런 목적이 달성되었다면 죽을 수 있겠느냐...?  질문했을 때 '못 죽겠다...' 고 한다면, 그렇다면 더 사는 일, 즉 존재... 하는 일이야 말로 그 뭐라고 말한 목적보다 더 궁극적인 것 아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까?

 

아울러 인류 전체의 목적이 도출 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고요?

법정 스님이 지적하였듯이 '삶...에 정답이 따로 없다' 함이 마땅하다는 것은, 만약 '정답은 바로 이것이다...' 라 하고, 그것에 합의하기에 이르렀다면... 그  다음에  벌어질 일들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런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는 목적은  '바로 A 다...'  라고 하기로 합의했다면 그것과 관계없이 자기나름의 목적을 추구하려는 인생이 압도적으로 많을 터인데 그러한 삶의 모습에 대하여... "쓸데없는 짓하고 있네..." 어쩌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남이 사는 목적에 대하여 어떠한 간섭을 또는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도 책임을 져 줄수도 없음은 분명합니다.  각 자마다 자기 삶에 재미를 붙이는 일들은 다 다릅니다.  거기 말고 여기다 재미를 붙여라...이것이 사람이 사는 목적이니라...하고 말한다면 그 말이 씨가 먹힐까요.  속으로 웃기고 있네...참으로 할일 없는 사람들이네...할 겁니다.

 

대학에 보면 物有本末, 事有始終...이라 했는데, 이 구절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바가 있습니다. 사물에는 근본이 되는 것 과 말단인 것이 있으며, 일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사람이 사는 목적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즉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이러저러한 목적을 갖는 것이지 그 반대로 무슨 무슨 목적과 희망을 위해서 사람이 사는 것은 아니라는 점 입니다.  

 

먹기 위해서 사느냐... 살기 위해서 먹느냐...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다... 당연한 대답이지요.  그렇지 않고 사람이 오로지 먹는 일, 그 짓만 유일무이한 목적일 수 있을까요?  이처럼 우리가 사는 일, 삶이란... 그 어떤 목적을 갖다 붙이더라도 그 수단이나 도구로서 전락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고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 간격을 놓고 보면 그 순간적인 욕구가 워낙 강렬하여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길고 긴(?) 인생을 놓고 본다면 그런 혼란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물유본말 사유시종...이겠지요. 마찬가지로 영적인 완성 이나 철학적 형이상학적인 것에 매료된 사람들은 오직 그런 것만이 진실로 사람이 사는 가치일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 역시 그러한 부류의 취향일 뿐 보편적 삶을 얘기하는 유일한 잣대로 볼 수는 없겠다는 것이고요.

 

어떤 가치관을 정해 놓고 나면...그 기준에 맞지 않는 것들을 비판하고 재단해 내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나름대로 소중한 개인적 가치관...들은 모조리 다 잡것이 되고 만다...  그러니 안될 말이다... 이런 얘깁니다. 

 

개인이 목적을 갖고, 어느 단체나 조직이 나름대로의 목적을 갖는 것은 可합니다.  그러나  인류전체가 하나의 목적을 갖는 것은 不可합니다.  '생명체의 목적' 이라니... 그건 안될 말이지요.   지구나 태양, 우주도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로 봅니다만 (가이아 가설...) 이들의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혹자는 또 '인간은 불완전하다...' 고 말 합니다만...완전함이란 무엇입니까? 눈의 시력이 10쯤 되고 야생동물 처럼 오감이 발달해야 할까요. 사자나 호랑이 처럼 강인하고 민첩해야 하나요? 하나님 처럼 완전해야 하나요?  사람이 동물들 처럼 오감이 예민하고 또 강하다면 인간사회는 성립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지능, 지혜에 맞게 모든 기능이 진화한 것으로 봐야 겠지요. 기억력도 너무 좋으면 미쳐버리겠지요.

 

인간이 완전하면 神...이지요.  인간이 완전하다면 서로 같이 어울려 살 수 없습니다.  각자 스스로 다 들 완전한데 무엇때문에 구태어 어울려 살겠습니까.  만약 신과 같이 완전해야 한다...사람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고 한다면 인간의 실수나 허점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비판이 당연시 될 겁니다.  인간을 비하하게 되는 일...


인간은 누구나 허점 투성이지요.  사람이 하는 일이란 처음엔 대부분 실수가 많습니다. 

실수를 저지르며 시작해서 다듬어 고치고 또 고치고 (日新 日新 又日新...) 이렇게 해서 날로 새로워 지고 점차 바르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나타나서 '인간은 완전해야 한다' 고 주접을 떤다면 이는 '모든 생명체는 오직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고 하는 진리, 그러한 마땅함을 비판하는 어처구니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선 '원죄' 라는 맹랑한 말을 합니다. 

사람에게 어찌 원죄(原罪)만 있으리오?  원선(原善)은 없나요?  '소우주' 인 인간은 모든 가능성을 다 갖고 태어 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의도적으로 '죄' 부분을 클로즈 업(close up) 시키는 수작이지요. 이는 명백한 오류입니다.  내가 직접 짓지도 않은 죄를 자청해서 뒤집어 쓰고 '나는 죄인 입니다' 할 만큼 우리는 어리석어야 하나요?  옳은 것은 옳은 것, 틀린 것은 틀린 것입니다. 똥오줌 못가리고 모두 다 옳습니다...해서는 안되지요. 

 

"원죄란 것, '사악함' 이란 것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 것입니다" 

즉, 본질적인 속성인 것입니다.  어둠을 알아야 '빛' 을 알 수 있듯이, 죄를 알아야 비로소 그 바탕 위에서 선을 행할 수 있기에...필수불가결로 만들어 놓은 장치(선과 악은 상생상멸) 를 갖고서 그것이 엄청난 잘못이라도 되는양 지적해 대는 일은 가소로운 일이며, 명백한 오류인 것입니다. 사람을 신 앞에 무릎꿇게 하려면 그런 조작도 필요할겁니다만...  

 

생명체에는 완전, 불완전이란 잣대기를 적용할 수 없습니다.  계속 바뀌는 모습이 정상입니다.

파리, 개, 고양이, 나무, 꽃을 보고 저것은 불완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우주도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요?  태양계의 모든 행성들도 정원(正圓)이 아닌 타원궤도를 돕니다. 별, 은하들은 서로 부딪치고 깨지고 대파국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그런 우주의 모습들을 불완전하다...고 말할 순 없겠지요?

그러니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있는 모습 그대로만 보아주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옳고 그르고를 따지는 일은 전부 다 이데올로기적인 작위일 뿐이다!


사람이 실수를 하고 헤매고 좌충우돌하고 하는 것도 사람들 끼리 어울려 살자면 그런 모습 이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삶이란 것' 입니다.  거기서 완벽함이나 완전함을 부르짖는 사람이 있다면 무언가 타인을 무릎꿇게 하려는 맹랑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추가:  '처음' 또는 '알(卵)' 은 이미 그 속에 앞으로 펼쳐질 여러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을 창발(emergence)시키기 위하여 우리가 산다.  자신의 내적 가능성...각자 나름대로 고유한 특징적인 요소들을 품고 있는데, 이것들이 드러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지기만 하면 (혹은 자신이 만들어 내면) 그 개체들은 거기에 몰두하면서 재미,행복,보람을 느낄 것이다. '이제 드디어 내 일을 찾았다' 하면서... 이처럼 인간이 사는 이유란, 여러 다른 의견과 함께, 자신의 내적가능성을 현실화 시키는데 찾아야 할 것이다. 

 

2. 모든 작용이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나아간다면, 그것이 도달해야 할 마지막 목표는 모든 과정이 끝난 다음에 비로소 나타날 것인가? ... 아니다. 그 마지막은 그 작용이 시작할 때 이미 본질, 형상속에 들어 있다. 마지막에 나타날 것은... 그 싹이 이미 처음에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처음'은...그 가야 할 길을 제대로 간다면...마지막엔 자기답게 될 것이다. (P.75 '아킬레스는 왜 거북을 이길 수 없을까?' 양운덕. 창작과 비평사) 2005-04-18 10

 

3.  창발논리로 설명하자면 '수소원자' 속에는 이 우주의 프로그램이 모두 다 내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