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察人事

삶이란 '존재' 를 위한 구체적 행위이다...

참 나 2004. 3. 30. 16:34

사는 목적은 무엇인가?...

곤충, 벌레나, 풀/꽃들, 동물들이나 우리 인간이나 hardware 측면은 동일 하다고 봅니다.
세균까지도 유전자 구조를 바탕으로 해서 진화해 나가고 있지요.

생물의 세포에는 유전자란 설계도가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 맞추어서 hardware (외관)가 형성됩니다. 과학자들은 유전자가 자연환경에 맞추어 진화해 가는 것을 밝혀 냈습니다.

우리가 진화해 나가는데 있어서 각 개체가 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개체들은 가능한 많은 다양성을 펼쳐냄으로서 진화하기 위한 (=자연의 선택을 받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種'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별 상관없이 다양성을 펼쳐낼 것입니다. 그 중에서 자연의 선택을 받은 종들은 번성하면서 또 진화해 나갑니다. 자연과 더불어 존재하려면 각 개의 종들은 가능한 많은 다양성을 펼쳐내야 하고, 그 중에서 선택을 받아야만 한다.... (자연이 진보 대신 후퇴를 원할 경우라면 종들은 퇴보할 수도 있으리라 추론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연의 뜻에 거스르는 존재양식은 있을 수 없다 고 봅니다.

공연한 얘기지만, 혹시 사람을 만든 존재한테나 물어볼 수 있을까요... 공산품 만들때 쓰임새가 다 있듯이 사람이 사는 이유 또한 사람을 창조해 낸 존재(?) 한테 물어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직접 만든 존재(?) 이외에 누가 사람의 존재 목적에 대하여 이거다 아니다 논란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영혼을 완성하기 위해서 산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듯 하지만, 이것 역시 '현실이 중요하다' 고 생각하는 사람들 한테는 별 관심이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영혼이고 뭐고 그런데는 전혀 관심이 없다...' 고 말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 아니요, 이것이 바로 당신이 사는 목적이란 말이요! 라고 가르쳐 주기 위햐여 정답을 준비합니까... 내 자유의지로 사는 인생인데, 어떤 사람이 오직 이것만이 정답이고 다른 인생은 다 틀렸다!... 어찌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네 삶이란, 세상에 이러 저러한 꺼리들이 많이 널려 있으니,
각자는 형편대로, 원하는 대로 그것들을 취해서 거기에 재미 붙이고 살면 된다고 봅니다. 그러다가 아니다 싶으면 또 바꿔치기도 하고 말이죠... 삶은 정답이 있다거나 획일적으로 규정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되며 (진화 - 다양성) 각자 자기 나름대로, 생각대로 열심히 사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영혼, 사랑...그 어떤 고차원적인 생각이라야 사람이 사는 목적일 것이다... 하는 것은 섣부른 편견일 수 있다고 봅니다.

 

희망은 인생을 시들게 하지 않는 영원한 샘물이다... 이런 얘기가 있더군요.  제가 한동안 머리 속에 지니고 다녔던 좋은 구절이었습니다.
자고로 잘 먹고 잘 살 자고 하는 짓이다... 이런 얘기에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 다 일까요.  어느 정도 잘 먹고 잘 살고 나면 또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요, 미국의 Maslow 같은 사람이 얘기한 욕구충족 5단계설이 있지요.  한 욕구가 충족되면 차상위의 욕구 충족을 원하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즉, 생리적 욕구, 안전과 안정의 욕구, 사회적 소속의 욕구, 자아존중의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에 이른다고 합니다.  대햑교 경영학(인사관리) 시간에 그렇게 가르치니 엉뚱한 얘기는 아니겠죠...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 충족하고자 하는 욕구가 다르니 어떤 사람이 먹고 사는 데 급급한 반면 자아실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사람은 왜 사는 것일까?...라는 문제를 탐구하면서 다음 두가지의 문제점이 도출되었습니다. 

 

첫째는 그 사는 이유나 삶의 목적, 예를 들면 신과의 합일 또는 영적인 완성과 같은 것 이 분명해 지고 지금부터라도 수십만년이 흐른 다음 드디어 그 목적을 인류들이 달성 했을 때, 그 다음 할 일은 무엇인가...  목적을 달성했으니 남은 일은 下山, 즉  내려오는 일 밖에 할일이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자가당착에 빠지게 됩니다.  

 

神 과의 合一,  영혼의 完成... 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삶... 더 이상 추구하거나 나아 갈 곳이 없다... 그러면 사는 재미, 보람은 있을까?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은 아닐 터이니 그 삶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 보다는 목적-수단, 목적-수단, 목적-수단의 끝없이 연결된 모습만이 삶을 이어가게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두번째 문제는 우리가 목적을 분명히 했을 때, 그 목적에 동의하지 않는 다수들의 삶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다수가 지혜를 모아서 어떤 정답, 즉 삶의 목적과 이유를 정했다고 하면,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삶들은 무시하게 되는 것 아닐까... 어느 누가 자기는 우월한 삶이고 다른 삶은 열등한 것이라고 말 할 자격이 있을까?

 

똑 같은 개인들인데 누구의 삶은 합목적적이고, 다른 누구는 목적에서 벗어나 있으니 비합리적인 삶이다... 라고 말한다면 이 세상은 아마 난리가 날 겁니다.

 

개인은 각자 나름대로의 추구할 가치와 목적이 있기 때문에 고달픈 삶이지만 이끌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는 과정에 재미와 보람과 함께 책임감도 갖게 될 것입니다.  만약,  남들이 이러쿵 저러쿵 남의 삶에 대하여 목적이 어떻고 존재이유가 뭐고... 하는 식으로 삶을 재단하려 한다면 아무도 동의하려 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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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이란 나 라는 생명체가 존재코자 하는 구체적 행위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삶이란;
'사라지지 말고 존재해야 한다' 는 그 절체절명의 목적을 위한 행위로서, 나라는 존재를 부양하는 행위라 말할 수 있다.

'삶' 이란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한 구체적 행위...
개개의 삶은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세상의 모든 행위나 목적 들은 전부 다 '살자고 하는 짓' 이어야 하며,
삶이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없다.
삶이란 그 자체로서 최후의 목적이다.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하여 삶을 영위한다는 것...
생명체의 존재가 그 보다 더 상위가치를 갖는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있다면 그것은 착각 아니면 작위 ('나를 신의 도구로 써 주십시요...' 와 같은) 일 것이다.

생명체의 존재는 그 자체로 '절대가치' 를 갖고 있으며, (왜 생겼나?...와 같은) 필요의 유.무를 묻지 않는다. 생명체의 존재는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된다. 생명의 절대성과 가치의 至高함을 인식한다면 '왜 사느냐...' 와 같은 질문, 즉 목적이 따로 있는 듯한 질문은 감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외에,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하여는,
각자 나름대로 애를 쓸 따름이요, 제삼자는 조언을 해 줄 지언정, 간섭은 할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 이라고 생각한다.

 

Jiddu Krishnamurti가 쓴 '자기로 부터의 혁명' 이란 책에 보면 "인생의 의미에 대하여"  기술한 부분이 있습니다. 

... 당신이 인생의 의미를 물을 때 당신은삶으로 부터 도피하고 있는 것이며 인생을 이해하고 있는 모습은 아닙니다. 산다는 것은 '自他의 관계' 이며 그 관계 속에서의 '행위' 입니다.  이런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든가 혹은 그 관계가 혼란해 졌을 때, 우리는 삶의 의미를 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으로 부터 도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自他의 관계' 가 아닌 것을 대상으로 하여  인생의 목적을 찾는 것은 이때문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목적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는 '神의 탐구' 같은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사랑은 곧 神' 이며, 至福입니다.  우리의 삶이 공허한 것은, 머리 속에 전문적 지식, 미신적 망언 들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를 초월한 목적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찾아 내려면 우리는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과 직면하는 것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문을, 神이 열어줄 것을 우리는 바라고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에 관한 이와 같은 질문은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만이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행동, 즉 '自他 의 관계' 속 에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