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察人事

선과 악, 그 공존의 길 (악인이라도 용서를...)

참 나 2004. 3. 20. 13:20

1.

이 화두가 나를 계속 붙잡는 이유는 그것이 진리와 어긋난 형태로 이 사회를 지배하고, 사람들이 편협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동,식물,자연계나 우주에는 선 악이 따로 없는데 유독 인간사회에서만 '할 일(선)' 과 '해서는 안 되는 일(악)' 을 나누고 차별한다...

진리는 대립되는 것을 갖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선, 홀로는 진리일 수 없다... 악이 같이 있지 않고서는 선 만 따로 진리행세를 할 수는 없다...

빛(明) 과 어둠(暗) 이 한 짝이요, 있고(有) 없음(無) 이 한 짝일터...
삶(生) 과 죽음(死) 이 한 짝이고, 오(來)고 감(往) 이 또한 한 짝이다.
聖과 俗이 한 짝이요, 어짐(賢) 과 어리석음(愚)가 한 짝이다.
위(上) 와 아래(下) 가 한 짝이다. 참(眞) 과 거짓(僞) 이 한 짝이다.

이 모든 것들이 안, 팎이고 대칭관계에 있으니 둘을 함께 아울러 '온전체' 라 하고 그런 상태를 '진리' 라 해야 할 것이다. 왼 쪽이 없는 오른 쪽이 무어랴, 마이너스가 없는 플러스가 또 무어랴, 꼴찌 없는 일등은 또 무어랴.

인간사회에서는 선행을 좋다 하고 악행을 나쁘다 하여 외면 한다 (권선징악).

세상에 나쁜 짓을 했다고... 나 한테 해를 끼친 놈이라고... 그 놈을 끝까지 응징해야 하고, 반드시 복수를, 처벌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과연 그것이 일말의 용서도 받지 못할 그 무엇이란 말인가.  不容恕의 극한점에 가 있는 강팍한 마음을 경계하면서 띄워보는 질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이 자칫 편벽되어 있음은 아닌가. 

몇 일전 TV에서 본 장면인데, 숫사자에게 자기 새끼 두 마리를 잡아 먹힌 암사자 생각이 난다.  밤새 울부짖다가 다음날 아침 바로 그  숫사자를 '지아비' 라고 뒤를 따라 나서는 암사자... 아! 저럴 수가 있을까... 눈을 의심했지만 곧 이해가 되었다.  그래,  새끼는 또 낳으면 되겠구나...  새끼가 없는 상태에서의 암사자는 숫사자 한테 저항할 아무 이유가 없다. 게임도 안된다.  야생의 생태계에서는 그런 일들이 바로 현실 이로구나... 

세상에 善만 있고 그래서 사람들이 늘 벙긋 벙긋 웃으며 좋은 말만 하며 산다고 치자.   그런 삶의 모습만 계속된다면 생활이 얼마나 무미건조하겠는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늘 '그 말 맞다..., 참 좋은 말씀이다..., 훌륭하십니다..., 라고 한다면 그런 온갖 칭찬의 말들이 도대체 무슨 값어치가 있을 것인가.  반대로 욕지거리만 해 대는 세상이랑 다를 것이 없으리라.

대립되는 두 개념 중에서 한 쪽 개념만 갖고는 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음이리라.

우리가 나쁜 놈, 몹쓸 놈, 없어져야 할 놈 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자들도 따지고 보면 본의든 아니든 다 '제 할 노릇을 제가 하는 것' 이다.

개미를 100 마리 모아 놓고 살펴 보면 일정 퍼센트는 늘 논다고 한다. 그 노는 놈들만 따로 모아 놓으면 또 일정 퍼센트는 놀기만 한다.  이런 식이다.  다 자기 본연의 역할을 하는 것 뿐이다. 그 역할을 하게 만드는 기준을 누가 어떤 식으로 운영하는 지는 모르지만  모든 개체가 다 똑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그런 식으로 운영될 수는 없다... 

미꾸라지를 운반할 때도 잡아먹는 '메기' 를 같이 넣어 놓으면 미꾸라지들의 생존률이 오히려 더 좋아진다 고 한다. 살려는 몸부림(스트레스)이 미꾸라지의 생명력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惡이 발 붙일 곳이 없는 수도원 생활은 무언가 음울하고 죽음의 기운이 드리워진 듯 보인다... 삶의 활력이 없는 것이다.

착한 일을 골라서 하는 것은 착한 일 한가지 할 때 나쁜 일 한가지를 골라 버렸다는 뜻이다.  나쁜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다.  선을 가려 내는 사람은 늘 악을 끼고(의식하며) 살 수 밖에 없겠구나...

이것이 착한 일만 골라 하는 사람들의 의식세계이다... '모든 執着은 곧 狂信' 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聖者는 고도의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양태이므로 자연스럽지 못하다...  

악한 것, 나쁜 것 그것은 우리 삶의 현장에서 대접까지 할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없어져야 할 대상은 아닌 것이다. 그것들은 착하고 좋은 것과 함께 같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숙명적인 그 무엇이 아닐까... 

 

 

2.

인간은 죄가 없습니다.  죄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가 있다는 논리는 길에 있는 개를 보면서 저 놈이 죄가 많다... 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개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인간도 죄가 없습니다.


죄란 것도 그것을 알아야, 착하고 선한 것이 무엇이란 것을 알게 됩니다. 죄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착한 것, 선한 것도 모릅니다.  따라서 죄는 선하고 착한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죄 와 착함은 서로 상생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나름대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없어져야 할 것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선이던 악이던, 세상에 있는 그대로의 것들를 다 인정하고, 다 포용하고 용서하면서 그런 대긍정의 상태에서 우리는 영혼을 갈고 닦아야 합니다.  죄라든가 악이라든가 하는 재료가 없는 세상에서는 우리는 영혼을 닦을 방법이 없게 됩니다. 죄, 악... 그것들은 인류와 함께 영원히 같이 할 겁니다. 이를테면 그것은 인간의 팔과 다리와 마찬가지로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소입니다. 죄, 악이 인간과 함께 존재해 줌으로서 우리는 더욱 더 영혼을 고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없다면, 인간은 좋은 것, 착한 것, 선한 것들의 개념을 도저히 알 도리가 없습니다. 밤이 없다면 아침이 올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죄가 있다는 사실 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종교의 존립기반이 되는 셈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종교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종교의 母體와 같습니다. 죄(惡)가 없다면 종교(善)는 그 즉시 사라질 것입니다. 물론 죄가 없어질 가능성은 단1%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自信이 바로 죄 때문에 생겨난 것을 모릅니다. 종교는 인간의 죄가 있어야만 (...罪 와 더불어서...) 먹고 사는 처지인 것입니다.  종교의 입장에서 보면 죄는 절대로 없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3.

선과 악... 

이책 저책 뒤지다 보니... 남들이 드러내 놓고 얘기 않는 내용들을 접해 본 적이 있고, 예수님도 부처님도 노자와 장자도 플라톤도 니체도 다 언급한 내용입디다...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도 선,악을 균형있는 눈으로 봐야 한다는 내용이지요? 그런 것이 실정법하에서 우리 실생활과 어떻게 양립할 것인가를 살펴보자니...그것이 어려운 얘기라...

인간이 超人(니체의 Uber Mensch, 최고理性人) 도 아닌데,
善惡이나 是非분별, 正邪판단...등등을 개인 각자의 '균형감각' 에만 맡겨 놓을 수가 없는 지라...

대중의 게으름본성, 이기적 취향으로 인하여 사회 질서가 아수라장이 될 터인즉
'... 진리는 비록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 하더라도...'
실제 방편적으로는 한쪽 구석을 틀어 막어야 한다...즉 좋고 나쁜 것을 나누고 이들을 차별화할 수 밖에 없다...고 했을겁니다.  뭐 이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