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유

사람이 사는 목적과 이유

참 나 2005. 10. 13. 16:47

오늘 아침 출근길 차 안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 옮겨 보겠습니다.

사람은 왜 살까요...
몇달 전 매형이 지병으로 돌아가셨는데 나이 예순이 채 안된 나이, 해병대 제대하고 나름대로 한 카리스마하고

상업디자인 했는데, 지인의 죽음을 저 먼나라로 보내면서...

그렇구나, 죽음이란 모든 가능성 과의 단절이로구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바로 죽음이다. 그것이 선이건 악이건 지랄발광(ㅋ)을 하건, 술과 여자에 탐닉하건,

강철과 같은 체력단련으로 뽐내고 다니건... 뭐 1년, 5년 아니 한 십년을 목표로 그 무슨 전문가 수준의 취미생활이나

고도의 지식을 연마하는 것도... 모든 그림들이 무용지물이다, 그것이 죽음이란 것이로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이 삶,

여기 주제에서 다루고 있는 '삶의 이유' 란 것입니다. 옛말에 개똥 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
'삶' 이란 모든 가능성을 펼쳐 보일 수 있는 마당, 놀이터 같은 곳이다.
그것은 그림으로 치면 깨끗한 백지(도화지)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 백지 위에 자신의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다. 아무도 그것을 말릴 수는 없다.

설사 말리는 사람이 있더라도 기어코 도망치거나(빠삐욘?) 극복해 내면 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자기의지가 강해서 뭘 하겠다는데 못할 일은 없다,

그러니 삶이란, 사는 이유란,
'자신이 하고 싶은 그 모든 일들'을 할 수 있게 하는 무한히 펼쳐진 가능성 을 말한다, 삶이란 백지와 같다.

삶이란 무한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시(時),공(空) 이다. 거기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무얼하든,

거기 백지 위 에다가는 이러 이러한 것만 그려야 한다...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없어야 합니다.

자기 책임하에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삶의 본질일 터,

그림 그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 껏 그려라, 무슨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으니 좀 아르켜달라 라거나 

나 대신 뭘 좀 그려줄 수 없겠는가 라고 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우리가 왜 살까요' 하며 묻고 있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따라서 거기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고, 아무 것도 강요할 사람이 없고, 그저 하고 싶은 대로 네 꿈을 펼치고 나래를 펼쳐라,

오로지 살아 있는 동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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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의 삶' 이란 것이 통째로 어떤 특정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될 수 있을까?

    

2. 목적을 어찌 어찌 해서 정했다 치고...그러면 다 들 그 목적에 따라야 할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지요. 총론엔 동의해도 각론엔 반대...아무도 따라 붙지 않을 겁니다.  그냥 해 본 소리에 불과할 뿐이겠지요. 

사람마다 삶의 목적이 다르고,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목적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 그러면 내 인생 책임질래? "  

 

사람이 왜 사는가? 또는 삶의 목적이 무언가? 하는 질문은 '관념의 유희' 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번 생각해 봄직한 화두겠지요?  

신통한 결론도 대안도 없고 영양가도 없는 관념일 뿐이죠. 

 

삶에 정답이 있는가?  그 목적을 달성했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연어, 문어가 알 낳고 죽듯이 사람도 목적을 달성하면 죽어야 하는것 아닌가?  버스, 기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으면 내려야

하듯이, 인생도 목적달성을 했으면 이제 그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라면, 더 이상 살아서 뭘 또 해야 한다는 말이냐? 

 

삶의 '궁극의 목적' 이 있다면 목적달성 이후에 죽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니 그런 얘기는 있을 수 없다...큰일 날 소리다, 모든 사람들이 기꺼이 죽음을 마다않고 덤벼드는 '절대,궁극의 목적' 이란 것이

있다면 소름끼치는 얘기지요?  모두 다 살자고 하는 마당에...? 

개인이 궁극의 목적을 달성한 이후에도 더 살아야 겠다 또는 살고 싶다 라고 한다면, 사실은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더 살아서

존재하는 것이 오히려 궁극의 목적인 게다, 기쁘고, 즐겁게... 그러니 다름아닌 삶, 그 자체야 말로 어떠한 목적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가치일 수 밖에 없다,  

 

3. 인간은 불완전한가? 

선인들은 사람이 곧 하늘이고 우주라고 했습니다. 

주역(The Book of Change) 은 우주변화 원리를 설명한 책입니다. 

완전한 것은 변하면 안되겠지요?  그러나 우주는 변합니다.  

'완전함' 이란 다름아닌 '변화한다' 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완전함'의 모습이지요.  

 

4. 생물은 자손을 끊기지 않도록 하는 숙명을 갖고 있습니다.  뭇 생명의 공통과제 입니다.

만약, 후손이 끊기면 멸종입니다. 그에 비하면 다른 일들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지요.  인류가 멸종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타협할 수 없는 가치 -생존의 이유- 건강한 자손의 번식, 그것이야 말로 나의 '천명' 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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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3 naver 추가의견...

 

'나는 무엇 무엇 때문에 산다' 라고 하게 되면, 그 무엇이란게 달성되거나 없어졌을 경우

'그만 살고 싶다거나, 또는 도대체 왜 사는지 모르겠다...' 와 같은 일이 벌어지겠지요.

그러니 인생의 목적, 이유를 따지는 생각 자체가 온당치 않은 것입니다.

 

'희망'이 삶을 시들게 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테크닉'에 불과한 것 아닐까요.  달리는 말 앞에 당근을 매달고서 계속 채찍질을 해 대는 것과 같다.. 

그 당근(희망)을 먹겠다고 뛰는 것이 살아야 하는 이유 일까요. 혹시 '뛰어야 하는 이유'는 될 지 모르지요. 

 

우린 희망이 없어도 평온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나이 드신 노인분들...농촌에서, 산 자락에서 그날 그날 밭 일하고 나무하고 ...사는 이들이 무슨 특별한 희망을 얘기할까요. 

그들에게 희망이 없으니 죽으라고 할 수 있나요?

그들은 죽는 그 날까지 별 탈없이 살다가 잠자는 듯 죽는 것이 유일한 바램일 수 있겠지요?  우리들은 구체적인 희망이 없이도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한 삶을 살 수 있다' 고 봅니다.

 

삶의 궁극적 이유나 목적 같은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있어서도 안 됩니다.

부모에 의하여 태어난 이상, 모든 생명체는 죽는 그 날까지 존재(=살아있음) 할 뿐입니다. 

'그냥 산다...'  그 말이 너무 싱거운가요?  그러한즉, 무언가 의미를 찾아보려 하나요?  

 

'삶의 이유나 목적' 이 필요한 사람은, 그 때 그 때 자기 형편대로 정하면 됩니다.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으며, 남의 인생에 대하여 뭐라 해서도 안 되며, 할 수도 없겠지요?

그 목표란, 올 해 안 되면 내년에, 그것도 안 된다면 뭐 체념도 해 가면서...그렇게 살면 되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왜 사냐...?  아무리 말로 치장해 본 들 거기에 동의해 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것은 차라리 종교, 신앙에 가까운 얘기일 테니까요...'막연한 얘기를 믿고자 하는 것' 말입니다.

 

결국 '내 삶의 주인은 나, 책임질 사람은 나 이외엔 없다...' 는 것을 자각하겠지요.

헤매는 사람일랑 잠시 따라 올 수도 있겠지만, 이들도 결국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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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재물, 명예, 권력...비록 그것이 일상의 소박한 희망이라 할지라도...삶에서 특별히 추구함이 있거들랑 그를 경계해야 한다. 

무언가에 들러붙는 마음이란... '깨어진 균형상태' 를 의미한다.  자연은 오른 쪽과 왼 쪽보다 더 이쁘다 하지  아니하니...

왼 쪽에 가 있는 사람이 오른 쪽을 손가락질하거나, 그 반대의 짓을 하는 사특한 인간들은 결국 따지고 보면 각자 형편 위에 서서

'지지배배' 떠드는 형국...그것이 저잣거리 사람의 모습 아닌가...

 

밀었다면 민 만큼, 올라갔으면 올라간 만큼, 부풀렸으면 부푼 만큼...더 이상의 힘이 가해지지 않게 되면 '반작용' 이 일어날 터이다. 

그와같은 '균형찾기, 원래 모습 찾기' 의 순간이란, 당신이 처음에 벌려 놓은 그 크기 만큼 '고통과 괴로움' 으로 메꿔야 하리라. 

무턱대고 높은 산을 오르려 하거나, 넓은 강물을 헤엄쳐 건너고자 하는 사람은 '경계, 또 경계' 할 일이다.

 

지금 무언가를 추구하는 자여, 밀어 붙이는 자여...만약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여 돌이켜 덮쳐올 때,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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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5.15 naver 지식인...'사람은 왜 살까요?' (존재의 이유) 릴레이 추가 의견입니다.


1953년 유전자가 발견된 이후 부터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좀 더 명료해 졌다고 봅니다.

"그것은 당신 안에 존재한다. 내 안에도 존재한다.  그것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만들어 낸다.  그것들을 보존하는 일은...

우리의 궁극적인 존재이유이다.  그 이름은 '유전자' 다.  -리차드 도킨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내 안의 유전자' 를 후손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궁극적인 존재이유...라는 해석입니다. 

 

인간의 모습은, 세포내 유전자를 설계도라 한다면,  그 설계도에 따라 만들어진 창조물인 것이요, 인간의 행동이란 것도 

그 유전자가 원하는 대로 따라서 해야만 하는 로보트 적인 속성을 지닌다. 그러다가 유전자 '텔로미어' 의 끈 길이가 다 닳아지면 죽는다,   

 

아들이건 딸이건, 어쨌거나  자식(의 유전자)은 보존해 놓았으니까 나의 존재이유는 만족시킨 셈이다?

그래 본 들 뭐 하나 달라질 것이 있을까요?  이전부터 다 들 그리 알고 또 잘 들 하고 있었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