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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얻으면 '나쁜 일'들이 안 생긴다...? 이것이 서양인 저자 Peter Erbe <God I Am, 우리는 神이다, 1998, 아름드리>의 책 내용인데, 우리나라 불교종단의 경전 해석도 이렇듯 거칠고 '틀린 것' 투성이입니다. 불(不)이나 무(無/无)란 단어가 경전(經典)에 나왔다고 해서, 그것을 실체 자체가 없다란 말로 받아들이면 큰 잘못이고 삼천포로 빠진 것입니다.
뭣이 잘못이란 말인가? '깨달음'이란 것은, 석가모니, 예수, 노자, 증산 모두 다 고통을 주는 실체 그 자체를 없애도록 하려는 노력이 아니다; 존재나 사실의 발생, 그 자체는 늘 있는 일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일어나는 것은 변함이 없다, 단지,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는 내 생각 방식이 바뀐다는 뜻이다, 그것이 성현(聖賢)의 가르침, 연기법 입니다. 따라서, 내가 깨달음을 얻었으니 '나쁜 일'이 안 일어날 것이다? (도둑이 침입하지 않는다거나, 교통사고가 안 난다, 나한테 불행한 일이 안 생긴다... 등) 그런 얘기가 결코 아니다; 도통(道通)을 했어도 일어날 일은 (예수님, 석가모니한테도) 다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그 일어난 일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연기법(=사랑, 자비, 상생)에 의해서 달리 해석함으로써, 나쁜 일(고통)을 받아들이기가 수월해진다는 것이지요. 과거엔 고통스러운 일도 지금은 고통스럽지 않게 되었으니 그것을 무(無/无 = 과거처럼 심한 고통은 아님/없음) 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무(無/无 )라고 했다 해서, 존재(실체) 자체의 없음을 말한 것이 아니올시다. 생기는 일이 안 생기도록 하는 것은, 기적/마법/마술의 영역이지, 깨달음의 영역이 아니로다. 깨닫기 전이나 후나 일은 똑같이 생길지언정, 그것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의식구조가 바뀐다(=연기법)는 얘기입니다. '원효'의 유명한 해골바가지 속 물(水)이 바로 그것입니다. 해골바가지 속의 물은, 원효가 깨닫기 전이나 후나 변함없는 '실체'입니다. 단지 모르고 먹으니 더럽지도 구역질이 나지도 않았고, 오히려 시원하더라! (나중에 알고나서는 구역질이 났을지언정, 모르고 마실 땐 그냥 물이었을 따름이니...)
앞서 언급한 책(God I Am , pp215~222, Peter Erbe)에 보면, 그가 표현하듯이 세상 사고방식(=속세 사고방식)을 버리면 모기도 안 물고, 사막에서 갈증으로 죽는 일도 없다...는 구차한 설명을 했으나; 이는 저자가 깨달음을 얻기는 한 것 같은데, 온전치가 못한 것입니다. 깨달았아도, 모기는 여전히 달라붙어 피를 빨 것이요, 사막을 여행할 때 갈증에 허덕이다 죽을 지경에 처하는 것도 다를 바가 없으리다; 그것은 객관적 상황, 실체란 것이로다. 단지,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깨달음을 얻은 후로는 덜 고통스럽다, 이는, 반야심경 첫 구절 처럼,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이니, 연기법으로 비춰본즉, 모든 고통으로 부터 건너뛸 수 있게 되었다란 것입니다. (*1938년생, 독일 베를린 태생 Peter Erbe; 그의 설명과 비유가 구차스럽게 보였습니다. 무리한 얘기다 라고 느꼈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그 설명의 한계를 보았습니다. 이처럼 '정각(正覺)'이란 드물고 희귀한 일입니다. 한 끗만 삐끗해도 삼천포로다, 눈 밝은 이한테는 그것이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라, 있는 그대로를 대하라' 이 말씀도 마찬가지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생긴 일, 나한테 닥친 일에 대해서 자기 나름의 (세속적인) 해석에 머물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다시금 대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과거처럼 편협한 생각이 아니라 사고의 밸런스(balance; 좋은 것 vs 나쁜 것) 균형을 잡으라는 뜻입니다. 그리하면 고통스러울 것이 없다, 또는 덜어진다, 그 말이 바로 무(無/无)였던 것입니다. 오로지 내 마음, 나의 '고정관념과 선입견, 편견 탓에 고통스러운 것인 바, 실제로 일 자체가 고통은 아니로다, 이것이 세상일에 대한 새로운 해석 방식(연기법 = 心法)입니다. 의식 개벽, 이른바 천지개벽(天地開闢)인 것입니다. 달리 무슨 개벽을 말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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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른바 '기복신앙(열심히 빌면 물질적인 복福이 온다)'과는 선명한 구분을 말했습니다. '기복신앙'은 원시적, 통속적인 신앙행위다, 헛것에라도 마음을 붙이면 일정부분 자기위로를 받을 수 있으니.. 오늘날 '고등종교'들은 한결같이 기복신앙에다 목을 매고 연명하는 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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