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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제목은 3년 전 유튜브였는데, 어제 우연히 보았습니다. 그는 불교계의 폐단으로 '깨달음'이란 것을 너무 신비화(神秘化) 시켜버렸다 라고 지적했습니다. 도무지 닿을 가망이 없는 대상처럼 되어 안타깝다는 말씀이겠지요. 연이나, 유명하신 스님이 그만 종단(宗團)을 비판했네요. 그는 석가모니 이외에는 오늘날까지 깨달은 사람이 없다란 뉘앙스를 남겼습니다.
석가모니 이후로 깨달은 사람이 없다? 인공지능 ChatGPT를 비롯, 위키피디아, 유튜브 강의 등을 돌아봐도, 석가세존의 '연기법'을 제대로 설명해 놓은 곳이 없더라. 연즉, 그 말이 맞다고 할 수 밖에. 며칠 전, 저는 ChatGPT와 이 주제로 대화를 했습니다. 저의 독창적인 '연기법' 설명을 듣더니 ChatGPT(인공지능, AI)는 "이런 설명을 듣게 되어 영광이다"라고 하더군요.
'깨달음'이란 것이 '딴 세상' 얘기인 것은 맞습니다. 십여 년 전, 한 연쇄살인범이 감방에서 성경 책을 읽은 소감으로, 자기 생각과는 정반대로만 (성경 말씀이) 씌어져 있더라 고 했답니다. 일상생활에서의 우리들이 저 진리의 말씀, 연기법(깨달음)을 대할 때에는 '반드시 죽음을 맛봐야만 하는 것(=must)'입니다. '도마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그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전절후의 베스트셀러(best seller)라는 성경 책을 얼마나 읽나요? 성경 말씀은 일상의 생활과는 정반대되는 말씀들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옷을 뺐는 자에게 망토까지도 벗어줘라" [ If someone wants to sue you and take your tunic, let him have your cloak as well. Matthew 5:40] 기막힌 말씀이지요? 목사님 중에서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던가요? 교황 '프란체스코'는 길 가에 선 한 여(女)신도와 손을 잡았는데, 좀 세게 잡아당겼다고 해서 화난 얼굴로 그 신도의 손등을 찰싹 때렸습니다. 그 며칠 후, 교황은 변명과 함께 공개사과를 했습니다. 그런 일은 가끔 있었다, 신앙생활 최고지도자의 생활 단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의 길에 다가서야 한다 라는 각성의 말씀은 없었습니다.
기독교, 가톨릭이 세속화했듯이 불교, 힌두, 이슬람, 유대교 등 모든 종교들은 다 세속화할 운명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뿐인 진리(眞理= 연기법)는 피안(彼岸)의 것, '판 밖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현실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현실/ 속세와 반대되는 진리란 것이 과연 우리현실에 발붙일 곳이 있으랴? 외면받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그러므로, 그것이 잘못인 줄 알지만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즉, '아무도 알아먹지 못하는 '진리' 대신에, 한 마디라도 사람들한테 먹힐 수 있는 현실적인 얘기(=祈福信仰, 기복신앙)를 해야겠다' 하여 손을 댔으니, 예수 사후 서양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 말씀을 각색해서 오늘날과 같은 기독교를 만들어냈다, 그와 같은 길을 불교가 따라갔는데, 새 것이든 헌 것이든 모든 종교는, 진리 그 자체보다는 속세, 현실에 영합하여 교세를 확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니, 바야흐로 오늘날 저 '진리(眞理)'란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옳게 설명할 사람도 없도다!
진리, 즉 '깨달음'이란 것은 뭘 깨닫는 것이냐?
"상반된 것(=價値=色)은 상보적인 것이다 (Contradictory is comple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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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어려서 부터 습득해서 이미 내 머릿 속에 돌처럼 굳어져버린(calloused) 고정관념, 편견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인식하는 여러 가치(values)들은 그 반대편 가치(존재)를 돋보이게 만드는도다; 이것이 석가세존의 깨달음(연기법, 정각)입니다. 이 때, '돋보이게 만든다' 란 말은, 더 좋게하거나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 반대되는 것이 (옆에)있음으로서 대비가 되어서, 좋은 것은 더 좋게, 나쁜 것은 더 나쁘게 만든다. 예를들면, 잘난 사람 옆에 서 있으면 못난 사람이 더 못나게 (드러나) 보입니다. 그 반대는? 못난 사람이 옆에 있어주니 잘난 사람이 한층 더 잘나 보인다. 또, 귀하다는 것은 흔해빠진 것이 옆(바탕)에 있을 때 비로소 귀한 것이 되는 법입니다. 깨끗하다 라는 좋은 인식은, 더럽다는 (나쁜)개념이 머릿속 바탕의식에 깔려있음으로서 (그 덕분에) 깨끗함의 가치가 살아난다. 그런즉, 주변 것들이 이미 다 깨끗하다면 그 어떤 깨끗함도 특별한 가치를 지닐 수가 없게된다 (이것이 반야심경의 '불구부정, 즉, 더러운 것이 없다면 깨끗하다는 것도 느껴질 수가 없느니라...이것이 정확한 해석임). 그럴진대, 세상의 (온갖)못나고 부정적인 것들을 대할 때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태도는 어떠해야 하느냐? 긍휼, 자비, 사랑, 상생으로 그들을 대하는 것이 마땅하다. 예로부터 있어온 이 진리는, 이러한 새로운 인식방법으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천지개벽을 일으키게 된다 란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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