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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파트 층간 소음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2. 집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방 문밖에서 내는 온갖 생활 소음, 옆 사람과 대화할 때의 음성 또한 '층간 소음'이나 마찬가지다. 부부간이나 가족끼리라도 마땅히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생활 소음에 무척 민감해져 있다.
3. 세 사람 중에서 유독 두 사람끼리만 대화를 계속하면 나머지 한 사람은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이때, 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마땅하고 "우리끼리만 얘기를 해서 미안하다'는 표현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동행인에 대한 예의다. 이런 자연스러운 일들을 굳이 가르쳐야만 할까? 그래야 한다고 본다. 아래 설명을 보자.
4. 이것은 굳이 배우지 않았어도 할 수 있는 (하나의) 기능인데, 유전자적으로 갖추지 못한 부류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상당 비율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배움은 끝이 없다, 제사 지낼 때 상석에 놓는 지방의 글자를 보라! "顯考學生府君 神位" 이는, 우리는 모두 배우는 사람이고 살아생전은 물론 죽어서도 배운다는 뜻이다. (참고: 과학적 사고로서, 죽은 귀신은 두뇌가 없으니 배울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보고 듣고 하는 행위 일체가 있을 수 없다. 즉, 귀신이란 것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익숙한 '귀신 현상'은 내 몸이 생존위기 등에 처했을 때 두뇌가 발하는 도피명령인 것이다)
5. 제 기분에 취해서 시끄럽게 떠든 사람한테는 주위로부터 지청구를 들을 수 있는데, 이때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그럼 절간에 가서 살아!"...절간이다. 딴은, 절간에선 묵언수행(默言修行)이란 글귀도 볼 수 있으니.
6. 이웃의 (층간) 소음, 기타 여러 가지 지적사항(소위, 민원)을 들었을 때 반발하고 격분하는 이유는 그 지적이 자신의 자존감에 상처를 줬기 때문이다. 지적사항과 맞붙어 싸우거나, 심하면 살인사건으로까지 비화되는 것은 '나를 모욕했다'라는 이유 때문이다. 소음으로 피해를 본 사람보다 오히려 방귀 뀐 놈이 더 화를 내는 것이다. 자신의 자긍심, 자부심이 있는 사람은, 남이 나의 잘못을 지적해도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있겠으나, 많은 사람들은 그렇질 못하다. "또 그 소리네..."라고 반발할 것이 아니라, 남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은 자신의 행동을 (먼저) 고쳐야 할 것이다.
7. 서울대 법대 교수를 하면서, 제 자식(딸)의 표창장을 컴퓨터로 위조한 '조국'을 보라! 이처럼 우리의 이웃 중에서도 어떤 부류의 사람은 (아주 심하게) 갖출 것을 갖추지 못하고 태어난다. 나는 그것이 유전자적 결함(실존지능의 결함)이라고 본다. 입으론 '자신은 대통령 출마할 자격이 없다'라고 말하지만 뭘 알고서 한 발언인지 의심스럽다. 우리나라 정치판의 위험 요소(peril. 소시오패스)가 아닐 수 없다. '표창장은 위조하지 말아야 한다' 는 것이 어디 가르치고 말고 할 일인가? 법대 교수는커녕 어린애라도 삼갈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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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파트 층간 소음은 실내용 슬리퍼를 신으면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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