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세트로서 존재하는 것이다...연기법

참 나 2024. 6. 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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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의 경지를 다시금 살펴보겠습니다. 반야심경에서 색(色)이란 말은 유형 및 무형의 온갖 가치(價値= 諸法과 諸行)를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대상'을 좋은 것 혹은 나쁜 것으로 식별하는데, 그런 식별은 자동적인 것입니다. 반야심경에서 말한 이 색(色)이란 말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다 통칭하였으니, '온갖 가치'들 입니다. 색(色)이란 말은, '있는 그대로'의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에 덧씌워진, 학습되고 고정관념화된, 온갖 가치(좋다, 나쁘다 란 틀에 끼워진)를 싸잡아서 말합니다.       

색(色)과 대칭으로 쓴 '공(空)'이란 것은 좋거나 나쁘다는 것의 (각각의)'반대 가치'입니다. 색즉시공(色即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이란 무슨 말인가? 세상의 '좋은 것'이란 그 반대되는 '나쁜 것'이 있다(=是)라는 말이며, 그 반대로 '나쁜 것'은 좋은 것이 있다(是)라는 말입니다.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은 무슨 말씀인가? 세상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 대목을 설명할 때, 서로 등을 대고 서있는 두 빗자루의 예(例)가 나왔습니다. 즉, 서로 버티고 서 있던(한 존재 양태) 한 쪽의 빗자루가 쓰러지거나 없어진다면, 그 반대쪽 빗자루(반대 존재 양태) 역시 쓰러지거나 없어진다.             

​이는, 좋은 것이 없다면 나쁜 것도 없는 것이요, 역도 진(逆도 眞)이니, 나쁜 것이 없다면 좋은 것도 없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의 빚을 지고 있으니 동떨어진 별개의 것(異)이 아니다. 이것을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좋다 또는 나쁘다는 것은 각각 자기 반대쪽과 세트(set)로서만 존재한다', 반드시 그러하다... 이것이 정확한 연기법(緣起法)입니다. 아직까지 석가세존의 연기법을 이렇게 명징하게 설명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정각(正覺)을 한 사람인 제가 처음 밝히는 것입니다.    깨달았으니, 일상생활의 예를 들어서 쉽게 설명해야 합니다. 즉,                                                                                   

인생을 고해(苦海)라 하지만, 고(苦)가 없다면 낙(樂)도 없는 것이로다. 그런즉, 이 고(苦)란 것은 결코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낙(樂)과 같이 가는 대상이다. 고락은 상생(苦樂相生)인 것이다! 슬픔을 모르는 자가 기쁨을 알 리가 있겠는가? 아프지 않고 사는 자가 어찌 건강함의 가치와 고마움을 알 수 있으랴? 가난을 겪어보지 않고 어찌 부유함의 가치를 알리오? 실패함이 없이 성공의 가치를 누릴 수 있겠는가?  앞의 예로 든 인생살이의 모든 '고(苦)'는 극복할 대상인 것이며, 삶의 즐거움(樂)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바탕이요 영원한 동반자로다!                                                                                                       

반야심경 서두부분에 누군가 끼워 넣은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모든 고액에서 벗어났다) 이란 구절은, 정각을 한 제가 '거짓말이고 허구'란 것을 알아차리고 지적해 냈습니다. 저의 업적입니다. 삶에서의 고통은 그것이 없어야 좋은 것이 아니요, 힘들지만 삶이란 게 그런 것이다.  따라서 고(苦)란 것은 없애버릴 대상이 아니라, 극복해 내는 (그러면서 꼭 필요한) 대상인 것입니다. 고통은 극복을 함으로서 내 삶이 (비로소)충실해진다. 고락은 상생(苦樂相生)입니다. 일찌기 산스크리트어 반야심경을 영문으로 번역한 것에는 '도일체고액' 부분이 없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바 있습니다. 누군가 반야심경을 좀 더 인기있게 보이려고 색칠을 했던 것입니다. 관자재보살이 모든 고액으로 부터 벗어났다란 뜻의 '도일체고액'은 과(過)한 표현이었다, 일체 고액을 극복해 냈다...라고 써넣었더라면 그나마 좀 봐줄 수 있었으리라. 이와같이 후세 사람들이 경전에 덧칠을 해대는 일은 성경(the Bible)을 포함해서 다 있었던 일입니다.                                                                                                             

 '고통없이 살아간다'라는 것이 얼핏 좋아보이지만 그것은 환상이고 사람을 현혹하는 사탕발림입니다(혹세무민). 오르막길 없이 내리막길만 있는 산행과도 같다. 천당과 지옥의 예를 들더라도 마찬가지인 바, 지옥이 없는 천당의 삶이란 게 무엇이냐?  아무런 고통이 없는 기쁨과 즐거움이란 것은 불과 사나흘만 지나면 싱거워지는 법이로다.  삶이 정말로 힘든 것은, 다름아닌, 변화가 없는 일상이로다.  세상살이의 온갖 부정적인 것은 있어야만 하는 것들이다, 반야심경의 가르침은 고통에 대한 '바른   해석'을 알려줌으로서 그것을 극복하게 만드는 것이지, 고통 자체가 없는 삶을 살자는 것이 아니올시다!                             

고통 없이 산다 라는 뜻의 '도일체고액'...이 구절이 반야심경에 끼어있어서는 안되는 잘못된 것임을 말하자면; 우리가 삶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연기법 사상일진대(=색즉시공 공즉시색, 색불이공 공불이색 = 좋은 것과 나쁜 것은 공존하며 상생) 이와 배치되는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한 쪽만의 가치를 편애(偏愛)한 잘못인 것입니다 (取捨心, 決定解란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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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물살이 센 곳에서 쉴새없이 지느러미 짓을 하며 버티고 살아가는 물고기를 보고서, '너 참 살기 힘들겠다'고 해서 건져올려서 흐름이 없는 물에서 살게 하면 편하고 오래 살까요? 금방 죽어버릴 겁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고통이 없는 삶을 산다면, 그는 삶이 지루하고 따분해서 못살겁니다. 인류는 수 수백 만 년을 그렇게 살아왔으므로, 삶에서의 고통이란 것은 없을 수가 없으며, 없어서도 안되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복(福)이란 화(禍)가 엎드려 있는 곳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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