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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도인(道人)도 연기법을 모른다

참 나 2024. 2. 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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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다(長), 짧다(短)라는 형태 역시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해서 그것보다 긴 형태, 그것보다 짧은 형태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가볍고 무거움, 약하고 강함, 멀고 가까움 등도 어떤 특정한 것을 기준으로 정한 것이다."  - 백두산족에게 고함, p.37, 권태훈著, 정신세계사 1989 -

​위 인용한 책은 1984년 발행 소설 '丹(단)'의 주인공으로 엄청난 유명세를 치렀던 인사(작고)의 저작이며, 오늘 책 정리를 하던 중 우연히 마주친 부분의 문장입니다. 대부분 독자들은 그냥 지나쳤겠으나, 저는 연기법(깨달음)을 알고 있는지라, 이 문장이 간과한 부분을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故 권 옹(翁)은 야인으로서 우리 민족의 정통 호흡수련법인 단전호흡(연정원)을 계승하신 분입니다. 40년 전 김정빈의 소설 단(丹)은 대단한 베스트셀러였다, 그러나 위 인용한 부분은 실망(失望)입니다.

즉, 길다 짧다, 가볍고 무겁다, 약하고 강하다, 멀고 가까움이 '어떤 특정한 것을 기준으로 했다'고 하였으되, 그 말이 빗나갔다는 것을 설명하겠습니다. 이들 이름(=諸法)은, 어떤 특정한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반대되는 것(가치)을 기준으로 해서 그런 인식(=자리매김, 이름)이 생겨 난 것입니다.  길다 라 함은 그보다 짧은 것과 비교할 때 그렇다는 것이요, 그 반대로 짧다 라 함은 그 보다 긴 것과 비교해서 짧다 라는 얘기다; 가볍다 라 함은 그보다 무거운 것과 비교할 때 그렇다는 것이고, 그 반대로, 무겁다 라 함은 그보다 가벼운 것과 비교할 때 그렇다 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한 가치(value)는 자신의 반대가치에 의존해서 그렇게 자리매김 된 것이다; 佛家의 三法印 중 '제법무아'(諸法無我=절대값 없음)는 같은 맥락의 제행무상(諸行無常)과 함께 이 '연기법'을 말한 것입니다. 2,500년 전 老子 도덕경(제2장)에서도 밝힌 것인 바, 현대의 도량형(미터법)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얘기다,

정신계의 도인(道人)조차도 '연기법'의 낙처를 몰라서 변죽만 울리고 있기에 굳이 여기서 지적을 했습니다. 이 딱한 사정은 위키피디아를 비롯하여 불가(佛家)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반인들은 말해 무엇하랴?

이러한 부처님 연기법은 정각(正覺)을 한 제가 이 블로그에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큰 것은 작은 것이 있음으로써 크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고, 그 반대로, 작은 것은 큰 것에 빗대어져서 작다 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입니다. 예로부터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라는 말은, 길다 짧다 란 것이 자신의 절대값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란 뜻이었으니 일상 속에서의 연기법이로다. 이해하기가 어렵나요? 아니면 너무 당연한 얘기를 어렵게 설명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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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실 쉽지 않습니다. 만약 '연기법'을 확철대오 깨달았다면 예수, 석가모니, 성현(聖賢)인 것입니다. 쉬워 보였다 해도 막상 삶의 현실에서 적용할라치면, 이게 그 소린가? 하는 의구심이 생깁니다. 하여, 돈오점수, 증득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설명을 들을 땐 좀 아는 듯해도, 그것을 실생활에 적용하면서, 또 남에게 설명을 할라치면 버벅거리게 됩니다.

"연기법, 도대체 뭣에 쓰는 말인가?" 이 대답은, 이 세상 양(陽)에 대응하는 음(陰)적인 것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말합니다. 음이 없다면 양이 어찌 존재하리오(=제법무아). 우리나라 유교사상의 기둥(=인,의,예,지,신), 그 반대편에는 '온갖 모자란 것들'이 있을 터이다. 잘난 넘이 있으면 못난 놈이 있고, 반듯한 것이 있다면 굽은 것이 있다, 똑똑한 놈이 있다면 어리숙한 놈이 있을 터이다... 충신(忠)이 있다면 반역자가 있고, 효자(孝)가 있다면 불효막심이 있을 터, 정숙하고 지조 있는 부인(烈女)이 있다면 행실나쁜 여자가 있을 터이다,

이제, 못났어도 다 끌어안고 가야만 한다. 밝음에 대응하는 어둠, 빠름에 대한 느림, 능수능란함에 대한 솜씨 없음, 높음에 대한 낮음, 예쁘고 잘남에 대한 평범함과 부족함; 모든 음(陰)적인 것, 부정적 가치와 더불어/어울려 살아가는 인식이 연기법이다; 예수님의 사랑(supreme love; 긍휼), 석가모니 부처님의 자비, 최신 버전인 '증산의 해원상생'이 그것이다. 모두 다 같은 말씀(=연기법)입니다. (왜 그럴까?)

19세기 후반, 최수운의 동학운동(=민주화 운동) 때, 민초들이 떼를지어 외치고 다닌 '궁궁을을(弓弓乙乙)'이 뭔가? '궁궁'은 태극 일원상(一圓相)에서 양호(兩弧)다, 음과 양이 분리된 채 서로 경원시(敬遠視)하는 것이 아니라, 일원상(一圓相)의 태극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요, 그 양호를 가로지르는 線으로서 을을(乙乙, 굽은 경계)은 음양합덕의 사회(=侍天主 造化定)를 상징한 것이었다, 전통적 지배자 갑(甲)과 피지배자 을(乙)이 해원상생하는 민주사회를 백여 년 전 조상들이 외치고 다녔던 것이다, 바야흐로 정반합(正反合)의 시대정신은 바야흐로 민주(民主)로다; 음(陰), 약자(弱者)요, 주목받지 못한 자(者)들의 세상이 도래(到來)하였으니 우리가 어찌 무심할 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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