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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과 도덕경은 똑같은 진리(本論 2-2)

참 나 2023. 11. 2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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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음(有)과 없음(無)은 한 세트로서 존재한다: 그 어떤 가치도 반대개념 없이는 드러낼 수 없다 

​​여기에 무엇이 '있다'라고 할 때, '있다'라고 하는 그 말은 '없는 것'을 전제로 성립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내 지갑에 돈이 '있다'라는 말은 '돈이 없는 상황'에 빗대어진 말이다. 아예 처음부터 내 지갑에는 돈이란 게 없었다고 한다면 '나는 돈이 없다'란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네가 언제 돈이 있었던 적이 있냐, 늘 없었잖아?'  반대 경우도 역시 진리(眞理)인즉,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였든 어쨌든) 돈이 늘 있었던 사람은 '나 지금 돈이 있다'라는 말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 돈이 늘 있었으니까. 즉, '돈이 있다'란 말은 돈이 없을 수도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돈이 있다 와 없다를 반복할 때 비로소 우리는 돈이 '있다' 또는 '없다'란 말을 '의미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설명은 여러분의 의표(意表)를 찌릅니다. 이해가 되었다면 여러분은 '깨달음'에 접근한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적합한 '지갑 속의 돈'을 예(例)로 든 것인데, 노자(老子) 또한 도덕경 1장 첫머리에서 유(有)와 무(無)를 예로 들어 도(道=연기법,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를 설명한 것을 보니, 저의 방식과 같았다, 암튼, 여기에 깨달음(=연기법)의 실마리가 있습니다. '있다'란 말은 '없다'를 전제로(~바탕에 깔고) 성립하는 것이며,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로다. 이러한 설명은 세상에 처음 나온 것입니다. 석가모니 말씀도 바로 이것이었으니 이른바 연기법(緣起法)입니다.

* 명가명비상명: 명(名)이라 함은 사물, 대상의 이름이란 뜻인데, 그 보다는 있다 없다(有/無), 크다 작다(大/小), 높다 낮다(高/低) 이런 말도 다 이름(名, 일컫는 말)인 것임. 따라서 불가의 제법(諸法)과 같다. 노자의 '명가명비상명'과 불가의 '제법무아'는 같은 뜻임. 도덕경 첫머리의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을 해석하자면, 老子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道는 속세에서 말하는 그런 도리(道理)가 아니다(='연기법'이다). 세상의 온갖 이름(=諸法)들은 제 홀로 절대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니라"   [非/無常名=諸法無我]

* ​연기법에 대한 불가의 오해: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다'... 이런 두루뭉수리한 얘기가 아닙니다, 이건 순 맹탕이지요. 더군나 '앞의 것이 있으니 뒤의 것이 있다'... 이런 '인과관계'를 말한 것도 아닙니다. 그처럼 누구나 알만한 상식적인 것이라면 석가모니께서 목숨을 걸고 깨달음을 구하지 않았을 겁니다.

​■ 상반된 것은 상보적인 것 (Contradictory is complementary)

반야심경, 그리고 도덕경 (1~2장)에서는 모두 '상반된 것'을 例로 들었습니다. 반야심경은 '시제법공상'(諸法이 空한 例)이라 하여 세 가지 예를 들었는데, 곧 생과 멸, 구와 정, 증과 감 이었다.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 그것인데, 이를 불가(佛家)에서의 해석처럼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니다, 더럽지도 않고 깨끗지도 않다,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라고 한다면, 아무런 뜻(=메시지)이 없는 맹탕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해석은 당연히 잘못짚은 것입니다.

제가 연기법으로 해석을 다시 하였으니, ​​생(生)이 없다면 멸(滅)도 없는 것이요, 더러움이 없다면 깨끗함도 없다, 늚(增)이 없다면 줆(減)도 없다, 이것이 깨달음(정각)을 얻어서 세상에 처음 내놓는 저의 독창적인 해석입니다. 앞서 기술했던 '있다(有)와 없다(無)'의 예(例)에 대입해서 반야심경을 다시 들여다보면,

​​색즉시공...색(色, 가치있음)이란 것은 공(空, 가치없음)을 전제(卽是; 바탕에 깔음)로 성립하는 것이로다, 공즉시색...공(空)이란 것은 색(色)을 전제(卽是; 바탕에 깔음)로 성립하는 것이로다, 색불이공...색(色)과 공(空)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다(不異) 공불이색...공(空)과 색(色)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즉, 상반된 양자(兩者)는 동전의 앞,뒤 관계와 같으니, '앞'은 '뒤'가 있어서 앞이라고 하는 것이다,

※ 쉬운 '유(有)' 대신에 어려운 '색(色)'이란 단어를 쓴 까닭은, 그로써 나타내고자 하는 바가 객관적 실체(實體)가 아니라 그 실체(대상)에 붙어있는 주관적 가치(價置 value; 각자 다른 고정관념과 선입견, 편견)였기 때문입니다. 이 양자(兩者)의 구분, 즉, 있는 그대로의 '실체(=有)'와 거기에 붙어있는 '가치부분(=色)'을 분리,구분해 낼 수 있다면 깨달음에 접근한 것입니다.

¶ 이러한 해석, 설명은 세상에 처음나온 것으로서, 당연히 저의 지적재산권(知的財産權, intellectual property right) 입니다.

연기법: 세상의 모든 것(대상,존재; 이름 名)은 그 반대편 것(=상반된 가치)과 연동되고 의지해서 비로소 자신의 자리매김(좋던 나쁘던)을 갖는 것이로다, ​따라서, 서로 상반된 것끼리는 뒤집어 말하더라도 역시 진리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상보성(相補性, complementary)입니다. 색상표 상의 보색관계(빨강과 초록)는 '상보성-연기법'의 예(例) 입니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역도진(逆도眞)이 성립하는 진리인 즉, 아직 누구도 그 설명을 정확하게 해 내지 못하였으니, 오직 저의 연기법 해석으로만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노자 도덕경의 제2장은 여러가지 상반된 것을 예로 들었는 바, 이것은 반야심경에서 예로 든 세 가지(=제법)와 같은 것입니다. 즉, 이쁜 것(美)과 미운 것(惡)의 대비, 착한 것(善)과 그렇지 않은 것(不善)의 대비에 이어서; 유(有)무(無)는 상생(相生)이요, 난(難)이(易)는 상성(相成)이다, 장(長)단(短)은 상교(相교)하며 고(高)하(下)는 상경(相傾)이라, 전(前)후(後)는 상수(相隨)하며 존재하는 것이로다. 여기에 상(相, 상반된 것은 대등함) 字를 주목하시라, 또한, ​물질,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붙어있는 가치 부분을 말한 것임을 놓치면 안됩니다!

​물질(객관적 실체) 그 자체는 늘 그대로 존재하는 것 뿐이로다(=如如), 즉, 존재 자체는 불성(=皆有佛性)이므로 탐구의 대상이 아니다, 물질에 따라붙어 있는 우리의 가치 인식(=의식; 고정관념,선입견,편견)이 문제로다, 원효가 잠결에 해골바가지 속의 물을 마셨는데, 아침에 깨어서 보고는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바로 그 얘기입니다. 즉, 더럽다는 선입견만 없다면 해골바가지 속의 물이라도 '그냥 물'이더라!

​이는 세상살이 모든 것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일일이 열거하면 백과사전의 분량이 될 것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니, 반야심경은 딱 세 가지 예를 들었고, 도덕경은 많은 예(例)를 들었다, 그러나 모두 같은 얘기다, ​​도덕경은 생뚱맞은 '천지창조'의 설명이 아니요 일상의 예(例)로 석가모니가 깨달은 것과 같은 '연기법' 진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석가,노자,예수,증산...어느 성현의 말씀이든지 '진리'란 오직 하나 뿐이니... 

​노자(老子)는 과연 수도(修道) 고행이나 스승없이 직관만으로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노자,석가모니,공자, 이분들은 모두 BC 6세기 경 비슷한 시기에 살다 가셨는데, 넓게 잡아서 지구상의 BC 200 ~ BC 900년 이 시기는 '축(軸)의 시대'(Axial Age)라 일컬어지며 모든 종교, 철학의 기원으로 봅니다. 그 당시는 그것이 '시대정신'이었다, 인류(人類)는 한 번도 그 시대의 통찰(수준)을 넘어선 적이 없다고 평(評)합니다.

보통사람인 ​저는, 여러분보다 먼저 깨달음(正覺)을 얻어서, 이처럼 평문으로 진리를 설명해 드립니다. 지금은 앞선 시대보다도 파천황적 인존시대(人尊: 大衆이 깨달음을 얻는 시대. 天尊/地尊보다 至重)입니다. 여러분도 '연기법'진리를 깨달아서 석가, 노자, 예수, 증산과 같은 각자(覺者)반열에 오르십시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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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삶에서의 온갖 고통(싫다, 나쁘다 등)을 어떻게 對할 것인가? 음(陰)과 양(陽)으로 나눌 때 음(陰)에 대한 얘기입니다. 음(陰)은 '없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양(陽의 가치)이 존재하려면 반드시 같이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니, 궂은 날씨(陰)가 있어서 비로소 맑은 날씨(陽)는 그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로다. 음(陰)이 없다면 양(陽)은 그 가치를 잃게 되며,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 가치'는 반드시 그 반대가치에 의해서만 드러날 수 있는 법(法)이다. 이것을 가르켜 '연기법'이라 하였다. 따라서, 세상의 온갖 부정적 가치들을 보듬고 긍휼히 여기는 자비(慈悲)사상은 예수의 사랑, 증산의 해원상생과는 한 치 어긋남도 없이 같은 뜻이로다. 한국과 미국등 사회는 과거 보수적(保守的)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치/사회적 격변현상들을 날마다 목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