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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의 새로운 해석: 불(不)은 if not의 뜻

참 나 2023. 10. 2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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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생불멸(不生不滅): 태어남/생겨남(의 좋음)이 없다면 죽음/사라짐(의 나쁨/아픔)도 없다!  불구부정(不垢不淨): 더러움(의 불쾌함)이 없다면 깨끗함(의 기분 좋음)도 없다!  부증불감(不增不減): 늘어남(의 기쁨)이 없다면 줄어듦(의 상실감)도 없다!

※ 물질/실체가 있다,없다의 그런 얘기가 아니다! 그 물질/실체에 붙어서 내가 인식하는 가치(價値) 얘기다; 위에서, 좋다/나쁘다, 더럽다/깨끗하다, 기쁘다/슬프다의 감정(=諸行)은 상대적인 것이로다(=無常), 세상만물(=諸法)의 가치(=의미)들은 모두 상대적(=無我)인 것인즉 그 자체만의 절대가치가 있는게 아니로다, 

반대가치(부정)가 없다면 내 가치(긍정)가 어찌 있으랴? 주목할 가치는 오히려 '반대가치' 쪽이로다, 세상만물을 대할 때 '좋아함'에 들뜨지 않는다면 그는 '싫어함'에 가라앉지도 않는다, 역(逆)도 진(眞)이니; 공즉시색=색즉시공이고, 공불이색=색불이공 이로다,

세상을 대할 때 '더러움'을 개의치 않는다면, 그는 '깨끗함' 또한 대수롭게 여기지 않으리라, '기쁨'이 없거나 적다면 '슬픔'도 모르거나 적을 것이며, 기쁨이 크면 슬픔 또한 큰 것이로다, 원효의 '해골바가지 물'이나 화엄경의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는 같은 말입니다.

이리하여, 모든 고통에서 벗어났다(=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 내지는 '벗어날 수 있다' 라는 것이다, 반야심경에서 '세 가지 예'는 연기법의 핵심인 셈인데, 불가에서는 이제까지 해석을 잘못하였다,경전에 문제가 없다 해도, 그것을 이해하는 일은 별개의 일로서 어렵기는 마찬가지 였겠으나,첫 단추인 (佛家의) 해설부터 잘못되었으니, 반야심경을 이해하는 일은 난지난(難之難)일 수밖에...ㅠ

- 불생 즉 불멸(=不生不滅) - 불구인즉 부정이라(=不垢不淨) - 부증이면 불감이다(=不增不減)

이것이 바로 '시제법공상(是諸法空相)이라 하여 모든 것이 공(空) 하다고 한 '세 가지 예(例)'를 든 것이다, 그 내용은 뭔가? 만물 만상(= 諸法 = 單語나 이름은 선입견 = 노자 도덕경 名可名 非常名)은 가치놀음의 얘기다, 그것도 '상대적 가치'다, 한 쪽이 반대쪽을 규정하는 숨은 이치(=玄之又玄, 아득한 이치)를 말한 것이다, '제법무아'라 할 때의 그 제법(諸法)에 얹혀있는 감정(emotion)부분은 제법과는 별도로 제행무상(諸行無常)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불(不)을 번역할 때 '아니다'라고 한 것이 큰 잘못이다, 여기선 '없다'로 해야 한다.                                             그래야만 「연기법」의 설명이 되는 것이다. '不可(~수 없다)'란 말에서처럼, 不은 '없다' 로 해야 한다.

※ 동아출판사의 漢韓大辭典: 부/불(不)은 ①비(非) ②물(勿) ③무(無) 의 뜻으로 쓴다 아니다 대신에 없다 를 쓸 수 있고,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이 때는 앞 뒤로 (문장의) 글이 조금 바뀝니다.

例 1: 비인정 불가근(非人情不可近) 사람은 정(情)이 아니면 가까워질 수 '없으니'(不可近) 남을 대할 때 너무 각박하고 딱딱하게 대하지 말도록 하라. 이것을 만약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석한다면 그 무슨 의미가 있으리오?

例 2: 불구대천(不俱戴天)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반야심경을 축약 편집했던 '구마라집/현장'은 불(不)을 if not, ~이 '없다(면)'의 뜻과 동시에 '아니다' 의 두 가지 의미(용도)로 썼을 겁니다.  * [도일체고액] 삶의 모든 고통으로 부터 벗어났다, 이 구절은 누군가 끼워넣은 것이 분명한데, 산스크리트 원문에는 없는 말 입니다. 영문 판에도 이 부분은 없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건데, 누군가 깨달음을 얻었다 해서 모든 삶의 고통으로 부터 벗어난다는 말은 허황된 얘기로다; 우리는 삶의 힘든 국면에서 제한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 뿐이다, 삶의 모든 고통에서 해방이 된다고라?  아무리 깨달았더라도 속세의 삶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말 그대로 '모든 고통이 다 없어졌다'고 하게되면 (연기법에 의하여) 기쁨과 즐거움도 사라졌다는 의미가 되는 데, 그처럼 무색무취한 (神仙의) 삶은 더 이상 인간의 삶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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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결점(缺點)이 없다면, 발전(發展)도 없다' 나 자신 또는 배우자,가족,세상의 잘못됨을 그리 부정적으로만 생각지 말라, 냄새나는 똥(糞)도 잘 쓰면 비료(肥料)가 되는 이치니, 이것이 바로 '부처의 자비, 예수의 사랑, 증산 의 (해원解寃)상생'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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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을 비롯, 경전(의 해석)이 맞나 틀리나를 판별하는 기준은 오로지 법력(유효성)이어야 한다, 경전의 글귀가 맞는다고 치고, 정말 그 말씀대로 되기는 하는가? 복음(福音)으로서 효력이 있던가? 그대로 하니 정말 모든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던가? 여기에 '과연 그렇다'라고 대답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미 깨달음 경지에 든 사람이겠으나, 어지간한 사람도 일정 부분 이해할 수는 있어야 한다, 지금껏, 불가의 반야심경 해설이나 해석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이해가 불가능했다,

현장(AD 7C) 이후 1,400여년 한낱 부적, 주문 따위의 취급을 받으면서 먹통이었던 '반야심경'을 2020.1.17 깨달음을 얻은 제가, 불(不)을 '~이 없다면(if not)'으로 해석하여 빛을 보게 만들었습니다.

반야심경이나 불법(=연기법)은 결코 '상대성원리'와 같은 물질법칙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물리법칙은 '생의 고뇌'를 없애는 방편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럼 뭐냐? 내 마음을 어떻게 돌려먹는가, 내 마음을 쓰는 방편(=心法) 그 얘기를 해야 한다; 물질은 그대로 둔다. 일찌기 성철 스님은 이러한 '참 나/연기법'의 낙처를 얻지 못하여, 애먼 물리법칙(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을 끌어들여서 설명하면서 "내 말에 속지 말아"라고 궁색한 말을 해야했으니...

'반야심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편 vs 반대편>을 대구(對句)로 놓고 한 설명입니다. 이처럼 진리(=佛法)란 것은 서로 '상반(相反)된 것의 조화'를 말하는 것입니다(=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따라서 모든 종교의 설법(說法)이나 설명이 그 틀(=연기법)에서 벗어나는 순간, 삼천포로 빠지고 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