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제행무상'에 대한 바른해석

참 나 2023. 10. 2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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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말씀, 그중에서도 핵심 가르침은 반드시 '연기법'에 대입해서 설명되어야 합니다. 연기법이 아닌 상식적인 얘기를 한다거나 아니면 애먼 물질계 법칙을 끌어들여서 E=MC²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법칙 운운한다면, 그따위 설명은 진즉에 삼천포로 빠진 것입니다. 종교, 도(道)는 물질계나 그 법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오로지 정신세계(=내 마음)를 다스리고 상대하는 것입니다.

​이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게 정확히 무슨 말인 것이냐? 제법무아(諸法無我)와 다른 점은 무엇이냐? 행(行)이라 함은 '희로애락애오욕'과 같은 마음 작용을 말한 것이다, 이는 틀림이 없으렷다, 그다음의 무상(無常)이란 것은 또 뭐냐? 절댓값이 없다 란 뜻이다. 상(常)은 늘 그러하다 란 뜻이니 사전에 있는 법(法)이라고 하자,

​제행무상은, 사람의 감정은 절댓값이 없는 것이라는 해석이 되는데 이것은 뭔가 찝찝하다, 더 나아가, 사람의 감정이란 늘 한결같은 것이 아니다 라고 해 본 들 더욱 찝찝하다, 왜 그런가 하면, 도대체 그런 '일반상식'이나 얻으려고 대근기(大根機)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이 목숨 건 수행을 했더란 말이냐?  따라서, 해석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로다! 이제껏 세상에 나온 제행무상의 해석은 모두 다 잘못된 것이다; 진리가 뭔지도 모르고 대중을 오도하는 대한불교조계종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한심하고 또 한심하다,

​​앞서, 제가 제행무상에 대한 해석을 두 차례 올리면서 '이는 상식적인 얘기'라고 전제하였습니다. 연이나, 저는 깨달음을 얻었기에 제가 모르는 진리의 말씀이란 있을 수가 없다 하여, 연기법에 입각해서 제행무상을 재삼(再三) 다시 해석하고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저 유명한 반야심경은 연기법 얘기다, 거기서 '제법(諸法)이 공한 모습은 이러하다'(=是諸法空相, 제법공상=제법무아) 하고 예(例)를 든 세 가지가 있으니,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다, 여기에 제행무상을 결부시킨 설명을 하겠습니다.

불생불멸: 태어남이 없다면 사라짐도 없다...이것이 저의 독창적인 해석입니다, 지금처럼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이리되면 이것은 연기법 얘기가 아님은 물론, 담겨있는 내용이 암껏도 없기 때문에 잘못된 해석입니다. 불구부정: 더러움이 없다면 깨끗함도 없다, 이것을 지금처럼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다'로 해석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부증불감: 늘어남이 없다면 줄어듬도 없다가 저의 독창적 해석입니다. 이 또한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라고 한다면 (진리의) 내용이란 게 아무것도 없는 맹탕이므로 잘못된 해석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제법무아(諸法無我)에서, 생과 멸, 구와 정, 증과 감의 예(例)에서 보듯이, 한 무엇(法)의 존재감은 그 반댓것이 있음으로 해서 그 가치가 드러남은 물론, 더욱 돋보이는 것이로다; 반대 것에 비추어지지 아니하고 자체 만의 절대가치(絶對價置)란 것은 존재할 수가 없다(이것이 無我,空相이다; 모든 空,無의 낙처) 그것이 제법무아의 바른 해석, 연기법 이로다.                                                                                                                  

다음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설명인데 '제법무아'와 동떨어진 설명을 하면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자유분방하게 접근하면 '제행무상'은 연기법에서 벗어나서 삼천포로 빠져버린다, 어디까지나 '제법무아-연기법'과 연결해서 제행무상을 설명해야 한다, 이로써 석가모니 부처님이 목숨 건 수행을 통하여 얻어진 진리(연기법)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불생불멸: 생(生)과 멸(滅)은 제법(諸法)의 얘기인데, 그에 부연하여, 생(生)하니 '좋다/기쁘다'라거나 멸(滅)하니 '슬프다, 나쁘다'라고 하게 되면, 여기 추가된 감정 부분이 행(行)이다, 불구부정도 마찬가지다; 더럽다,깨끗하다 라는 것은 제법(諸法)인데, 여기에 더러워서 싫다,깨끗해서 좋다 라고 하면 이 추가된 감정 부분은 제행(諸行)의 영역인 것이다,  부증불감도 마찬가지다; 늘었다,줄었다 는 제법의 영역, 늘어서 즐겁다/좋다 고 하거나, 줄어들어 걱정이다/나쁘다 라고 하면 여기 추가된 감정 부분이 제행(諸行)인 것이다. 따라서, 제행이 무상 이라하면 (연기법에 의하여) 한 감정(感情)은 그 상반된 감정에 (존재의) 빚을 지고 있다란 뜻인 겁니다. 제행, 제법은 대부분 서로 겹쳐지는 관계지만 전부가 다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분리해서 3법인이 된 것입니다. 즉 큰 것, 강한 것, 밝은 것 심지어 깨끗한 것(이상 제법)은 '좋은 것'(제행)이지만, 좋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제법과 제행은 별개라고 봐야 마땅한 것입니다.

 ​​​​'희로애락애오욕' 이라는 감정(感情), 즉 제행은 그 자체의 절댓값을 갖는 것이 아니다; (상반된) 반대 감정에 연기(緣起)되어 있다...그것이 연기법에 입각한 '제행무상'의 바른 해석입니다. 즉, 기쁨은 슬픔이 있기에 더욱 기쁜 것이요, 깨끗함이 좋다 라는 것은 더러움이 싫기에 그로인하여(비로소) 그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즐거움이란 것은 괴로움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이로 인하여 더욱 즐거운 것이니라;  이 때, 상반된 양자(兩者)는 자리를 바꾸어도 진리인 것이니(=逆도眞), 相生/相補하는 관계로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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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래서 어떻단 말이냐...? 이 대답이 나와야 비로소 마무리가 되겠습니다. 진리(眞理)란 것이 도대체 왜 있는 것인지를... 세상의 온갖 부정적인 것 또는 반대되는 것에 대해서 사특하니 '쓸모없다' 라 커니, '없애버려야 한다'란 생각을 하지 말지어다. 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의 반대 가치가 반드시 있는 법(法)이다; 부정적, 상반된 가치의 존재 의미를 잘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시대정신(時代精神)이다; (예수의)사랑, (부처의)자비, (증산의) 해원상생이란 바로 그것을 말씀한 것이었다!

이 진리의 말씀(=연기법)은 부처님, 예수님 이후로 제대로 전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생전처음 접해보는 것입니다. 제자 도마(Thomas)한테 예수님 가라사대, '너는 내 말에 취해있느니라'라는 도마복음의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 본문을 보고나서 여러분들이 갖는 느낌일 겁니다. 다 들 혼몽(昏懞)하시지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를 쓴 것일까?

[참고] Jesus said, "I am not your master. Because you have drunk, you have become intoxicated from the bubbling spring which I have measured out. [출처] 도마복음(13 절):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겠느뇨?| 작성자 사랑

[번역] 나는 너의 주인님(master)이 아니로다. 왜냐하니, 너는 지금 내가 나눠 준 부글거리는 샘(=진리말씀)에 잔뜩 취해 있는 것이니라 (말씀의 뜻: 도마여, 너는 내가 한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터무니없이 나를 '주인님'이라 하느뇨?)

예수의 제자(弟子)인 '도마'가 이지경이었거늘 항차 예수님 없이 사는 지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진리를 알 수 있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