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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음(有)과 없음(無)은 한 세트로서 존재한다: 그 어떤 가치도 반대개념 없이는 드러낼 수 없다
여기에 무엇이 '있다'라고 할 때, '있다'라고 하는 그 말은 '없는 것'을 전제로 성립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내 지갑에 돈이 '있다'라는 말은 '돈이 없는 상황'에 빗대어진 말이다. 아예 처음부터 내 지갑에는 돈이란 게 없었다고 한다면 '나는 돈이 없다'란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네가 언제 돈이 있었던 적이 있냐, 늘 없었잖아?' 반대 경우도 역시 진리(眞理)인즉,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였든 어쨌든) 돈이 늘 있었던 사람은 '나 지금 돈이 있다'라는 말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 돈이 늘 있었으니까. 즉, '돈이 있다'란 말은 돈이 없을 수도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돈이 있다 와 없다를 반복할 때 비로소 우리는 돈이 '있다' 또는 '없다'란 말을 '의미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설명은 여러분의 의표(意表)를 찌릅니다. 이해가 되었다면 여러분은 '깨달음'에 접근한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적합한 '지갑 속의 돈'을 예(例)로 든 것인데, 노자(老子) 또한 도덕경 1장 첫머리에서 유(有)와 무(無)를 예로 들어 도(道=연기법,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를 설명한 것을 보니, 저의 방식과 같았다, 암튼, 여기에 깨달음(=연기법)의 실마리가 있습니다. '있다'란 말은 '없다'를 전제로(~바탕에 깔고) 성립하는 것이며,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로다. 이러한 설명은 세상에 처음 나온 것입니다. 석가모니 말씀도 바로 이것이었으니 이른바 연기법(緣起法)입니다.
* 명가명비상명: 명(名)이라 함은 사물, 대상의 이름이란 뜻인데, 그 보다는 있다 없다(有/無), 크다 작다(大/小), 높다 낮다(高/低) 이런 말도 다 이름(名, 일컫는 말)인 것임. 따라서 불가의 제법(諸法)과 같다. 노자의 '명가명비상명'과 불가의 '제법무아'는 같은 뜻임. 도덕경 첫머리의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을 해석하자면, 老子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道는 속세에서 말하는 그런 도리(道理)가 아니다(='연기법'이다). 세상의 온갖 이름(=諸法)들은 제 홀로 절대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니라" [非/無常名=諸法無我]
* 연기법에 대한 불가의 오해: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다'... 이런 두루뭉수리한 얘기가 아닙니다, 이건 순 맹탕이지요. 더군나 '앞의 것이 있으니 뒤의 것이 있다'... 이런 '인과관계'를 말한 것도 아닙니다. 그처럼 누구나 알만한 상식적인 것이라면 석가모니께서 목숨을 걸고 깨달음을 구하지 않았을 겁니다.
■ 상반된 것은 상보적인 것 (Contradictory is complementary)
반야심경, 그리고 도덕경 (1~2장)에서는 모두 '상반된 것'을 例로 들었습니다. 반야심경은 '시제법공상'(諸法이 空한 例)이라 하여 세 가지 예를 들었는데, 곧 생과 멸, 구와 정, 증과 감 이었다.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 그것인데, 이를 불가(佛家)에서의 해석처럼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니다, 더럽지도 않고 깨끗지도 않다,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라고 한다면, 아무런 뜻(=메시지)이 없는 맹탕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해석은 당연히 잘못짚은 것입니다.
제가 연기법으로 해석을 다시 하였으니, 생(生)이 없다면 멸(滅)도 없는 것이요, 더러움이 없다면 깨끗함도 없다, 늚(增)이 없다면 줆(減)도 없다, 이것이 깨달음(정각)을 얻어서 세상에 처음 내놓는 저의 독창적인 해석입니다. 앞서 기술했던 '있다(有)와 없다(無)'의 예(例)에 대입해서 반야심경을 다시 들여다보면,
색즉시공...색(色, 가치있음)이란 것은 공(空, 가치없음)을 전제(卽是; 바탕에 깔음)로 성립하는 것이로다, 공즉시색...공(空)이란 것은 색(色)을 전제(卽是; 바탕에 깔음)로 성립하는 것이로다, 색불이공...색(色)과 공(空)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다(不異) 공불이색...공(空)과 색(色)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즉, 상반된 양자(兩者)는 동전의 앞,뒤 관계와 같으니, '앞'은 '뒤'가 있어서 앞이라고 하는 것이다,
※ 쉬운 '유(有)' 대신에 어려운 '색(色)'이란 단어를 쓴 까닭은, 그로써 나타내고자 하는 바가 객관적 실체(實體)가 아니라 그 실체(대상)에 붙어있는 주관적 가치(價置 value; 각자 다른 고정관념과 선입견, 편견)였기 때문입니다. 이 양자(兩者)의 구분, 즉, 있는 그대로의 '실체(=有)'와 거기에 붙어있는 '가치부분(=色)'을 분리,구분해 낼 수 있다면 깨달음에 접근한 것입니다.
¶ 이러한 해석, 설명은 세상에 처음나온 것으로서, 당연히 저의 지적재산권(知的財産權, intellectual property right) 입니다.
■ 연기법: 세상의 모든 것(대상,존재; 이름 名)은 그 반대편 것(=상반된 가치)과 연동되고 의지해서 비로소 자신의 자리매김(좋던 나쁘던)을 갖는 것이로다, 따라서, 서로 상반된 것끼리는 뒤집어 말하더라도 역시 진리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상보성(相補性, complementary)입니다. 색상표 상의 보색관계(빨강과 초록)는 '상보성-연기법'의 예(例) 입니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역도진(逆도眞)이 성립하는 진리인 즉, 아직 누구도 그 설명을 정확하게 해 내지 못하였으니, 오직 저의 연기법 해석으로만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노자 도덕경의 제2장은 여러가지 상반된 것을 예로 들었는 바, 이것은 반야심경에서 예로 든 세 가지(=제법)와 같은 것입니다. 즉, 이쁜 것(美)과 미운 것(惡)의 대비, 착한 것(善)과 그렇지 않은 것(不善)의 대비에 이어서; 유(有)무(無)는 상생(相生)이요, 난(難)이(易)는 상성(相成)이다, 장(長)단(短)은 상교(相교)하며 고(高)하(下)는 상경(相傾)이라, 전(前)후(後)는 상수(相隨)하며 존재하는 것이로다. 여기에 상(相, 상반된 것은 대등함) 字를 주목하시라, 또한, 물질,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붙어있는 가치 부분을 말한 것임을 놓치면 안됩니다!
물질(객관적 실체) 그 자체는 늘 그대로 존재하는 것 뿐이로다(=如如), 즉, 존재 자체는 불성(=皆有佛性)이므로 탐구의 대상이 아니다, 물질에 따라붙어 있는 우리의 가치 인식(=의식; 고정관념,선입견,편견)이 문제로다, 원효가 잠결에 해골바가지 속의 물을 마셨는데, 아침에 깨어서 보고는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바로 그 얘기입니다. 즉, 더럽다는 선입견만 없다면 해골바가지 속의 물이라도 '그냥 물'이더라!
이는 세상살이 모든 것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일일이 열거하면 백과사전의 분량이 될 것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니, 반야심경은 딱 세 가지 예를 들었고, 도덕경은 많은 예(例)를 들었다, 그러나 모두 같은 얘기다, 도덕경은 생뚱맞은 '천지창조'의 설명이 아니요 일상의 예(例)로 석가모니가 깨달은 것과 같은 '연기법' 진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석가,노자,예수,증산...어느 성현의 말씀이든지 '진리'란 오직 하나 뿐이니...
노자(老子)는 과연 수도(修道) 고행이나 스승없이 직관만으로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노자,석가모니,공자, 이분들은 모두 BC 6세기 경 비슷한 시기에 살다 가셨는데, 넓게 잡아서 지구상의 BC 200 ~ BC 900년 이 시기는 '축(軸)의 시대'(Axial Age)라 일컬어지며 모든 종교, 철학의 기원으로 봅니다. 그 당시는 그것이 '시대정신'이었다, 인류(人類)는 한 번도 그 시대의 통찰(수준)을 넘어선 적이 없다고 평(評)합니다.
보통사람인 저는, 여러분보다 먼저 깨달음(正覺)을 얻어서, 이처럼 평문으로 진리를 설명해 드립니다. 지금은 앞선 시대보다도 파천황적 인존시대(人尊: 大衆이 깨달음을 얻는 시대. 天尊/地尊보다 至重)입니다. 여러분도 '연기법'진리를 깨달아서 석가, 노자, 예수, 증산과 같은 각자(覺者)반열에 오르십시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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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삶에서의 온갖 고통(싫다, 나쁘다 등)을 어떻게 對할 것인가? 음(陰)과 양(陽)으로 나눌 때 음(陰)에 대한 얘기입니다. 음(陰)은 '없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양(陽의 가치)이 존재하려면 반드시 같이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니, 궂은 날씨(陰)가 있어서 비로소 맑은 날씨(陽)는 그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로다. 음(陰)이 없다면 양(陽)은 그 가치를 잃게 되며,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 가치'는 반드시 그 반대가치에 의해서만 드러날 수 있는 법(法)이다. 이것을 가르켜 '연기법'이라 하였다. 따라서, 세상의 온갖 부정적 가치들을 보듬고 긍휼히 여기는 자비(慈悲)사상은 예수의 사랑, 증산의 해원상생과는 한 치 어긋남도 없이 같은 뜻이로다. 한국과 미국등 사회는 과거 보수적(保守的)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치/사회적 격변현상들을 날마다 목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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