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보고 듣는 일체의 것(의식행위)은 두뇌가 재해석한 것

참 나 2023. 7. 2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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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았다(眼), 들었다(耳) 라고 하는 것, 심지어 어떤 냄새(鼻)가 났다, 맛을 봤다(舌), 만졌다(身), 생각했다(意) 라는 감각의식들은 과연 얼마나 '객관적 사실'을 말하는 것일까? 인류 중에서 이런 질문을 하고 정확한 답을 얻은 사람은 석가모니 부처님,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었다.

​사람은, 자신이 보거나 들은 세상만물은 당연히 내지는 거의 틀림없이 객관적인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듣는 일은 (아무리 분명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주관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라는 사실을 모른채 살아왔던 것이다. 성현들은 그것을 밝혀냈으며 일컬어 '깨달음'이라 하였고, 종교가 된 것이다. 오늘날의 퇴색한 불교나 기독교는 성현들의 진리를 온전히 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 봅시다, 곤충이나 일단의 동물들은 자신이 잡혀먹을 것 같은 위기에 처하면 모든 행동을 멈추고 죽은 척을 한다. 이는 사람한테는 안통하는 수법이지만 동물의 세계에서는 정확하게 통하는 생존수법이다. 왜 그럴까? 개구리는 날아다니는 파리는 먹이로 보지만 움직이지 않는 파리는 작은 흑점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즉, 앉아서 꼼짝도 않는 파리는 자신의 먹이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한심한 또는 우스꽝스런 기능밖에 갖고 있지 않는 것일까?

그것을 거꾸로 말하면, 우리 인간들은 얼마나 추리력과 상상력을 발휘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동물들의 두뇌는 추리력, 상상력이 없으므로 단순하다, 즉, 움직이면 먹잇감이고 안 움직이면 먹잇감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포식자 앞에서 본능적으로 꼼짝않고 있으면 잡아먹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사람의 인지능력은 학습과 경험(=선입견, 편견)으로, 움직이건 움직이지 않건, 대상을 머릿속으로 해석해서, 이것은 무엇이다 라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헛것을 보거나 듣기도 하고, 자기가 보고싶은 대로 보는 실수를 저지른다. 우리의 잠재의식에 깔려있는 귀신(鬼神)이란 것도 위험회피 본능과 두뇌해석의 합작품인 헛것일 뿐이다,

반야심경에서 '오온개공(五蘊皆空, 인식하는 모든 것이 다 空한 것)'이라 하였듯이, 사람의 인지능력 (=안,이,비,설,신 또는 색,수,상,행,식)은, 실체 있는 것이 아닌, 두뇌가 대상을 재해석한 것이다 란 말씀이다.그 재해석한 것이 맞다 틀리다 라는 문제와 상관없이, 본질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것'이 아니란 점이 중요하다, 즉, 우리는 (100%) 두뇌가 해석한 방식으로 대상을 보거나 듣는 것일 뿐이다 란 사실을 아는 것이 깨달음인 것이다. 우리가 대하고 인식하는 오감,육감의 기능은 본질적으로 (두뇌의) 추리력과 상상력의 소산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불가에서 그토록 '있는 그대로'란 말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만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방식대로 보기(=가치부여)때문에 그렇습니다. 대상을 보거나 듣는 일이란 것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 즉 나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과 함께, 내 의식작용이란 것이 객관적(=있는 그대로의 것)이 아님을 아는 것 그것이 곧 깨달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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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는 만큼 보인다'...사람은 내 머리 속에 이미 들어있는 것(=지식,경험,선입견,편견)에 비춰보아서(=照見) 보고 듣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전 처음 대하는 것은, 그에 대해서 내 두뇌 속에 암껏도 들어있는 것이 없으므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어도, 그것은 무엇이다 라고 인식(해석)해 내지를 못하게 됩니다.

심지어 '못봤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시지불견 청지불문'(視之不見 聽之不問: 보아도 못보고, 들어도 못듣는다) 이란 것인데, 사람들이 도(道)에 대해서 얘기를 들으면 이런 모습을 보이거나 화를 내고 맙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그와 마찬가지 반응(=뭔 소린지 모르거나 화를 내는)을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