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야, 부부야 .

세상살이는 모두 '비교급'이다.

참 나 2023. 4. 24. 19:07

*  *  *

한 번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한 번 쯤 다시 태어나지 못하면 인간은 평생 '우물 안 개구리' 다.

 

세상이 넗고 크단 것을 모르고 (알량한) 자기생각, 자기능력만 생각하고 세상(사람들)을 대하는 것입니다.

내 주변의 누구, 그가 훌륭한 사람인지 알아보지를 못합니다. 된통 당하고 나서야 어슴프레 알게 됩니다.

세상은 내 생각보다 더 넓고 크고,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능력있고 똑똑한 사람이 많이 있는가 보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인데, 흔히 '고부간의 갈등'을 보자면,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어린애처럼

생각되기도 하거니와, 자기 살던 방식과 다르다, 이 다른 것을 자기 틀에서 벗어났다고

왜 그러냐며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한다...이게 '우물 안 개구리'인 것입니다.

남자들은 직장/조직생활을 통해서 (혹시라도) 자신의 한계점에 대해서 배울 기회가

있다지만, 여자들은 어디 그럴 기회가 있어야지...ㅠ

 

세상이 몇 번 뒤집어지고 나서야 어렴풋이 나마 가능한 얘기입니다.

돌아버리겠다, 미쳐버리겠다...하는 시련을 겪었다 하더라도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어느 쪽이 깨닫느냐, 시어머니냐 며느리냐? 에고, 그만 부질없는 얘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자기를 바꿀 생각을 한 단 말입니까? '인간개조'는 깨닫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로다,

이 때문에 '공황장애' 환자들이 유행처럼 많은 듯 합니다만, 마치 미쳐버린 것 같은 극한상황을 경험한다

해도 자기사고 방식이나 하던 행동을 바꾸는 일은 (죽기보다) 힘들다, 남이 바꾸라고 하면 더 힘들다,

 

내가 사는 9층은, 위 10층에 사는 노인네와 층간소음 문제가 있는데, 몇 차례 메모쪽지가 오고 간 이후

다행히 조금 낫긴 하나, 소리내는 행위는 그대로다.

새벽에 노인네가 아침준비 하느라 주방에서 왔다 갔다 하느라 발뒷꿈치로 콩콩대는데,

그게, 슬리퍼만 신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이건만, 이웃간 층간소음문제로 살인사건도 나고,

엘리베이터 벽에 (생활안내) 공공 전단지도 붙어있건만, (노인네가 평생)안 신던 실내슬리퍼를

신어야 한다는 것은 마치 천지개벽이 나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로다,

물론, 누군가 '시끄럽다'고 말하면, 조용히 해 주는 경우도 있으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지 버릇 개 주나...'란 말도 합니다만, 층간소음이란 게 바로 그런 얘기인 것입니다.

마무리 하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윗층 노인네의 발망치질 소리나, 내 처가 주방에서 내는

(생활)소음이나 방 안에서 듣기에는 (신경이 거슬리기는)마찬가지다,

 

'반야심경'을 얘기했는데, 진리란 것이 생활소음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리오?

반야심경의 연기법(진리)을 알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옵니다.

세상살이의 모든 고통은 그 보다 더 큰 고통을 상정한다면 덜어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그 진리를 쓰고 있습니다. "그만 하길 다행이야..." 또는 "~~한 셈 치지 뭐"

똑같은 말을 서양사람들은 (영어사전에 있듯이) "It could be worse"라고 합니다.

 

이처럼 세상살이 희로애락은 오로지 '비교급' 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분이 석가모니 부처님 입니다.

큰 놈은 더 큰 놈 앞에서는 (오히려) 작아 보인다, 작은 놈은 더 작은 놈 앞에서는 (오히려) 커 보인다,

즉, 절대적으로 크다 또는 작다 란 것은 없다(=절대가치 空, 0)란 뜻입니다.

그게 연기법의 정확한 뜻이니, 상반된 경우에 비춰도 보고, 돌려서 생각도 하며 '고통'을 다스려라, 

 

힘들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더 힘든 일을 상정한다면 (내가) 지금 힘들다는 그것은 빛을 잃는다,

오래전, 동아일보 신문에 연재되었던 시사만화 '고바우(영감)'에는 이런 장면도 있습니다.

거지 부자(아버지와 아들)가 길거리 노숙을 하는데, 불자동차(소방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아들한테 말하는 장면; "우린 집에 불이 날 걱정도 없으니 얼마나 좋으냐"...ㅋ/ㅍ

 

아프다, 불편하다, 불행하다, 외롭다...다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일은 비교급이다, 따라서 어떤 일을 당했을 때, 그보다 더 컸을, 또는 더 적었을 가능성에다

비춰보아(=반야심경의 照見) 생각하는 것, 이것이 '마음먹기 테크닉'입니다.

그러하니, 도를 닦는 일은, 이처럼 마음 돌려먹는 테크닉에 기술자가 되는 일이로다,

이게 말 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깨달았다고 하는 나 자신도 힘들어 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자긍심을 갖고 연습 또 연습을 해야하고, 하면 다 될 수 있는 일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