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매일 오후, 다섯 시 전후로 아파트 놀이터에를 갑니다.
손주 둘을 하원(어린이집에서 데리고 나옴)시키는 데, 다른 애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을 멀찌기 서서
지켜 보기도 하고, 그네 태워주기(바이킹, 꽈배기, 꽃게타기, 눈 감고타기...), 공차기, 던지기, 배드민턴,
줄넘기, (매)달리기 등을 가르쳐 줍니다. 동네 애들(남아, 여아)이 많다보니 상대를 해 주게 됩니다. 그런데,
가끔 보는 애들 중에, 내가 마뜩치 않은 사내녀석이 둘(8살, 9살) 있습니다.
또래나 동생 뻘 애들한테 욕을 하고, 뺐고, 때리고, 밀치기도 하는 데, 주의를 주면 듣는 척 합니다. 그 때 뿐이지요.
다른 한 애는 생 떼, 고집이 세고 억지를 부리는 데 가관입니다. 내 것 네 것을 가리지 않고, 뭣이든 먼저 잡으면
자기 소유인 것 처럼 행세합니다. 자기랑 안 놀아주면 "저리가세요', "나가세요" 라고 지시(?)를 하는 꼬라지가 영 불쾌합니다.
그 '두 아이'들은 어른 세계의 또 다른 모습인데, 버릇없는 두 넘을 내 마음 속에 담아 두어야 할 지, 말 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성경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피터(Peter)가 예수한테 와서 물었습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한테 잘못을 저지르는 데 얼마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 정도 하면 될까요?"
예수가 말하길, "내가 말하노니,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 이니라" [마태복음 18:21~22]
Then Peter came to Jesus and asked, "Lord, how many times shall I forgive my brother when he sins
against me? Up to seven times?"Jesus answered, I tell you, not seven times, but seventy-seven times.*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그 장점만 취하고 혹 단점이 보일지라도 잘 용서하여 미워하지 말라"
[豫示 46, 증산 말씀, '大巡典經']
그나마 쉬워서 다행인 것이, 아이들 세계는 어른들 보다 단순하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여기고,
마음에 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다음에 만나면 그냥 상대하면 된다, 단지, 놀아달라는 얘기를 들으면 (속으론 미운
마음이 남아 있더라도) 놀아주면 된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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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어른이라 한들 마찬가지다. 내 배우자가 됐든 아니면 모임에서의 아무개라 할지라도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거듭 용서를 해야 한다. '용서하는 일'을 마치 나의 습관처럼 길들여야 하느니,
* 영문 성경은 "일흔 일곱 번" 이라 씌여있고, 한글 성경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고
잘못 번역해 놓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더 심한 오역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용서의 횟수를 '일곱 번씩 일흔 번' 운운하며 셀 정도라면, 이는 예수말씀과는 한참 멀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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