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 도닦기

'있는 그대로 본다'란 말 뜻 (價値判斷의 終熄)

참 나 2019. 7. 13. 16:37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은 종교, 명상, 수행/수도생활의 키워드(keyword) 입니다.


이 말처럼 실천을 하는 생활은 그만두고 라도, 무슨 뜻인지 이해조차 못한다면,

그는 기실 '신앙인'도 아닌 것이다,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초보 언저리일 터이고...     

공부를 많이 했거나, 아무리 훌륭하단 평가를 받는 사람이라도, 이 문구를 모른다면

종교, 명상, 깨달음에 관해서 말을 하기란 '족탈불급'일 터이다, 

  

※ 가톨릭, 기독교인, 불교인 이라면 스스로에게 물어 보십시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 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 말 뜻을 이해해 보려고 했는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한테 잘 설명할 수 있는가?


세간에서는 '인문학이 대세다'라는 말을 합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라는 개념은,

인문학(人文學, liberal arts)의 기본바탕(fundamental)이다,  

동서고금의 선각, 성현, 모든 종교, 명상은 이거 하나를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알면 동서고금의 주요 사상을 활연관통(豁然貫通)하게 됩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


종교나 수행생활이라도, 속세와 영합하고 형체만 겨우 남은 것이 오래 전입니다,

 타고 남은 잿더미 속에서 희미하게 살아나는 불씨, 즉 '인문학이 대세다'라는 말이 반갑습니다. 

이나, 이 문장이 전하는 메시지를 알건 모르건 뭣이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종교나 명상, 철학적 사유(思惟)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지점(目標点)을 말하고 있으므로,

이 말 뜻을 모른다면, 그대와의 깊은 (人文學的)대화는 어렵겠지요.


지식인, 석학, 석좌교수, 어른, 큰스님, 대가나 달인 등의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들 중에서,

이 말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평범하면서 심심찮게 들먹이는 단문이지만, 

여태껏 그 누구도, 대놓고 설명하는 사람을 아직 못봤습니다. 

누가 설명했다 하더라도, 본인이 얼마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며'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은 

또 다른 얘기일 겁니다.  그게 'OK'라면 그는 반드시 성자(聖者)일 것이다. 

석가,예수,크리슈나(Jidu) 같은, 또는 증산과 같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 

 a. 거울    

b. 스크린

c. 물 표면

                                                             (=海印, 잔잔한 바다 위에 도장(月)을 찍은듯 하다는 비유


a,b,c에 비추인 세상만물의 상(像)에는, 속세가 부여하는 가치 (예를들면,

오염, (반야심경의)색, 선입견,편견과 고정관념' 따위)가 떨어져 나가고 없는 것이다.

이쁜 것도 없고 미운 것도 없으며,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다, 

귀한 것도 천한 것도 없다, 비싼 것도 없고 싼 것도 없다, 내 맘에 드는 것도 없고 

안드는 것도 없으며, 쓸모가 있는 것도 없고 쓸모가 없는 것도 없다, 

이렇듯 만물 만상은 그냥 제 나름대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

일체의 가치/판단을 부여하지 말라, 평가의 잣대기도 다 나투라, 

'가치판단'을 하는 순간 시비/다툼이 일어나고, 안 하는 순간 일체의 시비/다툼이 사라진다,

그냥 '존재하는 구나' 하는 정도로 대상을 인식하라, 

내가 분별해 내는 모든 (세상살이) '가치'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라 (=판단의 終熄이다)

그리하면, 세상살이에서 내가 '무장해제'를 당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도를 닦는다고 하는 사람의 궁극적인 경지다. 더 이상 궁금해 할 것이 없다, 


(여자가)화장을 하고, 옷을 잘 차려입고 어떤 사람 앞에 나타났는데 그가 아무런 느낌도 없이 

대했다면, 그녀는 모욕감을 느끼고 삐질 수도 있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남자가) 권위있고 거만하니 으시대며 나타났어도, 또는 조폭이 온 몸에 잔뜩 문신을 한 채

맨 살을 위세등등 드러내 보여도 암껏도 아닌 듯 대하면 그 또한 머쓱한 일이 될겁니다.


이런 예(例)는 '가치판단'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속세(일상생활)에서의 '모든 일'이 다 해당됩니다. 

스님 옷 색깔 만큼이나 드라이(dry)한 얘기다. 속세에선 대단히 모욕적이고 비현실적인 얘기다, 

그렇습니다. 조그만 차이에도 울고 웃고, 찧고 까부르는 속세의 그 모든 것들이 다 '일 없다'  


세상놀이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다, 성철스님 표현(해석)은 "산은 산(山)이요 물은 물(水)이다"

물론, 우리는 그런 식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도통(道通)을 했다 손 치더라도 그것은 잠깐일 뿐, 

다시금 속세의 사람들과 똑같이 어울리고 부대끼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게 뭔가? 

처음에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으나, 깨닫고 나서는 '알고 사는 것', 그런 차이지요.

(※ 종교인,수행자,도인이 억지로 禁慾하는 것은 僞善, 더 큰 죄악이다. 희로애락은 죄가 될 수 없다, 문제만 일으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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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

살 즈음부터의 사람의 '인지능력'은 반드시 두뇌의 '가치판단(해석)'과정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보고, 듣고, 냄새나 맛을 맡고, 피부에 와 닿는(五感) 모든 대상은, 우리의 두뇌에서 '이것은 무엇이다' 또는 

'무엇에 해당한다' 라고 판단(해석)을 해 줘야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만약, 두뇌가 그런 '해석'을 않는다면 나는, 그 대상을 봤어못 본 것이고, 들었어도 못들은 것이다. 

즉, 나한테 아무런 '의미'를 주지 않는다. 


대상을 평가, 해석하지않는 연습이 '수도'('도 닦기' 즉, 보고 듣고 배운 경험,지식 따위를 다 내려놓음)' 입니다.  

​만약대상을 '있는 그대로만' 본다면, 설사 귀신이 눈 앞에서 어른거린들 (무섭지 않으니) 무슨 상관이리오?

'소크라테스'가 얼굴에 뜨거운 물 세례를 받은 것은, 마흔 살이나 나이가 어린 아내가 커피 물을 들고 나타났는데도 

명상(정신수행)에 빠져 있는 바람에 혼이 나가서, 아내를 인식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보, 정신차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