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2

노자 도덕경과 반야심경은 같은 말을 한 것이다!

참 나 2021. 1. 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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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이 시도한 도덕경 강의( '도가도 비상도'...)는 그의 지식 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지요.

'도올'은 당대의 지식인 일지언정, '깨달은 사람(覺者)'은 아니다, 

오히려, 이 부분은 "노자를 웃긴 사나이"라고 했던 장본인 구르미, 이경숙씨가 맞다. 즉,

 

- 도가도 비상도: 도(道)를 말할 수는 있으되, 그것으로 도를 '온전히 다' 말할 수는 없다 (=불립문자, 교외별전)

- 명가명 비상명:  (대상/현상에) 이름을 지어붙일 수는 있으되, 그 이름이 (대상,현상을)전부 다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문자나 언어는, 사물이나 현상을 표현하는 한 방편일 뿐 (문자나 언어의) 한계를 갖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즉,

어떤 대상을 '이것이요' 라고 표현한다면, 그로써 드러나지 못한 나머지 부분은 가려지고 마는 것입니다.

 

노자 도덕경의 '무위'(無爲)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를 짚어봅니다.

'함이 없다'란 말은, 인위적으로 하는 모든 행위를 가리키면서 그로 인하여 '허물이 생겨난다' 란 뜻이다,  

a. '인사'를 할 때, 중용의 법도에 따라 마춤히 인사를 하면 되겠으나, 사람들은 그렇게 해 내지를 못합니다.  즉,

무언가를 얹어서 드러내 보이려고 한다, 이로써, 무위와는 반대되는 유위(有爲)인 것이다,   

- 기분이 좋을 땐 희희해해 거리면서 (과한, 지나친) 몸짓을 해 보이고,

- 기분이 나쁠 땐 시무룩해서 얼굴 표정과 몸짓이 무거워(마지못해 하는 양) 보입니다.  

 

b. 노자의 무위(無爲)는 이런 해석이 가능합니다.

깨달음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어른이나 애 한테도, 

'잘하고 잘못하는 것' 을 분별하는 '바른 의식'(良知, 밝음,明)은 본바탕으로 다들 갖고 있다,  

 

그것이 어두워지는(망가지는...)것은 언제인가?  다름아닌,

욕심, 즉 '뭔가 하려고 하는 것'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순간이다. 하고싶다, 해야겠다, 갖고싶다, 바로 그 때...

치우침이 생긴다,  즉, 잘 잘못이 생기면서 중심(中心)에서 벗어나게 된다.  눈과 귀가 머는 것이다,  

노자의 무위(無爲)는, 바로 이 지점을 경계(=지적)한 것이다,

 

「선가귀감」에 나온 '단자능소야, 불생자 무능소야'(斷者 能所也. 不生者 無能所也)도 그 '경지'다. 연이나,

세상을 그처럼(無爲로)살 수는 없다,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단지, 알고는 있으라는 얘기다,  

 

c. 노자 도덕경 제2장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연기(緣起)를 설명한 것과 똑같은 말이 나옵니다.  즉,

"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 선후(상수)..."  이처럼,

서로 반대되는 것(=가치)들은 그 뿌리가 같은 것이다, 즉, 불가에서 말하는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라는 말을 사례를 들어 설명한 것에 해당합니다.

 

 노자 '도덕경'을 마치 자연계에서의 '물리, 물질현상'에 대해서 과학적 설명을 한 것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삼천포로 빠진 것입니다.  (물질의 세계는 물리법칙대로 움직이는 것일 뿐)    

노자(도덕경)와 석가모니 부처님(반야심경)은 인간 두뇌의 인지작용이 일으키는 헛점에 대하여

얘기(마음 心=연기법, 상보성, 상생)를 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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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글조차도 '유위'인 것이니  '무위' 관점에서 벗어난 것 아니냐?  노자가 도덕경을 남긴 것이나,

예수나 석가모니가 가르침을 행한 것도 '유위(有爲)'이므로, 그 또한 허물을 남긴 것 아닌가?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일을 함으로써 작은 허물은 면하는 것이다, 종종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