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察人事

"너 자신을 알라" (진리를 말하면 처형당했던 시절)

참 나 2020. 10. 17. 12:09

요즘 나훈아(테스 형)를 비롯하여, 10.17일자 조선일보가 '주말의 시선(B5)'으로 다룬 이 말을 살펴봅시다.

고대 그리스, 델포이 라는 도시에는 '아폴론 신전'이 있었는 데, 그 입구에 새겨져 있던 경구(警句)다,

그 '아폴론 신전'은 아테네 시내에서 버스로 두 시간이나 걸리는 먼 곳인 데, 꽤 험난한 지형이다,

 

'너 자신을 알라'  이것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다. 그는 이 말을 많이 외치고 다녔던 사람이었다.

그도 역시 한 사람의 '독자(讀者)'였던 것이다.  따라서, 세상 누구도 그 말의 정확한 뜻은 이거다 라고

얘기할 수는 없겠으나, 다만, 아래와 같이 짚어 볼 수는 있을 터이다.  

(※ 매사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하였으니, 各者는 나름대로의 사고능력을 발휘해 보시라! )

 

신전(神殿)에 씌여 있는 글이니, 시쳇말로 '주제파악을 하라'는 식의 가벼운 얘기는 아니었겠지요?

 

a. 사람은 본시, 혼자서는 자신의 장, 단점을 잘 모른다. 장점, 단점은 남들과의 숱한 비교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다.  너와 나 정도가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 속에서의 비교다,

다른 사람을 많이 알면 알수록, 자신의 위치가 정확히 자리매김되는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우물 안 개구리' 신세도 면하게 된다.

 

b. 어렵게 해서 거기까진 알았다 하더라도 진짜 문제는 다음에 있다. 그건 또 뭔가?

경험 상, 나의 단점이나 문제점을 남이 지적해 주는 일은, 평상시엔 거의 일어나기 힘들다,

어찌어찌하여 그런 어려운 기회가 닥쳐서, 남의 지적을 받았다 해도, 

그것을 곱게 받아들이기는 어렵고, 고치는 일은 더욱 어렵다, 

 

나의 단점, 문제점을 남이 지적했을 때 제일 먼저 나타나는 반응이 뭘까? "아니야, 그게 아니야"라며 부정하는

일이다.  (그 때 나의 상황을) 잘못 봤을 꺼야, 오해일 꺼야...이런 식입니다.  아니면 벌컥 화를 내겠지요.

이는, 자아를 지키려는 본능적, 무의식적인 반응인 데, 매우 강력한 (자기)방어기제다,  따라서,

그것이 문제라는 얘기가 아니다, 당연한 것이다, 남이 지적해 준 (나의) 단점이나 문제점을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은 '있기 힘든 일'입니다. 그것은 큰 내공을 필요로 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군소리 없이 깔끔하게 사과를 한다는 것은 '엄청 힘들고 어려운 일' 입니다.

그것은 자기 긍정심, 자부심의 발로 이며, 자신의 잘못을 기꺼이 시정할 수 있다 라는 의지의 표현이다, 

 

여자들 한테 (깔끔한)사과를 받아낸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녀들의 '자존감'은 바닥수준이다; 

'외모 컴플렉스'는 기본이고,  내공-밑천이 대개 빈약하므로 작은 일에도 흥분하며 화를 내고,

또, 작은 일에도 고마워 한다,  그런 여자(사람)가 '자신을 안다' 라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게 아니라도 괜찮다' 고 하는 대범함, 자기 긍정심, 자부심, 자기사랑이 든든하면 누가 뭔 소릴 하건,

오해를 하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는다, 남의 시선과 지적에 예민해 하지 않는다,  

남자들의 이같이 무덤덤한 태도를 대하게 되면, 여자들은 '나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또 화를 내겠지요? 

 

이것이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경구(警句)가 지닌 깊은 뜻입니다. 부연하면, 내 자신을 알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스스로를 비판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는 '장님'일 수 밖에 없다, 

그 밖에 '우리는 신(神) - 하나님 이다'란 것이 있으나, 이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이므로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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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기, 고대 그리스(델포이 등)는, 문예부흥의 시기였던가 봅니다.

   기원전 6세기(BC 6C)는 참으로 대단한 시기였는데, 피타고라스, 이솝 등과 함께 석가모니가 같이 살았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한 세기 쯤 후인 BC470 에 태어났다,  공자, 노자 모두 다 BC 6C 에 태어나서 같이 살다 갔습니다. 

 

   '이솝우화'의 저자로 알려진, 생몰연대는 확실치 않은, 이솝 또한 소크라테스 처럼 (시민들 또는 법정에서) 

   세상을 시끄럽게 한 죄로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런 일은 근 500년(5C) 후 태어난 예수의 경우도 마찬가지 였다.  

   진리를 설파하는 현자들은, 대중들과는 정반대의 말을 해서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동서고금의 모든 현자, 성인들이 공통적으로 겪어야만 했던 일이었다! 

 

'예수'가 지금 세상에서 설교를 하고 돌아 다닌다면, 대중들은 그에게 열광을 할까요? 천만의 말씀이다, 정반대다, 

옛날처럼 돌로 쳐 죽이고, 십자가에 (라도) 못 박아 죽였으리라. 지금의 '예수 이미지'는 기독교가 만들어 낸 허상

(虛像)입니다.  즉, 기독교나 가톨릭은 예수를 마치 '인기가 대단했던 인물'(=super star)인 것 처럼 만들어 팔았다

(異端임). 사람들은 '자신의 병'을 고치겠단 생각으로 예수를 찾았던 것 뿐인 데;  이는 대략 60년 전 이 땅에서 일어났던 일,

즉, 전라도 지방의 최영단(女)은 '쳐다 보기만 해도 낫는다'고 신문에까지 나서 전국에서 환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그 곳에 기차역을 새로 내 주었다, 정작 그녀는 몰려드는 환자를 피해 도망다니느라 바빴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도 퇴마, 천도, 신내림 무당이 넘치는 대한민국 땅이로되, 그 능력과 '성인의 증표'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또 보라!  아픈 고생을 겪음으로서, 반성(反省)과 자숙(自肅)을 하면서, 문제점을 고쳐야 할 사람을,

신통력을 가진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나서, 씻은 듯이 낫게 해 주었다면, 그게 과연 잘하는 짓인가?

그런 일을 하는 이도 딱하도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신통력은 '성인(聖人)의 증표'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성인, 현자들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말을 했으므로, 예수는 매번,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며

'먹통'인 대중을 답답해 했다.  이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은, 

예수가 '진리를 설파'하며 대중의 인기를 얻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 불가능한 얘기다. 왜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진리(眞理)에 별 관심이 없고, 가르쳐 줘도 모릅니다. 

즉, 사람은 난생처음 듣거나, 보는 것은 그게 뭔지를 (내 기억, 경험에 비춰 볼 것이 없으므로) 이해할 방법이 없다,

 

지금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있어서 다행이나;  a. '하나님, 귀신,영혼 따윈 없는 것이니 제사란 헛일이다 

b. 우리가 보고 듣는 일상의 일들은 다분히 허상(=선입견과 고정관념)일 뿐이다, 

c. 내 육체는 물론, 마음까지도 마치 헌 옷처럼 쓰다 버릴 수 있어야 한다

d. '너 자신을 알라' 라며  듣기 싫은 말, 내지는 진리(眞理)를 떠들고 다녔다면,

사람들의 분노와 반감을 사서 '공개처형'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이 fact인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