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사는 1,140세대 아파트는 작년 말에 리모델링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향후 4년에 걸친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사업설명회를 거쳐 세대원들은 해당사업 추진에 대한 동의서를 제출하였고,
찬성율은 2/3가 넘는 77%다, 그런데,
어제 저녁 느닷없이, "리모델링 작전세력이 들어왔다, 21층으로 증축한다는 데 그렇게는 못한다더라, 추가분담금도
2억원 이상 더 내야 한다더라, 사업성이 없다, 사업승인이 통과될 확률은 5%도 안된다"... 라며 집사람이 바깥에서
누가 그런 말을 했다면서 의심을 전달합니다. 하여, 그런 말들이 부정확하다 커니, 남의 말을 왜 안듣느냐 커니
하면서 언성을 높였습니다...ㅠ
사업추진이 승인될지 안될지는 다분히 전문적인 영역인 데, 세대원들이 일일이 나서서 맞고 틀리는 것을 따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잘 해 주겠거니 하고 큰 틀에서 '믿고' 맡기는 것이다, 복수의 시행건설사 끼리 누가 사업권을
따내느냐를 놓고서 수주경쟁과 흑색선전이 있을 것이고, 약점이 있다면 얻어터지기도 하겠지요. 다른 한 켠에선
사업추진 자체를 반대했던 사람들의 의견이 사그라 들지 않을 것이고, 각자의 이해다툼도 있을 것이다...모두 다
예상할 수 있습니다.
사업추진위원장과 해당 임원들에 대한 세대원들의 생각과 평가도 제각각일 터이다,
사람을 믿는다는 일, 그리고 일을 맡겼으면 그 다음엔 믿어주는 일은 어렵고도 중요한 일입니다.
만약, 병원에 진찰 받으러가서, "너 돌파리 의사 아니냐" 는 투의 잘못된 질문, 의심을 품는다면, 의사는 대번
알아차리고, 그 환자를 치료할 생각이 싹 가실 겁니다. 환자가 의사를 의심하는 것은 자유라고 하겠으되, 그 댓가는
혹독하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뿐더러, 결국에는 원인불명이란 진단과 함께 '개고생'을 하다가 자신의 수명을
단축할 수도 있다,
의처증, 의부증 부터 시작해서, 남한테 일을 시킨다거나, 부탁하거나, 맡겨놓고서는 일일이 간섭하는 버릇과 의심,
이 의심병의 시작은 자기 스스로에 대한 불신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믿으면 남에 대한 믿음도
생긴다, 그 반대로, 내가 나를 의심하면, 남을 의심하는 버릇이 생기는 겁니다. 모든 것은 '나'로 부터 비롯됩니다,
'무신불립(論語; 無信不立). 이 말은, 믿음이 없이는 암껏도 이룰 수 없다 란 뜻입니다.
이 세상에 제일 가치있는 일, 존경스러운 일, 아름다운 일, 이쁘고 기뻐해야 할 일은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요, 내가 남을 믿는 일입니다. 삼성의 창업자 (故)이병철씨는, "의심스런 사람은 쓰지 말며, 일단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疑人不用 用人不疑)"고 했습니다. '선비는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는다' 란 말도 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 서로 믿고 사는 삶이야 말로 '행복한 삶'입니다.
그 반대로, 제일 나쁘고 못된 것, 피해야 할 것, 일을 망치게 하고, 파괴적인 것은 남을 의심하는 일, 그런 버릇이다,
좋은 기질과 마찬가지로, 남을 의심하는 것 또한 부모(父母)의 나쁜 피(=血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권에는 여당과 야당이 있듯이, 따라서 모든 모임과 조직엔 '감사'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구성원이 일일이 나서지
못하니, 우리 대신 잘 감시해 달라는 뜻을 담아서 믿고 맡기는 역할이 '감사(監事)'란 것입니다. 그런 역할은 곳곳에
다 있다, 위의 경우, 리모델링 추진위원회를 감시하는 '감사팀'을 구성하여 허튼 짓을 못하도록 감시(監視)해야 하겠지요.
이런 사회적 견제장치는 '합리적 의심'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어디에서나 제도화(制度化)되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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