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염을 처음 만들어 낸 인산(仁山) 김일훈 선생한테 기자(記者)가 묻는다.
"노자(老子)를 어떻게 보십니까?"
인산이 대답한다.
"그는 무슨 일을 직접 한 일이 적어. 공자님은 직접 나가서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노자는 태사관이고 작은
벼슬 하나 했지. 뚜렷하게 한 일이 없어. 큰 사람이란 쓸모가 없어. 그것은 큰 대형 트럭을 집 안에 들여놓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야. 즉, 수용(受容=남들한테 받아 들여짐) 되지 않는 것은 쓸모가 없다 라는 뜻이야"
불교의 '반야심경'이 아무리 대단한 말씀이고 엄청난 주문(呪文)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알아 먹고 써 먹지
못하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석가모니 부처, 노자, 장자, 예수를 위시하여, 증산 까지 성인의
말씀은 도통 알아 먹을 수가 없다고 하니(속세의 일과는 반대임) 그것이 아무리 높은 경지의 말씀이라 한 들
무슨 소용이랴? ('돼지한테는 진주를 던져 주지 말라'는 험한 말까지 있으니...ㅠ)
그 어려운 말들은 다 나투고, 이제부터는 수도(修道)가 어떻게 우리 일상의 삶 속에서 실천적, 실용적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까 하는 얘기를 해야 합니다. 그게 되어야 비로소 복음(福音)이란 말도 성립되고,
'인류 구원'이라고 하는 종교적 사명도 이루어 진다. 속세의 일에 도움을 주지 못하여 겉도는 얘기는 한낱
치장(治粧)에 불과한 것이다.
종교의 통일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세상 모든 종교는 본시 하나 뿐이요, '마음 씀'(=하나님,天國,心)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초월적 진리(5차원적인 얘기)이므로, 시간과 공간(時空)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마음이 서로 다를 것이 없다, 구석기 시대 원시인의 삶이건, 부처님과 예수님이 제세
하던 2천 년 전의 삶이건, 저 까마득한 우주공간의 황소자리, 플레이아데스 성단의 외계인(ET)의 삶이건,
'다른 얘기'가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의식'(=神明)은 처음부터 완성체요, 미물(微物)에서 부터 인간까지 모든 생명을 통틀어 같은 것(大同)이다,
의식은 진화(進化)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끝까지 불변(不變)이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알기만 하면 되는데,
이를 일컬어 '깨닫는다'고 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 것, 처음부터 완성인 것, 그것이 생명체의 '의식'인 것이다.
참 종교는 이것을 붙들고 얘기를 해야한다. 다름아닌, '태초에 말씀(=意識)이 있었다' 라는 성경구절
(¶ 요한복음 1:1)의 참 뜻이다. 앞으로의 종교가 성공하느냐 마느냐도 여기서 판가름이 나게 됩니다.
도(道)는 심법(心法)이다. 따라서,
내 마음을 어떻게 잘 쓰는가, 어떻게 잘 돌려서 생각하는가?
화엄경의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세상은 모두 다 내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를 보라!
내 마음을 얼마나 임의자재로 잘 운용해 내는가? 그 구체적인 방법, 재미있고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 기법(technic)을 말해야 한다. 사람들이 삶에서 겪는 크고 작은 일에 당하여 어떻게 마음을 돌려 생각하면서
어려움(苦痛)을 덜 수 있게 하는가를 말해야 한다. 성경에도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말씀'으로
산다" 라고 하였다. (¶ 신명기 8:3) (¶ 오병이어: '빵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 도 같은 뜻)
팔만대장경을 한 글자로 압축하면 '심'(心)이라고 하였다. 부처의 말씀은 오로지 내 마음을 자유자재로 돌려쓰는
방법, 그것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방편(方便)을 얘기한 것이다.
그것(=意識, consciousness, 알아차림)은 새로운 것이나 낡은 것이 있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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