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TV '이웃집 챨스'를 보고서

참 나 2020. 4. 26. 11:36

 

일요일 아침 TV 프로 '이웃집 챨스'에서는 우즈베키스탄 여자가 (생선 횟감을 파는) 한국인 남편과 같이 살면서,

세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애 엄마가 매일 애들 똥싼 기저귀를 갈아 주고, 엉덩이를 씻기느라 힘들어

하는데도, 그 남편은 누워서 빈둥거릴 뿐 도와주질 않는다는 얘기; 사연인즉슨, 자기는 "아이들 똥 냄새를 죽어도

못 맡겠다, 생선 썩은 냄새는 맡아도..."

 

이 십 년 전 나는, 어머니가 치매 걸려 돌아가실 때, 두 달 동안 '똥 치레'를 했었는 데, 우연히 옆에서 그 광경을

목격한 내 아내는 대뜸 '웩!' 하고 구역질을 하더군요. (손주들 똥 냄새는 향기롭다고 하더구먼...ㅠ)

 

신라 승려 '원효'가 당나라로 불법을 공부하러 가는 길에 동굴 안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잠결에 머리맡에 있던

바가지 물을 맛있게 마셨는 데, 아침에 그 물이 해골바가지 물이었다는 것을 알고서는 구역질을 했다고 하지요.

똑같은 물(=실체)도,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이 이렇게 다르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다,

'이걸로 수행 끝' 하며 발 길을 돌렸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비단 '똥' 얘기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6根: 眼耳鼻舌身意)에 다 적용된다...라는 것이

『반야심경』의 메시지입니다.  나 역시, 남들보다 좀 덜하기는 해도 '똥'을 더럽다 라고 생각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똥 냄새는 싫다, 이것이 어려서부터 내 두뇌에 각인된 조건반사적인 일인 데, 내 의지와 노력, 그리고 깨달음

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는 있습니다, 무슨 소린가...?

 

'똥 수행',

매일 똥을 누고 나서 손에다 물을 적셔서 항문을 닦아냅니다. 그리고선 손을 깨끗이 씻습니다, 화장실 휴지는 써 본

적이 없다. 비데를 쓰는 것과 같은 효과인데, 포인트는 의도적으로 내 똥을 만진다, '똥'과 친숙해진다 라는 것이다,

 왜 그런 짓을 해야 하나?  '똥은 더럽다'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서다. 내가 처음 만들어낸  '똥 수행'입니다.

 

우리네 삶은 예외 없이, 어려서(즉, 세 살 무렵-삼척동자)부터 부지불식간에 학습된 내 주변 사물, 세상에 대한 인식, 

즉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람들끼리 서로 다투는 일은 본질상 '가치 다툼'이다, 

너의 (주관적)가치와 나의 (주관적)가치가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다,  실체(實體)를 놓고서는 다투지 않는다,

그 실체에 따라붙는 '가치(해석)'가 다툼을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 '가치'란 것이 어떻게 성립하는지에 대한

본질을 알게 되면 모든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라는 것이 불법(佛法: 깨달음, 반야심경)인 것입니다.

 

'가치'는 반야심경에서의 색(色: value, brand)이다.  '색즉시공'은, 그 가치란 것이 '주관적'이란 말씀이다, 

또한, '반대가치'가 없는 것, 절대적인 가치는 성립(存在)하질 않는다, 그걸 알려주는 것이 '연기법'입니다.

'불구부정(不垢不淨)'은 또 뭔가?

이 세상에 더러운 것이 없다면, 깨끗하단 것도 있을 수가 없느니라. 그러한 즉, '더럽다'고 해서 무조건 없애려 하고,

없애 버려야 할 대상(암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지 말아라. 그것이 자비,사랑,상생이다, 모든 종교의 뿌리다. 

 

이는, '초월적 지혜'이니,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전전긍긍하는, 속세(現實的)의

사람들 한테는 반대(反對)로 들릴 뿐이로다, 족탈불급(足脫不及),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 (=예수, 석가모니

 가 설법할 당시에 겪었던 일) 인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