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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의 엉터리 종교강의

참 나 2019. 9. 27.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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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의 동영상 강의를 보았는데, 그가 말하기를 "불교, 기독교의 말씀을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다 하며,

불교(석가모니)는,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다'라는 말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 반야심경을 몇 차례나

읊어가며 자랑하더라,  그런데, 잘 외운다, '아는 것이 많다' 는 것은 깨달음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 반대다!  머리 속을 다 비워야 하는 경지;  즉, 눈 앞의 대상에 덧씌운, 나의 과거경험,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과 같은 가치판단(=없이, '있는 그대로를 대하는 것'이 깨달음이란 것입니다. 

그것이 새로워지는 길(又日新)이다!


허씨는 자신을 신인(神人)이라고 말하던데, 그것은 과대망상(誇大妄想), 자존망대(自尊妄大)에 빠진 것이다,

(※ 그가 말하는 神人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우리는 다 神/부처(내 안의 神='참 나')이다, 그걸 깨닫기만 하면 된다)

언필칭 '예언'을 한다는 사람이 자기가 낙선한다는 것도 모르고 몇 차례나 대통령 후보로 나왔으렷다,

홍익학당을 운영하는 윤홍식이란 사람도 대선에 나왔다가 몇 표 얻지도 못하고 떨어졌지요. 딱합니다,


허씨는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지능지수가 엄청 높다고 자랑을 하는 데, 그것은 '자아'를 비대하게 한다, 

비우고 낮추고 하는, '도(道)닦는 마당'에서는 거꾸로 가는 것이다, 이는 '도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허씨는, 불교의 연기(緣起)를 인과(因果)로 설명하면서 '원인이 있어 결과가 생기는 것이니, 좋은 인연을 

많이 쌓으라'는 말을 합니다. 그 정도의 통속적인 말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인류최고의 지혜'라고 할 수

있으리오?  불가(佛家)의 연기사상을 모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연기'는 은 의미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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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반(相反)되는 것은 상보적(相補的)인 것이다 {Contradictory is complementary}'

      이는,「반야심경」의 연기(緣起)와 자비(慈悲)다, '인류최고의 지혜'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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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단은 서로 기대고 있는 두 빗자루와 같으니, 한 쪽이 가치(빛/色)를 잃으면, 반대쪽 가치(빛/色)도

사라진다'  착하고 좋은 사람(善)의 가치는 나쁜 놈(惡役)이 행세를 하고 있기에 비로소 그 '좋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나쁜 놈(惡役)이 사라진다면 착하고 좋은 사람의 가치도 그 빛(色)을 잃게 된다, 

이것이 '연기'(緣起)입니다, 

 

좋다, 나쁘다를 비롯하여, 이 세상 모든 가치들은 자신과 반대되는 가치와 상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온갖 형용사(色, 빛깔)들, 예를들면, 많다/적다, 무겁다/가볍다, 높다/낮다, 부드럽다/딱딱하다, 맑다/흐리다

가깝다/멀다, 깨끗하다/더럽다, 귀하다/흔하다, 진짜/가짜, 길다/짧다, 똑똑하다/어리석다, 나타났다/

사라졌다...모두가 '반대 짝'과 더불어 존재하니, 이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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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념은 실존(존재 그 자체)과는 다른 것임을 유의해야 합니다, 예를들면,

  누군가 '예쁜 여자란 없다(無)' 라는 말을 했다면, 그 말은 진짜로 사람 자체가 없다 라는 뜻이 아니라, 

  ​'에쁘다'고 하는 가치(색/ 빛깔)가 없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무(無)/공(空)의 낙처(落處)로다.

  실존 존재인 여자는, 당신이 무슨 평가를 하건 말건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치 부분(예쁘다)을 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 는 말씀이 다름아닌 '산은 산, 물은 물' 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대상(對象)과 그 대상이 지닌 가치(屬性)를 같은 것으로 착각(同一視)하며 사는데, 이제 그것을 떼어서

   봐라.(이런걸 모른채 산다). 현상계의 절반은 놓치고, 눈을 반쯤 감은 채 조는듯이 살고 있다.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서로 반대인 양극단의 가치는 상보적인 것이다 (상보적: 반대편의 가치/색깔을 잘 드러나게 함. 보색補色관계와 같음)

양극단은 서로 분리되어서는 자신의 가치를 드러낼 수 없다,  그런즉, 한 몸이고 한 짝 이다(=色不異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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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前)'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는 '뒤(後)'가 있어야만 한다, 즉 '뒤가 아니니까 앞이다' 로 인식합니다

더럽고/흉악/부정적인 것을 알아 챔으로서, 그와 반대되는 '긍정적인 것'이 가치(빛깔)를 드러냅니다,  

​불구대천의 원수, 상반된 '가치'는 한 몸이로다,  그 이치를 알면 '자비'(慈悲)가 자연히 흘러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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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것은 무조건, '없애라, 씨를 말려라'하고 외치고들 있으니 딱하다, 어리석다

'왼 쪽'을 없애라! 해서 없어지면, 오른 쪽은 더 이상 오른 쪽이 아니고 아무 쪽도 아니다, 깨달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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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사랑'(supreme love)도 부처의 '자비'와 똑같은 뜻입니다,   

예수의 사랑은, 사람들끼리 서로 이뻐하고, 좋아하고, 정답게 지내라는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부처의 자비는,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 다 가엽게(불쌍히) 여기라는 그런 말씀이 아니다, 

자비,사랑이 뭐냐? '반대되는 것'의 존재의미(相生)를 알고 무턱대고 없애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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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허경영의 엉터리 종교강의 덕분(?)에 이처럼 '진리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연기(緣起)입니다.  

허씨를 비난할 목적보다는, 이 세상 위인작자들이 깨닫지도 못했으면서 깨달은 척하고, 진리를 왜곡, 전파한다는

고발입니다. (자기 역할을 가리지 못하고, 또한 아는 것과 모르는 것도 구별하지 못하고, 오지랖 넓게, 이것 저것

죄다 아는 척을 해 대는 것, 그것이 잘못이다)


'세상은 아름답다' 라는 말을 한다면, 그 말 속에는 세상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나쁜 것'을 모르고서는 '좋다' 라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다,  '훌륭하다, 특별하다, 대단하다' 라는 표현은,

그와 반대되는 평범한 것들을 잘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천국'(이란 환상)은

'지옥'(이란 환상)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 기쁨과 즐거움은 힘듬과 고통을 겪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다.


권선징악 (勸善懲惡: 선을 권하고 악을 징벌함) 에 대하여:

'징악'이란 무엇인가?  세속적으로는 '악(惡)한 것들은 모조리 씨를 말려 버린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도(道)를 실천하는 마당에서 '징악'(懲惡)이라 함은 '악(惡)을 권하지는 않는다'   

비록, 자식이 못나고 못됐어도, 부모는 그 자식을 내다 버리지 않는다, 하여, 道人은 '자비'와 '사랑'으로 세상의 온갖

부정적인 것들을 상대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처(妻)는 말버릇이 거칠고 조악합니다.  자기는 '솔직하다'고 하는 것인데, 얼핏 들으면 화가 치솟게끔 말을 합니다.

"아유~ 더러워, 곰팡이 냄새가 나" 라고 하거나 "능력이 없으니까..." 그런 험한 말을 남편한테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속이 부그르르 끓지만 삭혀냅니다. 잠시 후엔 마음이 대충 가라앉아 있더라, '도 닦는 연습'

으로는 最高다,  만약 순두부같이 부들부들한 여자였더라면, 또는 처의 거친 말버릇이 없었더라면, 나는 일상 속에서

 '도 닦는 연습'이 어려웠겠지요.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의 얼굴에 뜨거운 물을 끼얹은 것으로 유명한 '사나운 말', 

크산티페의 일화도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