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주기도문 (Lord's Prayer: 주님의 기도)에 흠집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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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略) 인간이 (罪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자신의 탓일까 아니면 신(神)의 뜻이 작용한 탓일까*
바티칸 교황청이 최근 '주님의 기도' 일부 문구를 변경("do not let us fall into temptation"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로 바꿈) 하면서, 철학적인 논쟁이 유럽 가톨릭 교계 전체로 번지고 있다(中略)
국내 가톨릭 敎界와 개신교에선 '신이 유혹으로 이끈다는 의미는 별로 없기 때문에 개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2019.6.12-
※ 자신이 잘못을 저질러 놓고 '神의 뜻'운운 한다면 이는 마치 음주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냈을 때
'술 탓'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화가 나서 싸우고, 죄다 때려 부순 다음에 그것은 호르몬(노르아드레날린)
때문이라 말하는 것과도 같다. 이럴 때 '자기(관리)책임'을 면할 수 없다 라는 것은 어린애들도 잘 알겁니다.
1. 神이 인간의 삶에 일일이 간여하면서, 유혹도 하고 복도 주고 하는 것일까?
2. 그렇다면, 나의 잘잘못이 神의 뜻인지, 내 탓인지 알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3. 대한민국 가톨릭/기독교의 '주기도문'은 원문(原文)을 정확히 번역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기독교 신자나 목회자, 사제와 성직자라 해도 이런 논쟁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깊게는 잘 모를 겁니다. 그건 '깨달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경지이기 때문이다, 그걸 머리로 이해
하려고 한다면 아마 머리에 쥐가 날 겁니다. 철학적인 논쟁을 하더라도, 그것은 필시 장님이 장님을
이끄는 수준일 터이다, 게다가 '敎界'에서 그걸 받아들이냐 마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 神이 어떻게 인간을 유혹으로 이끈다는 말인지,
- 神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논쟁은 언필칭 '기독교/가톨릭' 신앙의 핵심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블로그에서는 얼마 전 부터 같은 주제에 대해서 글을 몇 차례 올렸습니다.
▶ Lord's Prayer (주님의 기도문)
종전 문구, lead us not into temptation (우리를 유혹으로 이끌지 마옵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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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이 인간을 유혹으로 이끈다거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라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게 사실이면, 인간은 영혼이 외출나간 '좀비'인 것이다, 왜 그러냐? '자유의지'또는 '자기책임의 원칙'은
기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행위를 책임지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책임을 진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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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은 '옳다,그르다'하는 가치판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마찬가지로 '좋다, 나쁘다' 하는 일에도 상관이 없다,
그것들은 모두 인간들이 지어낸 '가치기준' 이다, 거기에 '自我'(ego)가 들러붙어서 울거나 웃는 것이다,
'神'은 그 모든 '가치판단(=오염)'을 초월해 있는 즉, '순수의식'이라 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두뇌 속의 거울, 스크린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의 상(像)'으로 비춰주는 역할이 '神'이다,
이제, 그 두뇌 속에 비춰진 그 상(像)에 대해서,
1. 의식(=catch)을 해서 행동으로 옯기거나 아니면 무시하거나, 또는 흘려 버리거나 (=靈的 感受性의 문제)
2. 그 像을 '희로애락'으로 받아들이는 정도는 개인별로 천차만별이니, 이를 일컬어 '자유의지'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로 인한 모든 결과 또한 각자의 책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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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처럼 뱀(사탄)이 사과를 먹으라고 유혹을 해도, 내가 안 먹으면 그만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황금덩어리가 주변에 굴러 다녀도, 내가 거들떠 보지 않으면 그것은 있으나 마나다,
사정이 이러할 진데, '神-自然'이 무슨 연고로, 내 자아(自由意志)를 심판하리오?
천당과 지옥은 기독교 소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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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또는 벌(罰)'을 얘기하지만, 이는 언제나 내가 나한테 주는 것이다,
가톨릭 미사 때 하듯이, 가슴을 치면서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者를 돕는다' 이 말 뜻은, 자업자득(自業自得), 자작자수(自作自受)란 것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는 것 뿐이다, 내가 콩을 심었는데 엉뚱하니 팥이 나왔다면
그런 세상은 아수라장이니 존재할 수가 없다.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종교의 역할)은, 두뇌 속의 그 영상/ 스크린에 대한 '영적감수성'을 키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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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2017년 "인간이 사탄의 꾐으로 유혹에 빠지는 것이지, 神이 인간을 유혹으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는데, 그것 때문에 작금의 '주기도문'을 수정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랬던 것인데 '일파만파'로다,
즉, 사탄이 유혹을 하는 것이라면 왜 엉뚱하니 '神(Lord)'한테 기도를 하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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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해석대로라면, 神과 사탄은 동전의 알, 뒷면의 관계다, 즉, 신(善)이 있고 그 반대인 사탄(惡)이 있는가 보다..,
그런게 아니올시다, 이런 가치놀음(善/惡의 相對性)을 벌이는 것은, 속세의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다,
왜? 神은 절대(絶對)이므로 가치를 베제(排除)한 존재 전체다, 즉,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whole one)이다,
인간들은 그 존재계에다 온갖 가치관념(色)을 덧씌워서 양극단으로 분리시켰다, 사탄 vs. 하나님도 그런 作爲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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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유혹에 빠지는 것은 '神(自然)'이 이끌어서가 아닙니다, 또한 '사탄'의 유혹 탓도 아니다,
그것은 100% 自我가 벌이는 일이다, 그래야 '자기 책임(내 탓)'이 성립됩니다,
교황청 수정 기도문에 따른다면, 올 해까지는 神은 우리를 유혹했으나, 이제부턴 유혹을 '막아주는'역할을 하는 존재로
바뀐 것입니다. 즉 '사탄의 꾐'에 대항하는 (뒷치닥꺼리를 하는) 존재로 전락했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프란치스코의 교황청은 어떻게 이처럼 예수님의 기도문을 멋대로 바꿀 수가 있을까.
저 '푸른하늘'에 있는 하늘나라(天國, Heaven) 환상도 바꿔라, 神,사탄은 물론, 승천을 했다고 하는 예수도
거기엔 없다, 그것은 이 천 년 전에 무지몽매한 대중을 상대로 만들어낸 이야기(story)일 뿐이다,
삶의 무거운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무엇엔가 기대야만 하는, 나약한 마음들이 그려 낸 동화, 환상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까지의 기독교, 가톨릭의 존립기반이었다, 이제부터의 하늘나라(Heaven)란 것은,
'요한복음'에도 나와 있듯이, '나와 더불어 모든 존재의 심층의식 속에 깃들여 있는 ' 다 같은 하나'인 것입니다.
【蛇足】
이는, 기독교 초창기 부터 정립(定立)된 내용이었다, 저들이 뭘 몰라서 '주기도문'을 그리 잘못 만들었던 것이 아니다,
성령이건 유혹이건 전지전능한 '하나님(=언필칭 人格神)의 뜻'이기에, 모두 다 하나님한테 기도를 올려야 했던 것이다,
그것이 기독교/가톨릭의 짜여진 '神本主義' 논리체계 였다, 그 런데, '프란치스코'의 교황청에서 한 귀퉁이를 헐어버렸으니
이는 긁어 부스럼이다, 예수말씀을 각색(脚色)한 異端 기독교/가톨릭의 虛構性과 任意性을 여실히 드러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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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주관의 영역입니다. '자기 체험'이다, 남이 옳다 혹은 그르다...말하는 분야가 아닙니다.
불립문자, 교외별전 이란 말이 있듯이, 경전, 스승이라 해도 나를 깨닫게 해 줄 수는 없고, 틀에 박힌
방식도 없다. 오로지, 내가 먼저 발심하고, 생활 속에서 여러 체험을 통하여 확인 또 확인해야 합니다.
'구도자'는, 개떡도 찰떡으로 알고 먹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두뇌 속의 비추인 상(像)/ 거울/ 스크린/ 해인(海印)...이런 단어들을 이해한다면 절반은 도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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