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동아일보에 흥미있는 내용이 실렸더군요.
'올해 83세 김수환 추기경은, "불면증 치료약에 의지해 잠들기도 한다"고 고백한다,
"가난한 자가 되고 싶다고 기도하던 내가 몸은 귀족과 같은 생활에 익숙해 있으니 이 얼마나 엄청난 모순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A31, 책갈피 속의 오늘) 는 칼럼이었습니다.
성직자나 극악한 범죄인이나 공통점은 사고방식이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 즉, 자신과의 다른 쪽을 단죄(斷罪)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맑은 날이 좋다는 것은 흐린 날의 불편함을 겪은 사람 만이 느낄 수 있다.
일년 열 두 달이 맑은 날씨의 하와이 사람들은 그 맑은 날씨가 오히려 지루하다고 얘기합니다.
돈이 좋다, 편리한 것이다 라는 것은 결핍과 부족을 느껴 본 사람들이 너무 잘 알지요.
휴식이 좋은 것은 힘든 산행 길에서 절감합니다. 늘 휴식하는 사람은 휴식이란 말만 들어도 지겹겠지요.
이렇듯 희로애락도 그 반대의 것을 겪어봐야만 느낄 수 있는 '상대적 감정' 인 것입니다.
그 자체로는 존재가치가 없다, 맹랑하지요?
착함, 정직함, 순결함, 순수함... 이러한 세상살이의 '가치판단' 이란 것은 반 쪽짜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반쪽을 가지고는 진리를 말할 수 없다, 세상의 반만 보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공부건 사업이건, 반드시 시련(스트레스)을 거치고, 포기할 뻔한 고비도 몇 차례를 넘겨야만 제대로 배울 수 있다.
시련, 즉 惡(毒)이 약(藥)으로 쓰이는 것이다, 그 고통을 겪는 당시에는 그런 깊은 뜻을 알 수가 없지요. 일단 아프니까...
그런데, 악(惡)속에는 선(善)한 기운이 숨어 있다.
'眞,善,美, 즉, 정직함, 편안함, 질서,아름다움의 '좋은 가치'도 그 속에는 악한 기운이 숨어있기에, 오래 지속되면
악한 기운, 즉 게으름과 권태로움이 느껴지고 생명력이 줄어듭니다.
敵(악)이 없는 我軍(선)이 있을까요?
도요토미 수하의 왜군들이 쳐들어 왔기에 이순신 장군이 역사에 기록된 것입니다, 만약 저들이 안 쳐들어왔다면,
거북선의 위대한 신화(legend)는 없었다, 그러니 私的인 측면으로 보자면, 이순신이 '聖雄, 軍神'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추앙을 받게 된 점에 대하여, 도요토미한테 엄청난 은혜를 입은 셈입니다. (적이 나의 은인이라 한다면 이게 뭔 말인가...?)
양극단이란 '같이 존재하는 것일 뿐'... 그런 깊은 뜻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추기경의 불면증은, 없앨 수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걸 '없애야 한다'는 집착, 강박감이
있었겠지요.
세상에 흔하디 흔한, 인간들의 진부하고 모자란 모습들....행여 그들과의 싸움을 한다면, 당연히
'백전백패'다.
세상의 악은 제거나 증오의 대상이었지만, 제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a. 악, 부정적 관념 등은 '바탕이 되는 종이'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그 바탕
위에 원하는 그림을 그립니다. 바탕이 없다면 그림은 그릴 수 없겠지요?
b.
'선'이 무언지 알게끔 일깨워 주는 '악', '옳음'이 무언지 판별해 주는 그릇됨의 존재, '밝음'이 무언지 알려주는 어두움...
이러한 것들이 바탕에 깔려 있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옳거니! '악' 이란 '방향타' 로구나! 그리 가면 안된다고 알려주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로서의 방향타!
종교도 마찬가지다, 종교는 세상의 온갖 惡이 바탕에 깔려있어서, 그 반대되는 선으로서의 존재가치를 갖게 되니
악과 더불어 '相互共存'하는도다,
질병이 있음으로 해서 '의사(醫師)'의 존재가치가 드러납니다. 질병(아픈 사람)이 없다면 의사도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
버릴 것은 하나도 없다, 단지 그 용도를 모를 뿐이다'
우리가
'惡'을 미워하고 외면함(권선징악)은 '마땅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惡을 소멸시켜 없애버려야 한다'는 것은 다른 얘기가 됩니다. 세상의 惡이 소멸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혹시 걸레질 하면서 먼지가 영원히 안 생기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까? 惡은 마치 먼지나 쓰레기 처럼 늘 생기는 것이지요.
생기면 치우고 생기면 또 치우고 할 뿐이다, 먼지/쓰레기와 싸우거나 또는 영원히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바보'다,
그러니 지금 악을 소멸시키겠다고 '독기'를
품은 사람들은 보십시요.
맹자도 일치일란(一治一亂)이란 말을 하였지요. 오늘 잘 다스려졌다 해도 내일 또 어지러워 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어느 정도 싸웠다면 이제 '그만' 하고, 적당한 선에서 용서, 화해를 생각하고, 다음 기회를 또 보십시요.
세상은 선(善)으로만, 또는 악(惡)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그런 세상은 존재한 적도,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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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
惡의 뿌리가 뽑히는 순간 善도 존재가치를 잃고 맙니다.
'적(敵)이 사라지는 순간, 아군도 존재가치를 잃는다. 이른바, 토사구팽 (狡토사 良구팽)' 이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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