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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儒家)의 핵심 덕목인 '중용(中庸)'은 과연 무슨 뜻인가? 석가세존의 자비(=緣起), 예수의 사랑과 긍휼(矜恤), 노자의 무위(無爲), 증산의 해원상생(解寃相生) 과는 어떻게 다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中庸 또한 성현들의 진리(眞理)와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왜/ 어째서 중용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배경 설명이 없다란 점이 아쉬운 것입니다. '중용' 말미글(제33장)에 보면, "中庸의 道는 a. 총명하고 위대한 지혜 b. 모자라거나 지나침이 없고, 조금도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는다 c. 하늘이 명(命) 해준 것을 本性이라 하고, 이 본성에 따름을 도(道)라 하고, 그 도를 재단한 것이 가르침이다. d. 사람으로서 이룰 수 있는 '德의 최고 경지'라고 요약, 정리했습니다. 따라서, 중용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란 뜻에서, 다른 성현들의 (진리)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예시한 성현들은, 왜 진리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가를 여러 방편으로 설명했으나, 아무리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더라도 속세의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 안타까운 것이며; 그것은 그대로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유, 불, 선, 기독교 및 이슬람의 성현들 말씀은 '다 같은 것'입니다(=진리의 천하통일). 정각을 한 제가 여기서 처음으로 밝혀드립니다.
상반된 것(=가치/色)은 상보적이니, 서로 분리되어 배척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편'의 반대(反對)가치는 '그 한편'의 가치를 드러내고 돋보이게 해 주는 것이로다, 이것이 석가세존의 연기법이고, 예수의 사랑, 증산의 해원상생, 노자의 무위(無爲: 굳이 어느 한 쪽만을 얘기하지 아니함)의 깊은 뜻입니다. '모두 다 똑같은 하나의 진리'를 말씀한 것입니다.
단지, 유가에서는 왜 그래야 하는지 (왜 중용이어야 하는가?) 그 이유를 말함이 없이, 그냥 '최고 德'의 경지라고만 했는데, 그 대목이 유가의 不備한(아쉬운) 모습입니다. 그리하여, 석가세존의 연기법(=반야심경) 과의 差異(차이)라면 배경 설명이 없다는 점, 그것이 차이일 뿐이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온갖 가치(色)들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요, 상대적 가치(상반된 것과의) 일뿐이란 것을 '깨달아야 한다'라고 설명했어야 합니다.
과연, 甑山은 '불수편애편오왈인 [不受偏愛偏惡曰仁: 지나치게 이뻐하거나 지나치게 미워하지 아니하니, 이를 일컬어 '어질다(仁)'고 하는 것이니라. 大巡典經 259쪽] 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증산(甑山)의 이 말씀은 연기법과 동일한 것입니다. 즉, 사랑(이란 감정)은, 미움이란 감정을 바탕에 깔았을 때 비로소 온전히 드러나는 것이기에, 그 미운 감정을 '그르다'하여 가려냄은 옳지 않다(사랑과 미움은 서로 짝이 된다, 이 둘은 서로 붙어있는 '동전의 앞 뒷면, 손 바닥과 손 등'처럼 불가분 한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사랑과 미움은 서로가 서로를 드러나게(해원相生) 하는 것이다,
이로써, 상반된 것 중에서 어느 한 쪽의 가치가 사라지면 다른 한쪽도 자신의 가치를 지닐 수 없고, 드러낼 수 없게 된다, '미움의 감정'을 대하는 우리의 (마땅한) 태도를 일컬어, 석가세존은 자비라 하고, 예수는 사랑과 긍휼을 말씀했습니다. 즉, 왼 빰을 맞으면 오른 뺨도 내 주어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도 주어라, 5 리 길을 같이 걷자하면 10 리 길이라도 같이 걸어주어라...이해하기 힘든 이런 말씀들은 다 '깊은 뜻(=矜恤;가엾이 여김)'에서 나온 것입니다. 세상의 부정적인 모습을 대할때, '깨달은 내'가 마땅히 지니고 삭혀내야 할 '방편으로서의 지혜(=연기법)'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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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a. 이런 설명을 할 수 있어야 깨달은 사람이고, 정각(正覺)을 한 사람인 것입니다. 성경 속 예수님의 난해한 말씀들은 프란체스코 (前)교황도 깨치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b. 중용(中庸)은 영어로 'the golden mean'입니다. 대저, 가운데(또는 중간선)를 안다는 것은, 양쪽 극단을 다 알아야만 중간이 어딘지도 알 수 있습니다. 중용을 '매사 적당한 線'정도로 이해한다면, 거기에 '크고 깊은 뜻'이랄게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세상의 모든 양극단적 가치의 어느 한 쪽만을 떠받들지 아니한다 로 이해할 때, 중용은 연기법,자비,상생과도 뜻을 같이하면서, 인류최고의 지혜로 거듭 태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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