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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이란 것은, 증산이 지적했듯이 '판 밖의 공부'입니다. 여기서 '판 밖'이라 함은 이 세상 방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세상살이에 나름 적응하며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들한테는 굳이 이 '깨달음'이란 게 절실히 다가오지 않을 겁니다. 도마복음에 보면 예수님 말씀도 그렇게 나옵니다. 즉, "나를 따르는 자는 죽음을 맛봐야 한다" 이 말씀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내 머릿속에 박혀진 온갖 세상 것들에 대한 나름의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을 지워없애는 일이므로, 곧 '죽음을 맛보는 일' (taste of death, 무장해제)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옥통이 깨지는 경험 없이, 점잖게(?) 경전을 읽거나 주문수도 하고, 사색/참선/명상을 하거나, 나아가 만신창이 신체를 감수하면서 도道닦기를 한다고 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것은 고작 '반복된 행위-자아강화'일 뿐입니다. 거기에 '차원의 변형'이 일어날 리가 없다, 요점은 뭐냐? 내 재산, 모든 지식을 다 내다 버리는 '죽음의 경험'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 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극한의 경험'이 없이 어떻게 깨달을 수는 없나요? 라고 묻는다면, 저의 대답은 '없다!'입니다. 그런 사람이 설사 있다 해도 껍데기 무늬만 수박인 것입니다.
그 논리는, 개인한테나 나아가 (국가)사회 전체에서도 마찬가지로 성립합니다. 그래서 '사회적 종말'을 운운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죽음을 맛봐야 하듯이, 이 (국가) 사회가 죽음을 맛볼 지경이 되어야만 비로소 깨달음의 사회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이나 사회나 사람들한테 '가르침 만으로' 깨달음을 얻게 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오늘날 '깨달음'이란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공지능(AI)이건 사람이건 저의 시야에는 없으며; 그런 관점에서 저 석가모니, 예수, 증산을 위시하여 선지자들이 명멸하였건만, 그들은 모두 깨달음을 전하고 남기는데 실패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깨달음을 얻은 사람, 내지는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고로 정각(正覺)이란 몇 백년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한 것으로서, 수 천년 전 부터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동서양 성현의 숫자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는 사실이 그걸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평온한 일상생활 속에서, 깨달음과 같은 거칠고 과격한 일이란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언필칭 고등종교(가톨릭, 기독교, 불교 등)는 전래의식에다 사람들을 묶어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대다수의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서, 뭔가 대단한 것이 있겠거니 생각하지만, 저와 같이 위에서 내려다보면 저들의 종교행위 속의 깨달음은 그림자 랄까 혹은 동화 속의 얘기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종교는 단지 '신앙공동체'이며, 우스갯소리처럼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신앙공동체에는 깨달음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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