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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영장인 '사람의 한계'를 말하려고 합니다. '만물의 영장(靈長)이라 하니, 생각과 감정, 두뇌의 움직임 등이 꽤 많이 자유로운 것 같지만, 동서고금의 성현들은 '우리가 자유롭지 못하다'라는 점을 갈파하였습니다.
저의 책상 위에는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Jiddu Khrishnamurti 1895 ~ 1986)의 저서 두 권이 놓여있는데,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 그리고 '자기로부터의 혁명'입니다. 성현급으로 추앙받는 이 분이 강조한 것도 '자유'였습니다.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통찰입니다. 무슨 말인가? 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는가?
우리는 '배운 것'을 밑천으로 해서 세상살이를 하는 것입니다. 태어나서부터 우리의 두뇌 속에는 배운 것들이 쌓입니다. 그것은 이내 '굳어진 사고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것이 죽을 때까지의 살림 밑천인 것이지요. 사람은 자기가 배운 것, 그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습니다 (=>자기부정을 거쳐야 비로소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음).
마찬가지로, 육식이나 초식 동물들은 모두 자기 어미로부터 생존 방법을 배웁니다. 따라서, 새끼 때 어미를 잃어 사육사가 키운 동물은 야생에 내다 놓으면 먹이를 구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먹잇감이 되어 사라지고 맙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배웠다 해도, 흥미로운 점은, 배운 것 딱 그만큼만 쓸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응용(應用)을 못한다, '배운 그것'을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사람도, 머릿속의 고정관념은 바꾸기가 어렵고, 설사 누가 가르쳐 주더라도 이미 입력된 것은 바꾸기 힘듭니다. (증산'은 그런 것을 '폭이 잡힌다'라고 했는데; 속된 말로, 뻔할 뻔 자, 네가 그러면 그렇지, 별 수 있냐 등)라고 표현했습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처음 배울 때 잘 배워야지 나중에는 못 고칩니다). 머릿속의 것을 바꾼다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시작한다 라는 뜻입니다. 이는, 나한테 어색하고, 혼동(混同)과 실수를 만듭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방식, 새로운 사고를 쉽사리 받아들일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저항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변화는 죽는 것보다 더 어렵다 라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을 '자유롭다'라고 하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자유롭지가 못합니다. 머릿속 고정관념에 묶여서 살고 있다, 그게 바로 나, 자아(自我, self, ego)라고 하는 것입니다. 서두에 언급한 책 말미에는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사람은 자아에 흠집, 손상을 입으면 굴욕감을 느끼는데, 그 굴욕감을 심하게 느낄수록 자유롭지 못하다 (반대로, 깨달은 사람은 설사 욕을 듣더라도 화를 내지 않게 됩니다). 남들이 나한테 하는 지적은 내 자아에 손상을 입히는 것이므로, 나는 굴욕감을 느끼게 된다, 욕설은 물론, 층간 소음, 큰 목소리, 운전 매너 등 크고 작은 모든 지적은 나를 불끈 화나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깨달은 사람'은 어떻게 다르기에 화를 내지 않는 것일까?
깨달음, 그것은 저 피안(彼岸)의 경지입니다. 내 자아를 '참 나'(=내 안의 神, true self)로부터 분리하고, 거리를 떼는 것입니다. 불가에서 다비(茶毘)식을 하는 의미는; 우리 육신은 잘쓰고 버리는 것이다, 입었다 벗은 옷처럼 생각해서 육신을 태워 없애버립니다. 내 몸(육신)은 쓰고 버리는 것일 뿐이다, 마치 연장이나 도구처럼 말입니다. 남들이 거기다 대고 욕을 하고 모욕을 해봤자, 나는 거기로부터 분리(='참 나')됐으니 쿨 ~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크리슈나무르티는 이것을 보고 자기 응시( = 내가 나를 지켜봄/쳐다 봄/ 천장 위에서 내가 내 몸을 내려다 봄...자아와 떨어지는 명상법)' 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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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블로그 글이나 유튜브 댓글에 대해서, 욕설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저는 일체 대꾸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자긍심, 즉 내가 한 일에 대한 자부심은 (남들의 허튼 평가에) 흔들리지 않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 자아(ego)를 '참 나'(내 안의 神)로 부터 떼어내는 것을 가르켜, 예수님은 '내가 나를 낳는다(bring forth what is within you, 자아를 분리해 냄)'라 하였고; 대학(大學)은 又日新(우일신) 또는 在新民(재신민)으로 표현했습니다. 다 같은 말씀인 것이, 자아가 고정관념에 묶여있다면, 새로워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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