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살아있는 아버지의 자식...'을 설명합니다. (귀신은 없다)

참 나 2022. 1. 2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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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아있는 아버지의 자식'을 설명합니다.

도마복음 3장, '살아있는 아버지'...란 도대체 무슨 뜻인가? 

바로 '참 나'인 것입니다. '참 나'를 모르면, 예수나 부처가 한 말씀은 하나도 알 수가 없다,

내 안의 심층 근원의식, '참 나'=아버지 하나님=만생명 공통의식(성령)을 말합니다.

내가 살아있은 즉, 내 안의 '본주(本主, 하나님) 또한 '살아있는' 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내가 죽으면, '살아있는 아버지'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며; 죽음이란 곧 무생명(=意識 X)이니, 귀신*도 없다. 

 

귀신(현상)은 머리가 지어내는 환상(幻想)작용이다;  귀신은 실체가 아니며, 과학적으로도 실체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공포(恐怖)를 느끼게 하고, 도피(逃避)를 일으킴으로서, 인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비상경고등 역할)'

진화(進化)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귀신은 실제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알면, 잠재의식에서 작동하던 귀신의 '쓸모있는 역할'은 끝나버리고 말 터이니,   

① 웬지 불길한 느낌이 드는 곳을 삼가한다거나, 으슥한 곳에서 냅다 튀어 도망치는 일,

② 잠자리에서 팔, 다리가 꼬이거나 깔려서 피가 안통할 때, 가위(귀신, 저승사자 등장)에 눌려(놀라서) 깨어날 때와 같은,

생존, 신체보전(保全)등에 긴요(緊要)한 기능은 작동하지 않을 터이다;  

이리되면, 비상경고등(공포, 위급상황에서 도피 - fly mechanism)이 망가진 것과 같으니;  이런 얘기를 하여,

귀신을 소멸시켜 버린다 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아니면 부질없는 일인가?  '양쪽'을 다 알고 있어야 하리라. 

 

'자식(children)'이란 말은 무엇인가?  부모가 낳은 (그런) 자식 얘기가 아니다,

내 안에 거(居)하시는 본체인 하나님을 '아버지(Father)'라고 하였은 즉,

그 아버지가 '육화(肉化)한 존재'로서의 나...를 '자식' 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다른 말로는, 대아(大我, 하나님 아버지)와 소아(小我=나, 아무개) 와의 관계라 해도 마찬가지다, 

더 확장하면 나 뿐 만이 아니요, 산 생명체는 모두 다 '살아있는 아버지(하나님)의 자식' 이로다,  

 

2. '너희가 스스로를 알지 못하면 너희는 가난 속에 살고, 가난 그 자체다' 를 설명합니다.

'내 안에 모셔있는 '참 나'인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이 말 뜻을 읽어내야 하는 데,

결국은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가짜 나'이다, 왜 가짜라고 말하는가? 

자주 변하면서, 새로워져야 할 대상이기에, 그것은 '가짜(=假我)'일 수 밖에 없다, 

 

이제부터는, 내 '자아'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지 말고 부려먹어라, 

내 안의 '투명하고 밝은 진리(='참 나)'가 비춰보여주고 (좋게) 인도하는 대로, 내가 나를 이끌어간다면,

 

① 굳이 세상살이의 '욕구충족' 행위가 아니더라도, '기쁨과 평화'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며,

게다가 그 '욕구충족'이란 것은, 아무리 가져도 부족한 것이니, '가난 그 자체' 라고 한 것이다,

즉, 가난은, 내가 (가진 것이) 없어서 가난한 것이 아니요, 욕심이 많아서 가난한 것이로다.

 

② 내 삶의 부(富,풍요)는 누가 만들어 주는가?  지금의 내 몸, 내 의지가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나 말고 어느 누가, 나를 부양(扶養, 먹여 살림) 하리오?

따라서, '공급의 원천(the source of my prosperity)'은 바로 나 일 수 밖에 없다;  그리되려면, 나의 

습관, 버릇(=가난의 원인)을 죽여없애라;  '묵은 나'를 끌어안고서는 '새롭고 좋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를 새롭게 뜯어 고쳐라(=인간개조!), 그리하여,

'나' 로 하여금 부(富, 풍요)의 공급원천(source)이 될 수 있도록 부려먹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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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표현이 과(過)하였지만, 나를 고치고 개조(改造)하는 이 엄청난 일은, 어디까지나 '서서히' 바로 잡고

또 고쳐나가야 합니다, 이는 평생에 걸쳐서 하는 일이요, 이로써 하나만 고치더라도 '길'을 간 것이니, 

그 길에서의 완성(完成)이란 없다;  같은 맥락에서, '해탈(解脫)'이라는 것도 '제한적인 의미'일 뿐이다,

즉, 일상의 현실과 담을 쌓고, 마치 구름 위에서 노니는 듯한 모습은 추구할 바가 아니다, 

인생살이란, 때로는 착하고 때로는 악한 '나(=假我)'...가 수행(遂行)하는 것이니,

일견 기특하고, 일견 사악하도다,  이런 '나'를 달리는 말(馬)처럼 잘 부려먹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