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2

"신(神)에게 선과 악이 있을까?" 에 답변

참 나 2021. 2. 27.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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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이 사그리 없다면, 선은 그 좋음의 가치를 더 이상 구가하지 못한다: 평범하고 지루한 일에 불과하다,
선(善)이 사그리 없다면, 악은 그 나쁘다고 하는 욕을 더 이상 먹지 않는다; 평범하고 지루한 일에 불과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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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없다면, 천당은 딱히 좋다 라고 할 것도 없는 당연하고 평범한 곳 이리라.
천당이 없다면, 지옥은 딱히 나쁘다 라고 할 것도 없는 늘 지지고 볶는 것이 일상인 곳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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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상반되는 것(=價値)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의 빚'을 지고 있다,
한 켠은 그 반대 켠이 있음으로 인해서 자신의 빛깔(肯定,否定)을 얻고 있는 것이니,
한 켠 만의, 또는 반대 켠이 없는 자신만의 절대가치('분리의식'이라 함)는 존재할 수 없다,

'한 켠이 빛깔을 얻기 위해서는 반대 켠이 반드시 필요하고 또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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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상보성(complementary)이며, 색상(色相)으로는 보색관계와 같다,
불가에서 전하는 연기법이니, 상반되는 것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존재하는 것 이다,
예수(의 사랑), 부처(의 자비), 증산(의 해원상생)이니, 모든 종교의 핵심이로다,
더 이상 없는, 최상의 지혜라고 한 「반야심경」의 메시지(=색즉시공 공즉시색)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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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에게 선과 악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래와 같습니다.

 

a. 선(善)이란 것은 오직 악(惡)이 함께 있을 때, 상대적 개념으로서 선(善)이라 말하는 것 뿐이요,

b. 악(惡)이란 것은 오직 선(善)이 함께 있을 때, 상대적 개념으로서 악(惡)이라 말하는 것 뿐이다.

 

선, 악이 어느 한 쪽만 있게 된다면, 그것은 무색무취한 중성(中性) 내지 자연상태('있는 그대로')인 것으로서,

반대 짝이 없는 그런 선, 그런 악은 없다. 즉, 존재하지 아니한다     

이런 맥락에서, 반야심경은 생(生),노(老),병(病),사(死)의 온갖 것을 사그리 '없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즉,

삶에서의 고통과 시련을 단지 고통일 뿐으로만 여기지 말라, 왜냐하면

a. 삶에서의 기쁨과 즐거움(의 가치)을 오롯이 알기 위해서,

b. 고통없는 일상의 안온(安穩)함을 느끼기 위해서,

c. 고통 너머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고통과 시련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와같은 이치를 깨닫게 되면  「반야심경」을 활연관통하고, 득도(得道)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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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신(神, God)을 정의합니다.  신이란 것은,

기독교 등에서 말하는 저 푸른하늘 어딘가에 있을 법한, 흰수염을 날리는 그런 '인격신'이 아니라,

너와 나를 포함하여, 생명있는 모든 것에 내재(頭腦 內在)하는 '알아차림-순수의식'(awareness, '참 나', 제8 아뢰야식)으로

정의(定義)합니다.  따라서, 귀신과 인격신은 신(神)이 아닙니다.  단지, 사람들의 잠재의식(상상/환상/환영)은,

원시시대부터 그런 것들을 머릿 속에서 그려내고, 그것이 실재(實在)하는 양 생각해 왔습니다.    

(註: '순수의식'이란 것은, 대상에 대한 일체의 고정관념/선입견/편견이 떨어져 나간 의식)

 

「반야심경」의 고통/괴로움이 없다...이 말은, 연기법으로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본문의 중복...)  

사람이 살아가면서 고통과 괴로움은 누구나 다 겪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쁜 것 만이 아니요, 없어야 할 것만도 아니다.  왜냐하면,

'고통과 괴로움'을 겪어내야만 비로소 평범한 일상의 '기쁨과 즐거움'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일상의 소소함과 평범함, 산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은,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만 비로소 알게 된다, 

'삶의 이치'가 그러하다, 어찌 고통과 괴로움을 없애야 할 대상으로만 여길 것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