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아오면서) '신비적 경험'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현대물리학이 탐색하는 신의 마음' (The Mind of God)의 저자 Paul Davies 의 말( 한 뜻, 1994, p.316)입니다.
이 말은, 내가 겪은 일들은 다 설명이 가능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라는 뜻인 데, 이는 독단적, 무지
한 생각이다. 좀 '안다' 하는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단견(短見)이고, 영적으로 무지한 발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과는 무슨 말을 더 나눌 수 있으랴?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또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아닐까?
여기서 반전합니다. 그게 아니라, "일상의 모든 것은 다 신비롭다, 신비롭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다"...
이것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으로서 하는 말입니다. 'Paul Davies' 의 일상이나, 나의 일상은 대동소이할 터이다,
그런데 그처럼 다른 말을 한다,
사람/사물을 대하는 방식이 과거의 틀에 박히면, 세상은 똑같은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다, 삶이 그러하다,
일상(사람과 사물, 사건)을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 그동안 어떻게 대해 왔느냐? 거기서, 흥미롭고 가슴뛰는
삶이냐, 아니면, 지루하고 따분한 삶이냐? 그것이 갈라집니다.
세상은 자작자수(自作自受),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철칙이기 때문에, 내가 짓지 않은 일은 결코
나 한테 돌아오지 않는다, 즉, 내가 만들어서 내가 먹는 것이다.
내가 베풀고, 내가 한 그대로 나 한테 돌아온다, 그것이 '세상이치' 다.
그러니 어떻게 하란 말이냐? 예(例)를 들어봅시다.
내가 대하는 사람과 세상만물, 바로 그 첫 대면(대면)부터 이런 신비체험은 시작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고 사람과 사물을 대한다 라는 것이지요.
현재 '나의 의식'을 얼마나 바꿔칠 수 있는가? 다르게 운용할 수 있느냐?
그걸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처럼 낡고 오래된 집에서는 곰팡이 냄새만 날 수 밖에 없다,
결국, '나'로 부터의 시작이다, 내가 어떤 새로운 의식으로 세상을 대하는가?
이 지점에서, '신비하고 가슴설레는 세상' vs '따분하고 지루한 세상' 으로 나뉘어 진다.
내가 웃는 얼굴로 대하면 상대방(=세상)은 웃어 줄 것이다. 그 반대로, 내가 지루하고, 따분한 얼굴로
상대방(=세상)을 대하면, 세상은 그런 모습(=에너지, 파장)으로 나를 대할 것이다,
이 말은, 내 생각,의식, 기분에 따라 세상이 나를 대한다...!
이것이 신비(神秘)가 아니고 무엇이랴? 당신의 얼굴표정부터 당장 바꿔라! 그리고 시험 해 보시라!
그리 해 봤는 데도 세상이 따분하고 지루하다, 틀에 박혀있다...라는 말씀을 하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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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여기 글들은 예삿 글이 아니다, 글을 읽는 당신의 '자아'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꾸짖고 질타합니다.
자아(인격)는 고정불변(fix)한 것이 아니라, 항상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변해야 한다,
그렇게 자아를 갖고 놀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때가되면 흔적도 없이 소멸되고 마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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