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사는 일'만큼 쉬운 일이 있으랴?

참 나 2019. 10. 29. 14:22

이 세상을 사는 일, 또는 이 세상에서 살아 남는 일은 제일 '하기 쉬운 일' 이다.


나는 수 억 년의 생물 진화 과정에서 살아 남은 존재다.

내가 이렇게 살아남았다는 것은 거친 자연계에서 멸종의 위기를 다 겪어냈다는 뜻이다. 

그 사실은 나의 유전자에 차곡차곡 새겨져 있을 터이다, 나의 생존 밑천은 그만큼 두둑한 것이다. 

'생존바닥'에서 나는 그만큼 경쟁우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나는, 천적(天敵)이라 할 것도 없다. 내 스스로 죽지만 않는다면 (자살 따위),

암, 중대질환(고혈압, 당뇨, 심근경색, 고지혈증 따위), 관절염, 그 외 불치/난치병에 시달리거나,

교통사고, 부주의로 인한 사고, 괴한의 침입, 남들과의 다툼, 전쟁 또는 자연재해와 같은 불가항력적

일들이 아니라면 내가 죽음을 두려워해야 할 일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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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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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장, 울타리 너머에서 아줌마 여럿이 걸어가면서 자기들끼리 입씨름이 한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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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너 말투가 퉁명스러워 (기분 나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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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기분 나쁘다' 라고 얘기하면, "내가 그랬냐? 앞으로 말을 좀 부드럽게 해야겠네..." 하는 정도로 마무리

하면 됐을 것을, 끝끝내 변명을 하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상투적인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내가 내 결함이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이것은 내가 상대한테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확신)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설사 용서를 받지 못하더라도 크게 괘념치 않는다는 자기긍정심이 필요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나 한테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1. 이제부터 나의 그 잘못/결함/습관을 고쳐야 한다...라는 마뜩찮은 과제를 떠 안은 것이다,

   나의 자아(自我, ego) 한 귀퉁이를 '들어낸다' 라고 하는 엄청난 공사를 벌여야 하는 것이다,  내가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나는 다시 태어난다(日新)' 라는 거룩하고 기특하고 마땅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그걸 해 내는 인간은 드물다, 


2. 나는 어디로 도망 칠 구멍이 없다, 


따라서, 아무리 명명백백한 증거, 방금 있었던 일, 누가 들어도 뻔한 얘기일 지언정 상대방은 '그게 아니다' 라고

항변하는 것입니다. 말 해 주는 사람도 무턱대고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이런 심리상태까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신의 잘못이나 결함을 절대로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고성방가를 하건,

새벽에 떠들며 걷기운동을 하건, 아파트 층간소음을 일으키건, 상대 손이 부서져랴 악수를 세게 하건 다 똑같다, 

내 정체성(正體性, identity), 내 정당함은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한다, 그래서 '내로남불' 현상이 일어납니다.


자존감, 자긍심이 있는 사람은 잘못을 지적받고 자아에 흠집이 좀 나더라도 여유가 있지만, 이미 자존감이 상처난

사람들은 그런 걸 못견뎌 합니다. 내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익숙치도 않거니와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다,   


자기 자신(외모/성격/행동)에 대해서 불만인 사람, 많은 경우의 여자, 이미 잘못을 저질러서 죄의식을 가진 사람,

코너에 몰려있는 사람, 몸이 아픈 환자들은 몰아부치면 안된다, 그들은 이미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 사람을 건드리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격이 된다, 따라서 폭발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날 죽여라'...  


에피소드 2.


달리는 차 안에서 옆에 앉은 다섯 살 손주녀석 한테 '너(희)를 봐주는 것이 일' 이라는 무슨 말을 했는가 봅니다.  


"할아버지는 이게 일이야?"

"그럼, 일이지..."


별 생각없이 속 마음을 말해 버리긴 했지만, 생각해 보니 여운이 남는 얘기였습니다. 

매일 손주 녀석 둘 (형5, 아우3)을 하원시키고 나서, 두 세 시간 동안 놀이터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자동차에

태워서 '동네 한 바퀴'도 돌고 하는 그런 게 일이냐? 는 물음입니다. 


손주가 비록 다섯 살, 어린애라고는 해도 어른스런 말을 곧잘해서 가끔 할아버지를 놀래키고 당황하게 만듭니다.

(神明界에선 손주와 할아버지는 '사무적인 관계'가 존재한다고 기록됐겠지요. 손주 녀석은 그냥 말을 달았던 것 뿐인데...


손주, 할아버지는 가족공동체다, '죽어도 살아도 같이 간다' 라는 믿음은 서로에게 든든한 것입니다. 근데 뭣이라, 

'일'을 한다고라?  그게 '현실'이란 것이지요. 머지않아 깨닫게 될 현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이고 부모 자식 간에도 애정과 보살핌이 '전부 다'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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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유행했던 목욕탕 얘기, 아버지가 뜨거운 탕 속에서 "어이, 시원~하다"라고 하는 바람에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그만 혼쭐이 난 아이가, '세상에 믿을 놈은 아무도 없다' 라고 했다는 우스개 소리생각납니다, 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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