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손주는 2015. 4월 생이니 만 네 살이 채 안 되었습니다. 말문이 늦게 트여서, 말을 제대로 한 지가 일 년 남짓
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동생(두 살배기) 손에서 뭘 낚아채듯 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뺏으려고 한 것은 아니고..."
할아버지 앞인지라 자기 행동에 좀 눈치가 보였을 겁니다. 암튼 고단수의 발언이다,그나저나, 넌 이제 다 컸구나,..ㅋ
손주를 '어린이집'에서 하원 시키면,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옆의 도서관에 들릅니다. 보는 책은 한 가지, 공룡...
입니다, 할아버지랑 둘이 앉아서 그걸 들여다보는데, 다섯 살짜리 사내 녀석이 옆으로 다가오더니 공룡 그림을
짚어가면서 이름을 줄줄 욉니다. 파라사우롤로푸스, 프테라노돈, 파키케팔로, 티라노, 브라키오, 밤비랍토르,
트리케라톱스...와! 수 십 개를 외워댑니다. 혀를 내 둘렀습니다. 이 녀석은 아마 천재인가 보다... 했는데, 우리
손주 녀석도 그만큼까지는 안되어도 제법 외웁니다.
아이가 너 댓살 쯤 되니까 사물의 이름을 외우는데,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합니다. 놀라운 학습능력
이다, 물론 한 번 듣고서 척 외운다는 것은 아니고, 몇 차례 들려줘야 합니다. 노래(우리 동요, 외국 동요)도 그렇고...
할아버지도 공부를 해야 재미있게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것도 몰라?"그런 소리 들을 날도 멀지 않았다!
'우리가 생활에서 필요한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라는 서양 책이 있습니다. '유치원'...
도를 닦는다는 것은 세 살배기 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딱 우리 손주 정도 되는...
그렇습니다. 도를 닦아서 어디에 써먹자는 것일까요? 신통력? 마법? 같은 도술을 부리자는 것이 절대로 아니올시다.
도는 심법(心法)이니, 내 마음을 닦는 것뿐입니다. 무얼 어떻게 닦는다? 세 살 이후에 배운 것들은 속세에 타락한 것이니,
그걸 다 닦아내고 씻어낸다,,,라는 뜻이다, 사람이 서로 어울려 지내는데 필요한 것은 세 살배기 의식수준만 있으면 된다,
그 이상 필요한 것은 모두 다 생활의 기술적(technical)인 것들이다, 이는, 동서고금의 성인, 현자, 선각들이 말해 준 것입니다.
결코, 세 살배기 의식수준 이상의 더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두 개 층 이하는 (엘리베이터 타지 말고) 계단을 이용하시오!라고 했으면 그리하면 됩니다. 그걸 몰라서, 엘리베이터를 붙잡고,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안에 타고 가는 사람의 눈치를 (왜) 봅니까? 나이 먹은 아줌마가...ㅠ 세 살배기도 다 아는 것을,
(모든) 문은 열리면 내리는 사람이 먼저고, 타는 사람은 좀 기다렸다 들어서는 것이 맞다, 그런데 왜 아직 내리지도 않았는데
타는 사람이 먼저 들이밉니까? 보행은 오른쪽으로 한다고 했으면 그리하면 됩니다. 교통신호는 또 뭡니까? '빨간 신호등'은
가지 말고 서 있으라는 뜻이다... 그게 그렇게 지키기 어려운 얘기인가요? 그런데, 마음이 급하거나 잘못 버릇(汚染)이 들면,
그것이 정말로 (고등수학처럼) 어려운 문제가 됩니다. 잘 안 지키지요?
정부, 사회단체에서 말하는 선진국 수준의 '기초 생활질서'란 것이, 딱 세 살배기의 의식수준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딴 걸 뭘 가르치고 말고 한답니까? 안 가르쳐도 세 살만 되면 저절로 다 아는 것을...
우리는 고작 사람(?)들과 상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므로 따로 공부할 것이 없다, 우리는 신(神)과 상대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도통(道通)을 한들 큰 능력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세 살배기 아기들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다, 선입견, 편견으로 얼룩진
마음(의식)을 닦고 또 닦아내서 세 살 어린아이 처럼 순수하게 만들자는 것이, 도를 '닦는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노자 도덕경의 마지막 81장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知者不博 博者不知... 聖人之道 爲而不爭'
'(道를) 아는 자는 박식하지 아니하고, 박식한 자는 (道를) 알지 못한다'... 지식이란 것은 누가 더 많이 아느냐를 놓고 다툼이 있으나,
도(道)는 행함이 있을지언정 다투지 아니한다. '도덕경'의 이 부분을, 박식한 '도올'선생이 어떤 표정으로 강의했을지 궁금합니다.
'나 처럼 많이 아는 사람은 사실은 (道를)모르고 있다란 뜻이다...그런 식으로 코미디를 연출했을까요?
도(道)는 지식을 쌓자, 지식을 많이 '갖자'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다, 버리고 또 버리는 것이다, 물론, 먹고사는 데 필요한 지식은
예외입니다. 지식이란 것은 이미 결정된 것, 틀에 박아 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사고의 고정화, 선입견과 색안경을 의미합니다.
다르게 볼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道는 그런 '인식의 고정화'를 거부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대한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
'博者' 즉 지식이 많다는 사람은, 고정화된 인식/편견/선입견/정해진 방식...만을 붙들고 의존하는 사람이므로 -道와는 반대입장-
결국 道에 대해서는 암껏도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뜻입니다. 道는 만물의 경계를 선명하게 긋지 않는다...는 점에서 입자(粒子)가
갖는 '뿌연 경계'와도 같다.
入道하는 사람한테, 기존의 것들을 버려야 한다, 재산/명예/지식을 다 내려놓아라...라고 주문을 합니다. 그러면 상대는 기겁을
하면서, '차라리 날 죽여라' 라며 거부합니다. 道나 敎나 마땅히 넘어야 할 문턱이건만, 지금 그랬다간 죄다 '간판'을 내리고 맙니다.
예수는 그것을 일컬어 '죽음을 맛본다(taste death)'라고 하였고, 반야심경에선 彼岸으로 넘어간다...
물론, 죽음을 맛보고, 피안으로 넘어가고...그런 다음에는 다시 현실생활로 돌아와야 한다, 영원히 넘어가 버리고 만다면 고립, 속세
와의 결별이니,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저 세상 얘기가 된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이 세상'에서 행복하기 위해서 도를 닦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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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모든 가능성을 (偏見이나 정해진 지식이 아니라) 열린 자세로 대하는 도인은, 감수성이 예민하므로, 신통력같은 일을 보일 수
있습니다. 파장, 파동이 공명현상을 일으키는 예를 봅시다. 친구들끼리 모임에서 누군가를 말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이 들이닥치는
놀라운 경험을 드물지 않게 합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라는 속담에 빗대어 '양반은 못 되는구먼'하고 웃어넘기곤 하는데,
순수한 마음 상태에선 그러한 일들(心波의 공명현상)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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