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 도닦기

마음을 닦는다,, 道를 닦는다는 말의 뜻

참 나 2015. 5. 4. 12:06

 

인터넷 검색에서 본,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사물에 대한 인식능력을 높이고/ 신성을 들여다보고/ 본성을 회복하고..."  (? ?)

[Ⅰ]

설명이랍시고 누가 써 올린 글입니다. 뭘 알고 쓴 것인지, 그게 어떻게 '닦는다'는 단어의 설명이 된다는

것인지 설명한 것이 오히려 더 어렵다,  그렇다면 '닦는다'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닦아낸다 라는 말인가


사람과 사물에 들러붙어 있는 '묶은 때' 즉, 선입견/편견/고정관념을 닦아낸다, 씻어낸다 라는 뜻입니다.  
선입견,편견,고정관념(=가치판단)은 내 의식에 들러붙은 '묶은 때'이며, 내가 태어나서 (가령 세 살 이후) 

이 세상의 사람과 사물을 접하면서 습득한 고정관념, 과거경험, 편견 따위인 것입니다. 이걸 다 씻어내야

다...하여, '(계속) 닦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청정, 순수상태가 되어라,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게

되어야 한다 라는 뜻입니다.    


홍익학당의 윤홍식씨가 말하는 '몰라' (난 모른다 고 하는 자기암시)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 앞에 나타난

사람, 대상에 대하여 그 어떤 선입견, 고정관념이 없이, 암껏도 '모른다고 치고' (순수하게) 상대한다,  
 
이게 어디 보통 일입니까?  세상살이란 관점에서 보면 '무장해제'를 당하는 것인데...ㅠ 

그러나 선인들은 이 때 비로소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고 말씀했습니다. (틀에 넣어 보지 말라) 삶이 새롭다,

경이롭다, 지루하지 않다, 기존의 사고방식,틀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새로워 진다(日新, 又日新)도 마찬가지.
 
틀에 박힌 일상, 늘 보던 것, 늘 하던 짓...이런 것들은 결국 (사람과 대상을 대하는) 나의 고정관념이 만들

내는 것이다,  이로써 (그대의) 삶은 맨날 그 모양, 그 타령...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 변화가 없으니...삶이 

짜증나고 지루하고 권태롭다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지경을 벗어나자...!  그것이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내부로 부터의 혁명'이고, 증산선생의 '개벽사상' 입니다.  
 
사람과 대상을 대할 때, 나타난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상대하겠다, 나(ego) 또한 그 대상인 것이니. 선,악과 

양극단을 굳이 가려보지 않는다, 다 나름대로 가치를 인정한다,나툰다... 나의 생각이 들어서면 그 자리에서

신성은 물러난다!  그 반대로 하라, 신성이 들어설 수 있도록 내 생각과 감정을 없이하라, 대상을 새롭게

맞이하라! 바로 처음 만난 것 처럼, 옛 기억은 잊고, 덮어라, 지금 형편에 맞는 제안(提案)을 기꺼이 하라!


이런게 가능한 경지를, 

- 해인 (海印: 잔잔한 바다 위에 비추인 달의 동그란 모습을 마치 도장(印影)인 것 처럼 비유함),

- 명상 (瞑想: 내가 나를 공중에서 혹은 멀리 떨어져서 지켜본다, 나를 객관화한다...탄트라 명상).

- 道  (도: 묶은 때, 즉 선입견,가치관,고정관념을 없이하여 상대함) 를 닦는다...하여

동,서양의 수 많은 도인(道人)들이 목숨을 걸고 탐구하고 설파했던 것입니다.
 
[Ⅱ]
이로써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얼까?

당연히 '기적과 같은 결과'들을 보리라는 것이지요. 기적(과 같은 일)은 실제로 꽤 많이 겪게 됩니다.

삶은, 내 예상대로 전개되는 것이 전부 다가 아니다, 생각치도 못했던 일, 확률상 도저히 불가능한 일, 놀라운

들은 일상다반사로 벌어진다,  연이나, 그 분야는 아직껏 누구도 논리정연하게 설명해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기적(과 같은 일: 좋은 일, 궂은 일 따위)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는 것은 경험상 알고

있습니다.
 
어찌, 신, 하나님의 가호를 생각치 않는, 즉 '내 생각대로 만의 삶'이란게 가능하리오?  
가능한 많이 쌓아놓고 거기에 의지해서 죽~살아가겠다고 한다면 '영혼이 없는 삶'이다, 하나님이 들어 설 

자리는 없다, 신의 섭리와 가호가 없이, 내 계획과 내 의지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교만(驕慢)이지요.  

바로 그 때문에 온갖 '걱정'이 비롯된다,  삶이란, 내 생각과 계획에 국한된 그렇게 초라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역동적인 것이다, 

 
[Ⅲ]

 

우리가 하나님 (신/조화)이 들어설 자리를 허락하기만 한다면 매 순간마다 기적을 보게 될 것이요, 그것이

일상사가 되리라. 그렇게 겪다보면, 道 (닦는) 맛을 알게 된다 는 것이지요.
 

'도(道)를 닦는다, 깨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범상치 않은 일, 가상하고 초월적인 일입니다.
과거 사례가 말해주듯, 젖먹이 때 부터 짐승의 무리 사이에서 자란 인간은 나중에 인간사회에 살더라도

끝내 적응을 하지 못하더라... 이 말은, 영적인 존재, 인간이라도 자신의 성장환경의 지배를 절대적으로

받는다, '인간은 곧 환경의 산물'이라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를 닦는다' 라는 것은 내 성장환경의 영향력을 감히 털어내 버리는 지난한 일, 긴 여정(旅程)인 것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