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사는 얘기

참 나 2004. 4. 18. 08:22

불행한 사람이란 변화를 멈춘 자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된 사람이다.  새로운 것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게 된 자이다.   자신의 굳은 얼굴 표정 만큼이나 굳어버린 사고 방식,  자신의 입장  때문에 변화할 수 없게 된 자, 그는 죽은 자나 다름없다. 그는 불행한 자이다.

 

무언가를 많이 가진 자들은 그 가진 것 때문에  어떤 생각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재물, 명예, 권력...  집착하는 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자, 이룰려고 하는 자... 이 모두가 그 무언가에 묶여 있는 자이다. 그는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가 자유... 자유인... 하고 부르짖지만 진정한 자유란 자신이 소유한 것 으로부터 얽메이지 않고,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고,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을 때 그것을 자유 또는 자유인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정치판을 보더라도 재산을 쌓아놓은 사람은 행여 자기 재산이 다칠새라 진보적인 투표행위를 할 수 없다.  가진자는 보수층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그들 한테는 오직 내 재산, 내 주변환경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 이대로...를 원하는  보수층, 이런 자들과는 좋은 세상을 논할 수 없다.   따라서, 좋은 세상,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엘리트 정치인이라면 기존질서를 유지코자 하는 보수정책 정당에서 뛰쳐 나와야 한다.   

 

사람이 사는 목적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된 사람이 늘 ...왜 사는가?... 하는 회의에 빠진다고 한다. 사랑은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 태어 나기도 했지만 그것이 인생의 전부 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사는 목적에 대하여 얘기하자면 그 목적을 달성했을 때 ... 이제 죽어도 좋은가?... 라고 물어서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질문을 여러 사람, 모든 사람한테 적용했을 때 그렇다!... 라는 대답을 얻는다면 그것이 바로 인생의 목적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 목적을 얻은 후에도 여전히 삶을 추구하려 한다거나 목숨에 연연해 한다면 이는 '궁극의 목적' 이라 말할 수 없다.  어떤 일로 한이 맺혀 있던 사람이 그 일이 해결되었을 때 ...이제 죽어도 좋다... 이제 여한이 없다...라고 말 하더라도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심경이 그렇다는 표현일 뿐...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삶의 궁극적 목적은 다름아닌 '존재해야 한다는 그 절체절명의 과제 자체' 에 두어질 수 밖에 없다.   '삶... 목숨...' 이야 말로 다른 그 어떤 목적과도 바꿀 수 없는 궁극의 절대가치...라는 것을 인식한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와 같은 한가한 질문을 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