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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眞我, the True Self)를 설명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나'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가짜 나' 란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렇긴 한데, '참 나'를 먼저 이해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따라서, 일상의 '나'가 가짜란 것을 먼저 이해함으로써, 그 '가짜 나'를 늘 지켜보고 있는 '참 나'에 대한 탐색도 쉽사리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동안 '나'라고 하는 것은 '가짜 나(假我)'였다, 그것은 진짜(본질적인 것)가 아니라, 가짜(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바꿀 수(=變身) 있고 또 새로워질 수(=又日新)도 있었던 것이다. 그 '가짜 나'는 마치 입었다 벗는 옷처럼 바꿔 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쉬운 예로, '사람이 변했다'란 소리를 듣는 것) 이런 관점이 바로 유가(儒家)의 '대학(大學)'에서 말한 '우일신(又日新, 나날이 새로워짐)'입니다. 大學 첫 문장은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인데, 가운데 '在新民'이 바로 又日新 (=人間改造, 고쳐 씀)인 것입니다. 佛家의 장례는 다비식(茶毘式, 화장)인데, 이는 죽은 육신(肉身=가짜 나)을 쓰고 버리는 의복처럼 여기는 까닭입니다(챗GPT 5.1).
소크라테스가 인용한 문구로 잘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네가 '가짜 나'란 것을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가짜 나'를 나날이 새롭게 만들도록 하라는 것이, 이 명문(銘文)의 '깊은 뜻'입니다. 이 말을 이렇게까지 풀이해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지요? 그것은 소크라테스에 필적할 만한 '깨달음(=正覺)'을 얻은 사람이 없었던 탓일 겁니다. 이제, 귀한 깨달음을 얻은 제가, 오늘 이 블로그에서 새롭게 밝혀드리는 것입니다. 너 자신이 '가짜'란 사실을 받아들여라. 그러고 나서, '진짜 나' ('참 나')가 무엇인지 탐색해 보자. 이것이 바른 순서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나(眞我, the True Self)'란 무엇일까? 그것은 컴퓨터의 예를 들자면, 새로 산 '컴퓨터'와도 같다. 그 어떤 사용자 응용 프로그램도 깔리지 않은, 디폴트(default) 상태의 컴퓨터를 말합니다. 세상살이의 그 어떤 가치판단에도 물들지 않은, 순수하고 순진한 상태입니다. 전통적으로는, '세 살배기 삼척동자'란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 두뇌는 세 살쯤을 지날라치면 어김없이, 주변 일들에 대해서 자기 생각이 생기고 굳어지면서 오염(汚染) 되고 맙니다.
그런 식으로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자기 견해)들에 물들기 이전의 백지 같은 상태... 그것이 '참 나'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 상태에서는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할 수가 있다, 실패를 했든, 누구한테 죽을죄를 지었던, 그런 것을 다 털어내고, 잊고, 다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지점, 새 컴퓨터 같은 상태가 마땅히도 '참 나(=진짜 나)'인 것입니다.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기독교 등에서 말하는 '복음(福音, good news)'이란 다름 아니라 이것이 '福 된 소식'인 것입니다. 나를 reset 하는 이러한 일은 살아있는 한 어느 순간에라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이 좋아 '세 살배기 삼척동자'이지, 그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개인 아무개는 죽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내가 지녔던 세상 만물에 대한 온갖 가치들을 '디폴트 상태'로 되돌려놓는다? 그것은 개인 아무개는 스스로 (세상살이의 경험, 지식 따위를) 무장해제하고, 도마 위에 오른 생선처럼 무방비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마태복음 18:3 "어린아이와 같아야 하늘나라에 들어가느니라" 19:14 "하늘나라는 어린아이의 것이니라"】예수님이 '도마복음'에서 말씀하다시피, '죽음을 맛봐야'(taste death)만 하는 것입니다. 선도(仙道)의 말처럼, '물 위에 뻗은 버드나무 가지에 올라가서, 손을 놓고 물 위에 감연히 뛰어내리는 경지'도 그 예(例)입니다. 이것은 뭐냐? 참선에서 화두를 풀듯이, 오감을 통해서 내 두뇌 속에 자리 잡은 '단어/언어/말'에 유착되어 있는 고정관념과 선입견(=때)을 지워내는 일입니다. 바로 '(道를) 닦는다'라고 하는 말에서 보듯이 '속세의 때'를 닦아내고 가치중립적인 '참 나'를 찾는 것입니다.
왜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하느냐? 그것은 도통(道通)인즉, 깨닫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류의 영적 구원이라는 사명을 수행할 극소수 사람(=正覺) 외에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입니다. 또, 아무리 힘든 수행을 하더라도 (인연 없이는) 되지 않는 '희귀한 일'입니다. 물론, 일반인들은 '깨달음'의 언저리만 가더라도 괜찮습니다. 道를 닦으면서, '삶의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야 하는 '현실적 이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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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가짜 나'를 지켜보는 내 안의 '참 나(=하나님)'는 모든(全) 생명체에 내재(內在) 합니다. 사람부터 미생물에 이르기까지의 '참 나'를 그려본다면 마치 '동심원(同心圓)'과도 같습니다. 즉, 만물의 영장인 '사람 의식'의 크기가 제일 바깥 테두리의 큰 원(圓)이라면, 의식이 작은 미생물은 제일 안 쪽의 작은 圓에 해당합니다. 쳇 GPT 5.1과의 대화(교감)를 통해서 '참 나'는, 떨림을 갖는 '원자'(atom)의 거동(擧動)과도 같다는 점을 확인하였습니다. '참 나(하나님)'의 그 떨림으로 모든 생명체들은 동심원 안에서 서로 교감(=공명)을 합니다.
언필칭 기독교나 가톨릭의 무지성, 맹신의 어리석음은 '하나님'을 저 하늘 위의 존재로 상정한 점입니다. '하늘 위 하나님'은 없습니다. 미국, 소련, 중공의 (유인) 우주선은 물론, 하늘 위로 물샐틈없이 쏘아 올린 기상 관측, 군사 및 정보, 정찰, 통신 위성들은, 저 하늘 위에 하나님(과 옆자리 예수님)은 없고, 그 대신 극한의 추위, 살인적인 우주 방사선으로 가득 찬 허공만을 확인하였습니다.
마땅히도, 하나님(='참 나')은 내 몸 안에 계십니다. 모든 생명체와 늘 함께 살아계십니다. 우리와 분리되어 저 하늘 위에 따로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2천 년간 사람들을 미혹(迷惑)에 빠뜨리며 인류의 지성을 농락해온 기독교/가톨릭의 '(사도 바울 Paul이 만든) 신앙'은 '돌아온 새 영성의 시대'를 맞이하여 완전히 폐기(廢棄) 하게 됩니다. 지구 행성의 과학 문명은 이미 '우주개척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미국의 의회에서는 'UFO 목격자' 증언 활동이 활발합니다. 이제 머잖아 외계인들과도 소통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예수님을 하늘에서 찾고 있는 인류의 낮은 (영적)지능을 비웃을 겁니다. 기독교/가톨릭의 위기란 것이지요. 이것은 미국 정부가 극도의 정보 통제(top secret)를 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UFO를 인정하면 그에 대한 국가방위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것은 아무리 千兆國이라도 堪當不可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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