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유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를 추구하는 삶

참 나 2021. 1. 1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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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엇(what)'을 추구하는 삶이란, 보통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평범한 삶이다.  '대상과 조건'을 중요시한다.  

2. '어떻게(how)'를 추구하는 삶이란, 대상과 조건은 크게 중요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즐긴다. 

나한테 주어진(given) 대상과 조건을 '어떻게' 잘 쓰고, 운용할 것인가에 주안점(主眼点)을 둔다.

 

아무리 좋고 귀한 물건이라도, 운용(=사용, 관리)을 잘못한다면, 그것은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일 뿐이다.

게다가, 아무리 '새 것'이라도, 내 수중에서 3일 만 지나고 나면, 이내 '헌 것 내지 중고품'이 되고 만다. 

 

'무엇(=대상과 조건, what)'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은, 물질 그 자체(=hardware)를 중요시하므로 생명력이 짧다. 즉, 

나(내 방식)의 문제는 없고, 오로지 대상에 대한 호불호(好不好, 좋다/나쁘다)만 존재한다.  타박과 불평,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그 반면에,

 

'어떻게(how)'를 추구하는 방식은, 물질적 가치보다는 주어진 그것을 어떻게 잘 유지, 관리할 것인가?

여기서는, 대상이나 조건에 대한 '불평, 불만'은 진즉에 사라지고 없다.  오로지 내 방식

(=어떻게 잘 관리를 하느냐)의 문제 만이 있을 뿐이다.   

삐까 번쩍하는 고급아파트도 청소를 안하고 산다면 그것은 '더러운 집'에 불과할 것이다.

그 반면에, 오래된 집일지언정, 쓸고 닦고 고치고 산다면, 나름 괜찮은 주거환경이 되리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이, '사람'인 경우에는 '어떻게(how)'가 더 심중(중요)해 진다. 

내 상대(배우자/부모형제/자식/친구/주변사람...)가  싫거나, 설사 나쁜 사람(것)이라 할지라도,

그걸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내가 여하히 이들을 상대하느냐?

힘들고 어렵지만, 내 마음을 돌려먹는, 그 방법을 찾아 실천해야 합니다.  

 

상대가 (나 한테 저지른) 잘못을 깨닫게 되리란 기대는 도무지 허망한 것이다, 

상대가 아무리 형편없고, 불합리한 언행을 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 보다는, 차라리 내 생각을 바꾸는 것(만)이 백 방,천 방으로 보더라도 가능할 따름이다.

상대에 대한 복수라든가 증오하는 마음일랑은 우리가 즐길 수 없는 사치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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