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이제 깨달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참 나 2020. 8. 2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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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子年(올 해) 초, 난문 중의 난문인 반야심경의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을 드디어 해독했노라며

흥분했던 몇 주가 흘러갔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자유게시판 (천태종은 '글쓰기' 를 못찾음)

그 시끌벅적하기로 유명한 '일베' 정치/시사 토론장에도 수 차례 올렸습니다.

본인의 Naver 와 Daum '블로그'에는 물론, 다른 까페 몇 군데에도 올렸습니다.

앞으로 저의 글은 지속적으로 여러 사람들(또는 단체)에 보내 질 것입니다.

신문 지상에 나온 유명인사들, 기타 힘닿는 대로 여러 사람들한테 보여지게 될 것입니다.

 

2주일 동안, '도사연'(然)하는 두 사람의 조심스런 댓글을 본 것이 전부 다 입니다.

천 수 백명이 조횟수를 올렸으나, 대부분은 무슨 소린지도 몰랐으리라. 처음 보는 얘기니까

모르는 것이다, 뭔 소린지 모르는데 댓글을 달 수 있으랴?  '쇠 귀에 경 읽기, 바위에 물 주기' 다,

 

이는 예수, 석가를 비롯하여 선인들이 겪어야만 했던 바로 그 상황이로다, 

진리를 설법했는 데, 그 자리에서 척 하고 알아들었다면 그건 이미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어제, '노천' 지음, '사람의 道 하늘의 道' (한솜미디어 刊) 라는 책을 다시 펴 보았습니다.

자칭, 도통상제, 미륵 대상제, 대두목, 참 진인...이라는 사람인 데, 수행하다 죽었다 깨어나기를

밥 먹듯이 하고, 인간으로선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기도수행을 많이 했다고 하더이다,

자기를 만나면, 다섯 번의 절을 해야 한다 라는 사람조차도, 반야심경의 '색즉시공'을 설명하는 데,

성철스님의 잘못된 비유를 인용하더군요, 즉, 아인슈타인의 '질량불변의 법칙'을 얘기하더라!

담배연기가 공중에서 사라지는 것, 그것이 '불생불멸'을 말해주는 것이다 라고라? 그런 게 아니지요! 

부처의 생과 멸, 공과 무...이런 얘기는 다 관념(=고정관념, 선입견)의 세계를 말한 것입니다.

 

예수나 석가를 빼고는, 이 세상에 제 아무리 잘 났고, 도를 닦아서 도통을 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연기법'에 대해서 '한 줄'의 설명은 할지언 정, 둘째 줄부터는 그만 삼천포로 빠지고 말더라, 

다 들 그리하더라,  하여, 깨달음(=정각)에 이르지 못한 안타까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스타 강사, '법륜'이 부증불감을 설명하면서 "비행기 안에서 화장실을 갔다 왔다고 해서 비행기 무게가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 헛소리는 이미 지적했고, 도올선생은 스스로가 체계화된 견해가 없노라고 했고,

자칭 진인(眞人), 허경영은 뭘 좀 알까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연기란 '원인과 결과'라고 헛소리를 하더라,

비단, 연기라는 단어 만이 아니다.  종교상의 핵심단어는, 그것이 '자비 또는 사랑'이란 개념과는 어떻게

연결(=直結)되는지를 말(=說明)해야 한다,  

언필칭 지식인들은, 자기 지식을 전달은 할 지언정, 깨달음에 있어서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이로다,

가소로울 뿐이다 라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이는, 본인들 스스로가 알 터이다.

 

그렇다면, 남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내용을 이렇게 열심히 설명하는 것은 무슨 연고(緣故)인가?

'진리'라 해도, 일반인 한테 돌아갈 몫이 있고, (전문)수행자-지도자들의 몫이 있을 터이다. 즉,

일반인들 한테는 일상생활에서 부분 부분, 조금씩 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

세상이치에 대한 이해의 폭을 조금 건드려 줌으로써 섣불리 강팍한 생각과 행동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수행자들은 더 들어가야만 한다, 폭넓게,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확고부동한 앎을 갖추고서 중생을 제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뭔 소린지는 알았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 내용을 다 소화(消化)해 낸다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

연기법? 그거 모르고도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무시하고 넘어간 들 뭔 일이 있겠나? 그런 생각도 당연하다,

부처님의 연기법이나 '자비', 또는 예수의 '사랑', 증산의 '상생'을 얘기할 때, 만약 사람들이 알아듣고

반응, 감동, 감격했다면 그건 이미 '속세(俗世)'가 아니다!  

원래, 이런 얘기는 저 건너편(요단강을 건너 감) 세상인 '피안, 즉 '판 밖'의 얘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는 '피안으로 건너가자'라고 주문을 합니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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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뭔 얘기인 줄도 모르면서, 서툰 댓글을 다는 일반인 (아직 그런 사람은 없지만) 이나,

​이런 글을 봤어도 댓글을 달지 못하는 수도자,도사,선승들도 '무정견(無定見)'이긴 마찬가지로다,

종교/명상/철학/정신/사상계에서, 이 글(='반야심경은 연기법 얘기')에 감응할 사람이 있을 것인가? 

기다립니다. 여기에 제가 쓴 해석은 '자기완결적(불교의 핵심인 자비, 연기를 설파해 냄)' 이므로,

잘못이 될 수가 없고, 반론 역시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도마복음'에서, 네 안에 빛이 있으면 밖으로 비쳐 나올 것이다,

높은 산 위에 튼튼하게 지어 진 성은 무너지지도 않고 멀리서도 잘 보인다,

향 싼 종이에선 향 내가 난다...고 말씀 하셨다.

 

그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사람들이 나한테 접근해 온다, 그것도 호의를 갖고...

내 모습이 접근하고 싶은 느낌을 갖게 만드는 것이리라. 지나가던 사람이 말을 걸고, 뭔가 물어도 보고,

이런 저런 제안도 한다.  이런 일이란게 내가 바랜다고 되거나 생기는 일이 아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 어떤 40대 남자가 길거리에서 말을 건네오는데,  

"어디서 테니스를 하세요?" (운동 후, 집으로 오는 길인데...) 

또 다른 사람;  "옆의 6번 코트에서 같이 치세요. 거기 모임은 오후 두 시 부터 일주일에 네 번 치는데,

틀림없이 에이스로 치시게 될 겁니다"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