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둘 다, 연기법(緣起法)얘기인 바,
제행(諸行)은 삼라만상의 동적(氣)인 요소를 잡은 것으로서 무상(無常)이라 했고,
제법(諸法)은 삼라만상의 정적(理)인 요소를 잡은 것으로서 무아(無我)라 하였다,
【行】
'올라간다'와 '내려간다' 라는 것은 서로 상반된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올라감'이 갖는 가치(value)는, 내려감이 갖는 반대가치(opposite value)에
비춰(照見)봐야만 비로소 자신의 가치를 갖게 (자리매김) 되는 것이다.
즉, 올라감의 '좋다'라는 생각은 그와 반대인 내려감의 '나쁘다'가 있기 때문에
생겨난 가치(value)인 것이다. 그것이 '제행무상' 이다, 즉,
모든 움직임(諸行)의 가치는, 자신 만의 독자적/분리적/절대적인 위상(position)을
갖는 것이 아니다, '올라감'의 가치(value)는 '내려감'의 반대가치에 '종속적'이다.
그 말은 서로 뒤집어 놓더라도 마찬가지이며, 이로써 양 극단은 '상보적'(相補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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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크다/비싸다'라고 느끼는 값(value, 程度)은 '작다/싸다 라는 반대 값과
비교(照見)되었을 때, 비로소 그 위상(位相)을 갖는 것이다,
양 쪽은 서로 분리해서는 자신의 고유한 가치(絶對값)를 갖지 못한다(=제법무아 諸法無我).
작다/약하다/싸구려 라는 것이 있음으로서 비로소 크다/힘세다/비싼 고급이란 '가치'가 생겨난다,
작고 약하고 볼품없는 것이 있음으로서 그 반대작용으로, 크고 강하고 멋있는 것이 '기세등등'한 것이다,
(※걸레가 '더럽다'고 구박하지 말라, '깨끗함'은 걸레가 만들어 주는 것이다: 불구부정)
어떤 '가치'는 독립/분리/절대적으로 그 가치를 향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반대 짝이 없이, 모두 다 '한 편(같은 색깔)'끼리만 있다면,
그 가치는 '사라져 버린다' 또는 '존재할 수 없다' 라는 것이 공(空), 무(無)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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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행(諸行)'과 '제법(諸法)'은 둘 다 '연기법'(緣起法)얘기입니다.
따라서, 반대편/ 부정적인 '가치'를 무시(無視)하고 증오하는 것은 '어리석음'이기 때문에,
'자비'(慈悲)사상이 나온 것이다. 예수님 말씀의 '원수(enemy, 敵)를 사랑(=용서)하라'도 '연기법'이다,
(※ 원수-적이 없다면 친구도 없다. 무턱대고 '증오'를 껴안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를 함으로써 '원수-적'을 만들지 말라! )
증산의 '해원상생'도 같은 얘기다, 즉, '반대가치'와는 '한 차원 위'에서 만나 서로 손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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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은 나를 긴장시킨다. 그렇지만 내 의지와 각오, 실력(대비태세)을 키우도록 만들어 주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
'스타'는 라이벌 덕분에 성장한다. 또한, 크건 작건 '적'을 만들게 되면 내 운신의 폭-입지가 형편없이 쪼그라든다.
'聖雄 이순신'은 임진왜란 때 전사했습니다. 그러나, 저승에서 '豊臣秀吉'과 만나서는 다른 얘기를 했으리라.
"당신은 내 이름을 빛나게 해 준 은인이오. 만약, 당신이 조선을 침략하지 않았다면, 내 이름은 흔적도 없었으리다"
충신(忠臣)은 그 임금을, '효자'(孝子)는 제 부모를, 열녀(烈女)는 지아비의 이름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늘의 태양은 부지런한 농부와 게으른 농부한테 '차별없이' 골고루 빛을 내린다. 그러나,
부지런한 농부는 풍작을 해서 '하늘에 감사'를 올리고, 게으른 농부는 흉작을 하고는 투덜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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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법'은 세상의 '숨은 이치(理致)'입니다. 그래서, 피안(彼岸, 요단강 건너감) 또는
'판 밖의 공부'라고 한 것입니다. '깨달았다' 라는 것도 본인이 제일 잘 알 수 밖에 없다.
■ 일체개고(一切皆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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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힘들고 괴로운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며 살 것인가?
그 대답이 '연기법'입니다. 고(苦)를 싸그리 없애고 살 수도 없으려니와,
그리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상반(相反)된 가치인 고(苦)와 즐거움(樂)은 상보적(相補的)인 것이니,
그 둘은 같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삶이 생동감(=즐거움/행복감)을 얻게 되는 까닭이다.
고(苦)가 있음으로서, 속세인 여기가 바로 '천국'(天國, heaven)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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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총명하고 똑똑하다'(=훌륭하다) 라는 그 '좋은 가치'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못났다,찌질하다 라는 '부정적인 가치'를 배경으로 깔고 성립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무의식적 選好) 이 때, 그 못나고 찌질한 것을 '싸그리 없애버리자' 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걸 보고 '어리석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
나를 잘 나 보이게 만들어 준 그 '배경(背景)'을 걷어 치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없애지 말고 냅둬야 한다(=慈悲/相生), 그래야 '잘난 나'가 계속 드러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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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사람'과 '못난 놈'의 예를 들어서 '연기법'을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람 그 자체를 두고 말한 것이 아니라,
잘났다 또는 못났다 라고 하는 '가치판단 (=色/고정관념/편견) 부분 만을 말한 것이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山은 山, 물은 물)인 것이고, 많은 가능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어떤 역할을 할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저 놈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라는 생각/표현은
옳지 않다. 즉,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훌륭하고 잘난 가치를 (음지에서) 만들어 주는 것이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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