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중용(中庸)을 다시 봄

참 나 2018. 10. 12. 23:08

                     

中庸(중용):
1. 어느 쪽으로나 치우치지 않고 中正함.  
2. 공자의 孫子인 '子思'가 지음(편찬).  禮記의 한 편이었으나 後에 四書의 하나가 됨.
儒敎의 종합적인 解明書.  용(庸): ① 떳떳할  ② 쓸 용(用)  -漢韓大事典,東亞出版社-

■ 요(堯) 임금이 순(舜) 임금한테 전수해 준 핵심:
人心은 위태롭고 道心은 미묘하니 오로지 정밀히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그 中을 잡게 되리라,  '

인심유위 도심유위 유정유일 윤집궐중'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 中庸章句序, 大學.中庸 p.123, 育文社 19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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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中庸'을 다시 꺼내어 본 것은, 신문에서도 흔히 인용하는 '중용'(中庸, golden mean)이란 단어가,

과연 '적당한 처세' 정도에 그치는 개념인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정도의 의미

만으로는 너무 내용이 없다, 그 다음에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 라고 했을 때, 그 '쪽'이란 것이 

과연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가운데를 알려면 양쪽 끝을 알아야 하는데 그게 무엇인지를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이는 필시, 중용(中庸)의 깊은 뜻을 놓치고 있는 것이리라,  

과연 그랬습니다. 
세상이나 사람, 글 등은 자신이 아는 만큼 보인다, 

오래 전 中庸을 읽을 때는 人心, 道心이 뭔 얘기인지도 모르고 읽고 넘어갔었지요. 그러나 道를 터득하고 

나서 다시 읽어 본 즉, 人心이란 단어는 自我(假我, 俗)요, 道心(本性, 聖)은 '참 나'를 말한 것이더라,  

中庸, 즉 '치우치지 않는다'란 말은, 무엇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냐?
인심(人心), 도심(道心) 의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는 뜻이다,    
따라서, '중용의 삶'이란 먼저, 그 한 쪽 끝인 道心을 알아야 하는데 이는 道를 닦고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그 후에는, 속세의 사고방식(俗)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道心(聖,本性)에 치우치지도 않는다, 

인심(俗)에 매몰되면 어떻게 되는가? 삶에 전전긍긍 (탐,진,치貪,嗔,痴)하는 겁니다. 
도심(聖)에 치우치면 어떻게 되는가? 삶이 삭막해 집니다. 현실에서 보기 힘든, 근엄하고 위선적인 
모습일

겁니다.  이 양 극단을 다 알고, 살피면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모습을 '중용(中庸)'이라 한다,  


  "반드시 道心으로 내 몸의 주인을 삼고(=侍天主) 人
心이 道心에 순종토록 하게되면, 

   위태로운 마음은 안정될 것이요, 이로써 미묘한 것이 드러날 터이니(=造化定), 

   言行의 과(過)함과 불급(不及)함도 없어질 터이다"   op.cit, p.124


- 착한 것이 좋다고 하여, 악한 것은 전부 없애 버려야 한다고 하지 아니하고,

- 지혜로움이 좋다고 하여, 어리석음을 전부 없애버리려 하지 않는다또한,

- 옳은 것이 좋다고 하여, 그릇된 것을 모조리 외면, 배척하지만도 아니한다, 

- 이쁘고 아름다운 것이 좋다고 하여, 미운 것을 전부 없애버리려 하지 않는다,

- 깨끗한 것이 좋다고 하여, 더러운 것을 지나치게 협오하지 않는다,

- 인의예지신, 충효열, 진선미 와 같은 속세의 가치들을 받아들일 때, 한 쪽 극단에 열광(熱狂)하지 아니한다,

 

결국, , 양 쪽을 다 알아야만 가능하다... 것입니다따라서, ()를 먼저 터득한 후에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여 속세(此岸)의 삶을 영위할 때 '중용'의 삶도 실천할 수 있다 는 결론이 됩니다.


그러고 보니, 위에 인용한 '漢韓大事典'의 중용이란 낱말 풀이가 '너무 피상적'(皮相的)임이 드러났습니다. 

이것이 또한 이 시대의  '좀 안다' 하는 사람들의 빈곤하기 짝이 없는 인문교양 수준이기도 한 것이로다, 

허다한 종교, 중용 등의 가르침은, 깨달음을 핵심으로 하는데 오늘날 사람들은 뭔소린지도 모르고들 있으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이로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는 그냥 우스갯 소리가 아닙니다.   
교육계엔 스승(들)이 없고, 종교판엔 제대로 행하는 수도인이 없고, 정치판엔 정치인이 없습니다.

왜 그런가? 논문표절, 컨닝, 상납, 담합 등이 말해 주듯이, 어렵고 힘든 과정, 정통파 등의 진짜 알맹이는

죄다 빠져 버린다, 이는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구축한다' 는「그래샴의 법칙」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즉, 굳이 어렵게 갈 것이 없다, 쉬운 길로 가자, 그게 요령이다, 효과적이고 경제적이다 하여, 외형(스펙,간판,

매출액)위주, 속도위주로 가고 있다. 허위/기만/속임수가 횡행하는 '사상누각'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대사회 문명(대중의 인기로 전개되는 정치판을 爲始)이란 것은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위태위태하니,

속 불가능(unsustainable)하단 것입니다.  또한 현대의 삶은 불안한 것이니 사람들이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예언서에도 이재전전(利在田田, 이로움이 마음의 밭(심전)을 경작

하는 데 있다)이라며 수도(修道)를 권하였고, 누구든지 도(道)를 닦지 않으면 미쳐 환장하여 살 수 없게 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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