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행에 대한 절제]
불언장단(不言長短)에 얽힌 이야기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젊은 선비 황희는 들길을 가다가 밭둑의 나무 그늘에서 쉬었습니다. 바로 그 앞의 밭에서는 늙은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늙은 농부는 두 마리의 소를 부리고 있었는데, 한 마리는 검은 소이고 한 마리는 누런 소였습니다.
황희는 소 두마리를 바라보다가 늙은 농부에게 외쳐 물어보았습니다.
"여보시오, 두 마리 소 가운데 어느 소가 더 일을 잘합니까?"
늙은 농부는 이쪽을 바라보더니, 밭을 갈다가 말고 황희에게 걸어 왔습니다. 농부가 황희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말했습니다.
"누런 소가 일을 더 잘해요. 검은 소는 가끔 꾀를 부리지요"
황희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으나, 늙은 농부의 태도가 이상스러웠습니다.
"어찌하여 여기까지 오셔서 귀엣말을 하십니까?"
"모르시는 말씀!"
농부는 손을 내젓더니, 다시 황희의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아무리 소라고 하더라도, 제 흉을 보면 좋아하겠소?"
"아아, 그래서……."
황희는 늙은 농부가 귀엣말을 한 이유를 알았습니다.
늙은 농부는 젊은 황희에게 큰 깨달음을 안겨 주었습니다.
'짐승도 제 흉을 보면 싫어하거늘, 하물며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그 뒤부터 황희는 한 마디의 말이라도 조심하였습니다. 농부가 준 교훈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p.s.듣기 싫은 말은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함이 마땅하지요. 역사의 인물인 황희 정승조차도 처음부터 인품이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연단의 과정을 겪었단 얘기지요. 누구나 실수, 잘못을 하기 때문에 서양 격언에도
"To err is human, to forgive divine"...사람은 실수를 하게 마련이고, 신은 용서를 하게 마련이다)
[아량]
막 출발 하려는 기차에 간디가 올라탔다.
그 순간 그의 신발 한짝이 벗겨져 플랫폼 바닥에 떨어졌다.
기차가 이미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간디는 그신발을 주울수가 없었다.
그러자 간디는 얼른 나머지 신발 한 짝을 벗어 그옆에 떨어 뜨렸다.
함께 동행하던 사람들은 간디의 그런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를 묻는 한 승객의 질문에 간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신발 한 짝을 주웠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에게는 그것이 아무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머지 한 짝마저 갖게 되지 않았습니까?"
어떤 가난한 사람을 배려하는 간디의 박애정신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모든이를 가족으로 생각하여 따뜻하게 보살피는 넓은 아량을 알 수 있습니다.
(p.s. 지갑을 잃고 속상해 하는 자식한테 엄마가 새 지갑을 하나 사 주었습니다. 잃어버린 돈 만큼을 넣어서...)
[사랑]
어느 병실에 두 사람의 환자가 있었는데 한 사람은 창 쪽에, 한 사람은 벽쪽에 나란히 누워 있었습니다.
벽 쪽의 환자가 답답해할 때면 창 쪽의 환자는 바깥 풍경을 열심히 설명해 주곤 했습니다.
막 꽃봉오리를 터뜨린 꽃나무의 이야기,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기와 젊은 엄마의 이야기...
시간이 지나고 벽 쪽의 환자가 퇴원을 할 때 창 쪽의 환자가 항상 바깥풍경을 얘기해 준 창 밖을 내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보게 된 것은 높다란 붉은 담벼락 뿐이었습니다. 그동안 창쪽의 환자는 벽쪽의 환자를 위해 이웃의 사랑과
친절을 배푼 것이었습니다.
(p.s '마지막 잎 새'... 앙상한 나뭇가지에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는 마지막 잎 새를 그려넣어 환자의 희망을 잃지 않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효도]
임진왜란 때, 일본에 ‘사야가’라는 무사가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무사 수업과 더불어 글도 열심히 읽어 문무를
겸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야가는 선봉장이 되어 우리나라에 상륙하였다.
그런데 진격하는 도중에 신기한 일을 목격하였다. 그것은 어떤 농부 가족이 피난을 가는 광경이었다. 수많은 왜군이
조총을 쏘며 달려들고 있는데도 농부는 늙은 어머니를 업고 농부의 아내는 보따리를 이고 아이의 손을 잡은 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산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 광경은 시야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저렇게 어질고 착한 백성들을 해치는 것은 성현의 가르침에 어긋나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밤을 고민한 끝에 사야가는
자신을 따르는 군사 500여명을 이끌고 우리나라에 귀순해 왔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효도를다 했던 것이다.
강태공은 “내가 부모를 효로써 섬기면 자식이 이를 보고 배울터이니 나에게 효도를 할 수 있을 것이요, 내가 부모에게
불효하면 자식이 이를 따라 할 터이니 어찌 나에게 효도를 하겠는가?” 하고 했다. 공자는 “삼천 가지 죄가 있다.
그 중에 불효의 죄가 가장 크다.”라 했다. 효도는 ‘백행의 근본’ 즉, 백 가지 행동의 근본이다.
[공경]
옛날 인도에 기로국(棄老國) 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 에서는 사람이 늙으면 지게에 져서 먼 곳에다 내버리는
풍습이 있었다.
어느 날, 힘이 센 이웃 나라의 사신이 재 한 상자를 내놓으며 "사흘 안에 이 재로 새끼를 꼬아 보내시오. 만약 사흘 안에
'재로 꼰 새끼'를 보내지 않으면 당장 쳐들어오겠소!“라고 으름장을 놓고 돌아갔다.
나라 안은 온통 근심에 싸였다. 아무리 궁리해도 재로 새끼를 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 약속한
사흘이 닥쳐왔다. ‘이제는 망했구나 우리가 재로 곤 새끼를 안 보내면 저들이 쳐들어올 텐데, 힘이 약한 우리가 어떻게
당해 낼 수 있단 말인가?’ 나라안은 초상집 같았다.
그 때, 한 사람이 “여러분, 우리는 아무리 애를 써도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니 혹시 우리가 져다 버린 노인들에게
물어보면 무슨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라고 의견을 냈다.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재를 담은 상자를 가지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노인들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이야기를 듣고 난 한 노인이, “걱정할 것이 뭐요, 새끼를 불에 태우면 되겠네. 재로 꼰 새끼나 마찬가지 아닌가?” 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기로국은 이웃나라의 침공을 면하게 되었고 그 뒤로는 노인들을 져다 버리지 않고 공경하게 되었다.
노인을 공경하는 이유는, 그 분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사회 발전을 위해 애를 썼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겪을 수 없는
값진 경험과 그로 말미암아 터득한 지혜와 슬기를 지닌 분들이기 때문이다. 『잡보장경』卷 1.4, 2.14
(p.s '재로 꼰 새끼' 얘기는 나라의 조정 대신들과 중국 사신들과의 지략을 겨루는 자리에서 나왔던 얘기로 알았는데,
인도 棄老國 얘기라는 군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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