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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십 년 전에는 저게 나이더니, 팔십 년 후엔 내가 저인가?"
서산대사( 西山大師 1520~1604)가 선조 37년 임종 시, 묘향산 원적암에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한 뒤, 당신의 진영(眞影)을 보고 위와 같이 써놓고는 앉은 채 입적(坐脫) 하였다; 禪家龜鑑(선가귀감, 서산대사著, 법정譯, 弘法院, 1976 개역 2판)의 해제(p.11)에는 그렇게 써 있습니다. 법정 스님이 합장(合掌)하고 올린 그 해제(解題, 1971版)에는 이 '임종게'에 대한 해설이 없습니다. 감히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깨달음을 얻은 제가, 서산대사의 임종게를 설명하겠습니다.
"팔십 년 전에는 저게 나이더니" 살아생전(깨닫기 前)에는, 저 그림을 보면 '그게 나'라고 여겼다(=그림과 나를 同一視함) 어디 내 모습뿐이랴?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욕을 하거나 칭찬을 하면, 그것이 곧 내 마음을 뒤흔들었던 것이다. 이런 外物(형태)과 나를 동일시하는 일은 내 소지품에까지 두루 적용이 됩니다. 세상의 모든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이 다 그러하듯이,
"팔십 년 후엔 내가 저인가?" 이제, 깨달음을 얻고 나서, 나를 그린 그림(사진)을 쳐다본즉, 내가 저(것) 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즉, 나라는 주체는 여기 그대로 있고(如如), 나를 그린 그림은 (나와) 분리되어 저 먼발치에 따로 존재하는구나...'내가 저인가?' 이 말씀은 뒤집어도 마찬가지인즉, '저게 나인가?'로도 성립합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그린 그림과 나 자신을 동일시(同一視) 하지 않는다... 한 발 더 나아가면 그림의 대상(피사체)이 되었던 내 육신(몸뚱아리)은 내가 아니다... 란 말씀입니다. 내 육신이 내가 아니다 라면 도대체 뭣이 나란 말인가? 여기서 '참 나'가 등장합니다. '참 나'가 바로 나 다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나(=참 나, 순수의식, 영성, 하나님)는 저 그림이 아니다, 그뿐 아니라, 나에 대한 평판도 마찬가지로 내가 아니다, 그런 것들은 다, 내 그림자일 뿐이다. 나의 본질은 '참 나'이며, 그것은 인간의 오욕칠정(희로애락애오욕)을 떠나서, 오로지 '순수의식'으로만 존재하는 나 로다, '참 나'는, 내 안에서 나를 지켜보는 관찰자(觀察者)로다, 생명의식 그 자체다. 사유(思惟)가 이 지점까지 와닿아야 비로소 '깨달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산대사는 자신의 진영(眞影)을 쳐다보면서 "내가 저것인가?" 라고 자문자답을 하셨던 겁니다. 과연 스님의 마음속 대답은 어땠을까요? "아니야, 내가 저것은 아니지, 저것은 내가 잠시 뒤집어 썼던 껍데기였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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