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 】내 안에는 '속세'와 '천국(하늘)'이 다 있다!
이건 또 뭔 소린가?
먼저, '속세'라고 한 것은 일상의 삶 입니다. 어쨌든 살아가야만 하는 이 세상살이를 말합니다.
그것은 누가 경영하는 것인가? 당연히 자아 즉 '가짜 나(fake self)'가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안의 '천국(하늘나라)'이란 것은 또 뭔가?
그것은 '참 나(true self)'다,
'참 나'는 일체의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 의식(알아 챔) 그 자체입니다.
대중강연을 하는 어떤 이는 그걸 보고 '느낌'이라고 하더라. '느낌'이라 하더라도 알아챈다 또는 '와 닿아서
자아가 반응하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합니다. 그러나 자아의 생각과 감정(가치판단: 맞다 틀리다, 좋다 나쁘다 )이
관여하기 전 까지가 '참 나' 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느낌'이란 표현은 자아(가짜 나)에 더 가까우니 맞지 않는 것이다,
'참 나'는 거울 처럼, 스크린 처럼 내 생각/감정/오감의 현상태는 물론, 세상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비춰줍니다.
비춰 (보여)주기만 한다! 뭘 하라거나 말아라 하는 지시나 행동은 일체 없다. 오로지 보여 줄 따름이다.
거기까지가 참 나 = 하늘 이다. 그 어떤 주의나 주장, 선입견,고정관념이 없으니 '순수의식' 이다, 그것을 일컬어
'밝다(明)'고 했습니다. 객관적 (너와 나, 삼라만상을 초월하여 공통) 이므로, 넣고 뺄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가
다 투명하게 비추인다,
비춰 드리워진 그 상(像,의식)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것은 개체(個體, 자아, 가짜 나)의 선택이고 감당할
몫이다, 그것이 업장일 수도 있고, 혈액형 일 수도 있고,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될 수도 있고, 각자의 인생관이 될
수도 있고, '가방 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 생각은 가족/친구/이웃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부지불식간에
떠오른 그 어떤 영감(靈感)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쥐 죽은 듯 가만히 있는 것을 포함하여, 나의 일상은 고스란히
'속세의 일' 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늘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른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이란 얘기지요.
'심판'은 내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영혼'이란, 내가 주인되는 자리다, 행여 외적인 신(神)의 개입 따위를 내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주파수 동조, 感應)
누가 감히 나를 심판하리오?
내가 알지도 못하는 '하늘'이 느닷없이 나를 심판한다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서도 안된다, 그것은,
나는 알곡인가 쭉정이 인가?
그것은 누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미 다 알고 있다! 심판은 '평소에'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참 나'가, '이것이 바로 네가 하고 있는 짓' 이라며 비춰 보여주어도, 못 보거나 또는 무시 (자기기만 自己欺瞞,
p/s
도를 닦는 목적은,
- 가짜 나인 '자아'를
- '참 나'로 부터 어떻게 떼어내서
- 내 의지대로 잘 통제하게 만드느냐? 그겁니다.
내 몸(육체+자아, 안이비설신의)이 내 말을 잘 듣도록 만드는 것이 도(道)를 닦는 목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 나'와 '가짜 나'를 구분(separate, bring forth)해 낼 줄 알아야 합니다.
'가짜 나'인 자아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한, 나는 길거리에서 감각운전을 하듯이 삶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에 일희일비하고 휘둘리면서 살아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멸망으로 가는, 넓은 길' 인
것입니다. 그리 되지 않으려면, '가짜 나(육체+자아)'를 떼어내서 내 콘트롤 하에 둘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좁은 길, 도(道)닦는 길입니다. '탄트라瞑想'(비그야나 브하이라바 탄트라)도 그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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