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제아무리 난해한 경전도 결국 이 셋 중의 하나

참 나 2018. 2. 16. 13:07
'반야심경'은 도대체 뭔 말을 전달하려는 것인가?  세 가지의 관점이 떠올랐습니다.  

1. '참 나' (眞我
, 하나님,道,하나,圓, 天, 根源, 本主, 主, 本性, 海印, 神明, 이뭣꼬, 主宰者, 1...etc.)의 관점

  '참 나' 란 것은
 시작도 끝도 없으며,
  내 머릿 속에서 일어나는 의식작용인 '참 나'는 거울, 스크린과 같이 밖에서 일어나는 일과 내 (떠오른) 생각 등을
  비춰서 보여 줍니다. 
  아무런 가치판단과 선입견, 고정관념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일컬어 '순수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삶의 현실에 직접 나서지는 않는다. 
  나서는 것은 자아(自我,'가짜 나')의 역할입니다. 자아는 누가 뭐래도 내 삶을 이끌어(경영) 나갑니다. 
  자아는 자유의지(自由意志)로 그렇게 하는 겁니다. 다.  
  따라서, 운명,숙명 따위도 '자유의지'로서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2. 만물은 '대립자'
갖는다는 관점 (연기緣起)
   음(陰)과 양(陽)이 대표적,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이것(對立子)을 말했다고 봅니다.
   한 쪽이 생기거나 스러지면 반대쪽도 생기거나 스러진다, 이것은 항상 쌍으로 생기고, 동시에 멸한다,
   불가의 연기(緣起)란 뜻입니다. 우리의 인식구조가 이처럼 생겨 먹었기 때문에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양 극단의 어느 한 쪽은 분리하여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이니, 좋다 싫다 라고는 할지언정 다른 한 쪽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이것이 '참된 인식' 이며, 사랑, 자비, 상생...을 뜻하는 것니다.

3. 만물은 그냥 존재할 뿐인데 사람 마음이 늘 헛된 것(空)을 만들어 붙인다,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의 관점
   
반야심경에 '색수상행식 역부여시' 즉, 보고 듣고 느끼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다 그러하다. 
   이 말은, 사람들은 세상 만물을 제멋대로(주관적으로) 대한다 란 얘기입니다. 
   있는 그대로(객관적으로) 보고 듣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 사물(의 가치)을 대할 때, 결코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는 기막힌 말씀인 것입니다.
    불구부정, 부증불감, 불생불멸... 이 말은 존재(대상)의 가치를 받아들이는(인식하는)데 있어서의
   주관적 오류를 지적한 것입니다.
 
   더럽다 깨끗하다...가치인식은 '원효의 해골바가지 물' 사례에서 이미 알기쉽게 나와 있습니다. 이 설명은 건너뛰고,
   '부증불감'...늘어난 것도 줄어든 것도 아니다, 
   객관적인 어떤 대상이 실제로 늘고 줄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대상에 부여한 가치인식이 널뛰듯 변한다 라는
   뜻입니다. 같은 대상이라도 어제는 엄청 크게 보였다(增)가 오늘은 유난히 작게 보인다(減)면, 그 늘고(증) 줄음(감)은 
   내 마음 작용 탓이다.  곳간에 쌀이 그득하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불생불멸'...생긴 것도 사라진 것도 아니다,
   객관적 존재는 실제 그대로 있는 것인데, 그 대상을 대할 때 내가 느끼는 '가치'가 어느 때는 더 크게, 어느 때는 아주 
   초라하게 보이기도 하는, 찧고 까부르는 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위의 세 가지 관점은 진리, 깨달음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반야심경, 모든 경전, 제아무리 난해한 고전의 말씀이라도 결국 이 셋 중의 하나를 말한 것이기 때문에,
   이들을 각각 대입해서 추리해 본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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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하나님 또는 성부, 천주님, 神...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정리해 봅니다.  하나님(하느님 또는 하늘)이란게 무언가?

1. '인격신'(人格神) 으로서의 하나님
   좋은 일 한 사람한테는 상을 내리고, 나쁜 일 한 사람한테는 벌을 주기도 하는, 저 높은  하늘 어딘가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처럼 마음을 쓰는 존재로서의 하나님,  사람들은 일이 잘 안되면 원망도 하고 자기한테  좋게 해 달라며 
   복을 빌기도 합니다. 
   기독교 등에선 인간과 세상을 다스리는 창조주, 조물주로서 전지전능하다고 인식합니다. 각각의 종교단체는 
   '나 만의 하나님'을 모십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은 여럿'이 되는 모순을 낳으므로 잘못인 것입니다)   

2. '자연의 섭리' 로서의 하나님 
    종교와 관련없는 사람들은 '자연현상, 자연의 이치와 섭리' 로서의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3. '참 나' 로서의 하나님.
    위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새로운 '하나님' 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하나님' 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인간을 포함, 전 우주 생명체에 공통적으로 내재하는, 순수한 생명의식(알아챔)으로서의 '참 나', 신명...입니다. 
    삶의 전면에 나서지 않습니다. 순수의식은 파동체(波動體)로서, 공명현상을 일으켜 현실에 작용하면서 기적과 같은
   일을 일으킵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라든지 우연의 일치 라는 것들은 이와같은 의식의 공명현상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동,서양 공히 이것을 하나님(하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과 양립하기 힘든 이런 고차원적 개념을 
   정확히 깨닫는 사람도, 전해주는 사람도 없거니와, 설사 정확히 말했다 해도 속세의 사특한 필요에 의해서 배척당하면서
   '하나님'을 왜곡되게 인식해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 (고전 3:16-17) 16 너희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 문장은 '참 나' 로서의 하나님과 '자아 (하나님의 성전인 육체, 너희 안에 계시는 것)'
   의 관계를 말한 것입니다. "너희는 다 신들이니라"  I have said you are gods (요한복음 10:34, 시편 82). 이 때 너희라 말한
   대상은 아무개 나, 즉 생각,감정,오감을 지닌 자아를 가르킨 것이 아니라 생명의식의 단위인 '참 나'를 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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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어머니 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여자이며,
한 사람의 여자 이기에 앞서 인간이자 동물이며,
인간이자 동물 이기에 앞서 하나의 생명체이며,
하나의 생명체 이기에 앞서 '의식(알아챔, 가치판단 없는 순수의식, 상像을 띄워 보여주는 스크린/거울)'이다, 
 
이렇게 '참 나(순수의식)'를 에워싼 양파껍질(인연)들을 하나 씩 벗겨내면 '근원(根源)'에 도달합니다.
이것을 역으로 접근한 것이 천부경(天符經).'일적십거무궤화삼'이다,
* 一積十鉅無櫃化三: '참 나'인 하나가 열 겹의 옷을 겹쳐 입고 제각각 형상으로 나오니 비로소 사람이니라.
.
생각이 이쯤에 이르면 이제 그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게 된 것이다 (시천주.侍天主)
우리 모두, 우주의 만물,만상은 '하나의 의식'을 공유하는 개체(個體)들인 게로구나, 
'근원'으로써 하나인 그 의식을 일컬어 '참 나'(=하나, 하나님, 주님...)라고 하였다, 
.
'세수 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 처럼 쉽다'... 그러나,
이해를 했더라도 결실을 맺는 이는 천 또는 만 명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하다고 하였으니, 이는 깨달음을 얘기한 것이다. 
그나마, 뭔 소린지는 알겠노라...고 하는 사람은 깨달음의 초입에 들어선 것이다,  이런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이 공부는 죽을 때 까지 계속가야 하는 길(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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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지기(浩然之氣): 우리가 전쟁터에 나선 병사처럼 죽기를 각오한다면 두렵거나 걱정할 일이 무엇이랴?
 
남의 얘기라면 총명한 사람도, 자기 문제를 얘기한다고 하면 '멍청이, 귀머거리' 가 되고 맙니다. 
'지혜의 말씀'을 듣고도 뭔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고, 굳이 더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왜 그런가? 
남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납득하고 이해했다 라는 얘기는, 다시말하면 내 문제점을 고쳐야 한다는데 수긍했다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뭘 고친다 라고라...?  나는 그럴 의사도 없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었더라도 못 들은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그 '좋은 말씀'은 오른 쪽 귀로 듣고, 왼 쪽 귀로 흘려 버려야 한다...안 그러면 나는 매우 불편하고 불안해 진다,
나는 지금껏 내가 생각하던 방식대로 살아 가야 편하다...내 묵은 습관이 강력하게 저항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  
(그렇게 고치면 난 어린애가 되어 죽을텐데...???) 그쯤 될겁니다.
 
그런즉, 말이나 글 로는 또는 스승으로 부터는 결코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라는 불립문자(不立文字) 얘기가 나온 것입니다. 
깨달음은, 내 스스로가 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그로써 일어나는 내 생활습관, 사고방식을 다 뜯어고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라고 한다면 비로소 첫 걸음을 떼어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개조(改造) 또는 새롭게 태어난다...라는 것이다.
 
내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에 대해서 내 오래된 습관, 자아가 강하게 저항합니다.  내가 변화한다는 것이 어색하고 두렵다,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었다 해도 실천을 하지 못하고, 바위에 물 주기, 쇠 귀에 경 읽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자유의지) 인간을 개조시킨다...는 일이 (아무리 스승 이라한들) 시켜서 될 일이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