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 카아네기' 는 행복의 정의를 '가진 것을 원하는 것' 이라고 했다.
'가진 것을 원한다' 면 이미 내게 있는 것에 만족하여 더 이상 뭘 얻으려 애쓰지 않는 모습이다. 과연 그리할 수 있을까? 우리의 현실이 그런 모습을 용납할 수 있을 것인가!
외국인들은 우리를 보고 한결같이 빠르다, 역동적이다 라고 말한다.
우리들은 왜 그렇게 빨리 달려야만 하는 것일까?
데일 카아네기는 성공에 대하여도 말하였다.
'성공이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다'
쏙 들어오는 말씀이다. 그렇다! 우리들은 그 성공을 위해서 빠르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정의에 따르면, 행복은 과거를 지향하고, 성공은 미래를 지향하는 모습이 된다.
과거와 미래는 접점이 없기에, 성공을 택한 우리들은 행복해지기를 포기한 셈이 되는 것이다. 성공을 추구하는 삶에서도 행복은 있겠지만, 그야말로 순간에 불과한 것이다.
내일 아침이면 또 뛰어야 하기에...!
그렇담 우리는 불행한 민족인가? 행복이란 정의에 따르면 대답은 '그렇다' 이다.
가진 것에 머물러 있을 줄 모르기에, 그것이 행복이 아니기에...우리는 불행할 수 밖에 없다.
성공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 탄 우리는, 거기서 떨어지면 죽는 줄로만 알겠기에 그것이 불행한 것이다.
삶의 목적이랄까 지향점에 대한 생각도 해 봐야 한다.
노는 데 재주가 있는 사람은 놀아야 하고, 공부에 재주가 있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된다.
가만히 있기를 좋아한다면 조용히 살면 될 것이고, 바지런한 사람은 돌아다니면 될 것이다.
진실로 행복을 원한다면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하면 될 것이고, 성공을 원하는 사람은 더 가지려고 남들과 부딪치고 싸워야 할 것이다. 싸움닭은 싸워야 행복하기에...ㅋ
중요한 것은 남의 삶, 지향점이 다른 삶에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이요, 부딪치지 않는 것이며, 돈이 좀 없더라도 업수이 보지 않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각자 편한 삶을 살어야 한다. 연이나 어울려 살자면 서로가 서로를 수긍하는 어느정도의 배려는 불가피해 보인다.
나라가 온통 높은 경제성장을 존재의 이유(목표)로 삼았다면, 그와함께 맞물려 돌아가지 못하는 국민은 내다 버릴 것인가? 다른 나라로 이주라도 보낼 참인가? 그럴 수는 없기에 '단 하나의 목적' 이란 천부당 만부당 한 것이다.
다른 사람도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을...! 경제가 근본이고 중요하다고는 해도 그게 전부 다는 아닌 것이다.
내 잣대로 남을 재지 말라. 나름대로의 만족과 행복한 삶을 위해서...
서툰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으려면 적당히 떨어져 살 수 있어야 한다.
적당히 격리된 삶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임의로운 사람...과연 몇 퍼센트나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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