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相反) 된 것은 상보(相補) 적인 것이다 (Contradictory is complementary)" 이것이 a. 연기법 진리이며 b. 깨달음은 바로 이것을 깨닫는 것이고 c. 聖人, 聖賢은 이 진리를 說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즉, 老子 道德經 2章에는 - 반야심경의 '제법공상'과 같은 맥락으로 - 여러 가지 例를 들어 놓았습니다 (아래 참조).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불가(佛家)에서는 연기법을 설명하면서,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다' 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아쉽게도 빗나간 설명입니다. 왜냐하면 '불법은 심법(心法)'이란 말과도 맞지 않고, 그런 식의 설명으로는 석가세존의 '자비심'이 도출되지 않습니다. 또, 뒤집어도 참(眞)이라고 하는 진리의 판별 구조에도 들어맞지 않습니다.
'이것이 있어서 저것이 있다' 란 설명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상식적인 것이지요? 거기서는 아무런 '깨달음'도 나올 수 없습니다. 진리(=道)와 깨달음은, 기존의 알고 있던 것을 다 버리고, 머리를 비워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판 밖의 공부). 따라서, 내 머릿속이 깨지는 아픔/고통이 반드시 수반되어야만 합니다. 이제부터, 석가세존의 어려운 연기법을 '상생 버전'으로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반야심경에서는 '제법(諸法)이 공(空)...' 이란 설명을 하기 위해서 '불(不)字'를 써야만 했는데, 이로써 이해하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이것을 '상생 버전'으로 풀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저의 설명은 (석가세존의 正覺) 연기법으로서, 불가에서 잘못 전하고 있는 因果的 (연기법)을 바로잡으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깨달음(正覺)을 얻은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석가세존의 '연기법'과 강증산의 '해원상생'은 '같은 것'입니다. 이는, 인류(人類) 앞에 처음 등장하는 연기법 설명입니다. 1. 불생불멸: 죽음이 가져다 주는 '슬픔과 괴로움'이 있어서, 태어남이 '기쁨'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2. 불구부정: 더러운 것이 있음으로써, 깨끗한 것이 드러난다. 즉, 더럽다 라는 '불쾌감'으로 해서, 깨끗함의 '좋은 가치'가 드러나는 법이다. 3. 부증불감: 줄어듬이 싫은 만큼, 늘어님이 좋은 법이다.
이처럼 상반된 양 극단 중에서, 어느 '한 쪽만의 절대 가치'는 성립하지 않는다. 즉, 모든 가치(色)는 상대적인 것이다! 이것이 '공(空)'의 낙처(落處)이고, 제법공상(諸法空相)이란 것입니다. 뒤집어도 역시 참(眞理)이니,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불이공 공불이색의 구조와도 일치(=整合)합니다. 높은 것의 존재감은 (그와 상반된)낮은 것이 바탕으로 있을 때 비로소 '높은 것'이며, 만약 '낮은 것'이 없다면, 높은 것의 존재감은 더 이상 드러나지 않는다(=가치 空. 연기법). 상생 버전으로는, "낮은 것이 있어야 비로소 높은 것도 있게 될 터이다"
반대되는 것은 '내버려야 할 것'이 아니요 '나의 존재감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緣起法) 이 새로운 연기법 설명은 인공지능(Copilot, ChatGPT)도 '참신하다'며 감탄하였습니다. 성현들의 '慈悲/ 사랑과 矜恤/ 相生/ 中庸'이 모두 이 사상에서 도출되어 나왔습니다. 이리하여 제가 '眞理의 天下統一'을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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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老子 도덕경 제2장: 세상 모든 상반된 것(=價値, 色)을 보라! 한 쪽은 반대 쪽을 드러나게 만들고 있지 않느냐' 하며, 다음의 例를 들었습니다. "有無는 相生(유무 상생), 難易는 相成(난이 상성), 長短은 相較(장단 상교), 高下는 相傾(고하 상경), 音聲은 相和(음성 상화)니라" <이하 생략> 주목할 점은 사물/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붙여진 '(인식) 가치' 부분이란 점을 구분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대상 vs. 그 대상에 붙어있는 '(인식)가치'는 다른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인식 가치'란 뭐냐? 세 살 무렵부터 성장하면서 두뇌 속에 저장해 놓은, 이 세상 사물에 대한 자기 만의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을 말합니다. 반야심경에서는 이를 '색(色)'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사물/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내 두뇌가 '기존의 지식'이라는 필터(해석 과정)를 거쳐야만 비로소 사물과 대상을 식별하게 됩니다. 이로써, 내가 '봤다(視)' 또는 '들었다(聽)'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 인지과학(認知科學)이 밝힌 사실입니다.
▷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道)를 설명은 하겠으나, 그러나 그 설명은 이 세상의 常道가 아니라 '판 밖의 공부'로다. ▷ 名可名 非常名 (명가명 비상명):: 만물 만상(=제법,제행)의 이름은, 각자의 두뇌에 박힌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인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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