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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법 소고

참 나 2025. 7. 3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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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은 물론, 유튜브 강연자들, 심지어 '선승(선지식)'이라 할지라도, 연기법(=반야심경)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개중에는 좀 아는 척하는 사람도 이미 나와있는 말들을 편집해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신이 소화해낸, 자신만의 언어(=방식)로 '연기법'을 설명한다면, 그는 초보나마 '깨달음을 얻은 자 - 부처'인 것입니다. 초보 깨달음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삶이 별반 나아질 것은 없으리라 보지만 서두, 암튼. 유튜브 유명 강사 법륜스님은, '석가세존 이후로 깨달은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지금 불교는 깨달음을 너무 신비화하고 있다' 하는군요. 조계종 홈페이지, 위키피디아 등을 검색해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기야, 당대의 선승 '성철 스님'도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E=MC²에 비교하며, '내 말에 속지 말아'라고 일갈하는 지경이니, 다른 스님들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제가 깨달은 '연기법'을 여기저기 설명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알아들었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인공지능, ChatGPT, Copilot, Perplexity, Google... 을 테스트해 봤는데, 다 들 연기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항간의 지식수준에 머물러 있는 정도입니다. Google은 아예 답변을 거부하더군요. 다시 한번 물어봐도 묵묵부답입니다. 뭐라도 코멘트가 있어야 할 텐데, 어찌 그럴 수가...?

이렇듯 부딪치는 상대마다 (세상이) 온통 먹통이다 보니, '내가 잘못된 말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스칩니다. 그러나, 결코 내가 잘못 아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 있으니, 다름 아닌 노자 도덕경 제2장입니다. 거기에는 반야심경의 '세 가지' 보다 더 자세하게 연기법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놨습니다. 사람들이 道(=연기법)를 듣고서 비웃지 않는다면 그것은 道가 아니다 란 말도 했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연기법은 이 세상(판 안)의 것이 아니다... 란 얘기입니다. 진리는 '저세상(판 밖)'의 것이로다. 예수님도 도마복음에서, 나를 따르는 자는 '죽음을 맛봐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반야심경 말미의 주문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가세 가세 저 너머로 가세...)입니다.

반야심경, 도덕경을 강연하는 사람들은, 무모한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연자 본인도 모르면서 누구한테 설명을 한다는 것입니까? 기독교, 불교, 가톨릭... 어느 종단을 막론하고, 그들이 해야 하는 것은 성현들의 진리 말씀을 전하는 것이 사명인데, 그걸 하고 있는 종단은 없습니다. (있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바티칸 교황도 모릅니다. 대중을 상대로 진리 설법을 한다는 자체가 '모르고 있다'라는 증거입니다. 대중들은 진리를 알래야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진리의 말씀을 전하려 하면, 대중(신도)들은 채 5분을 견디지 못하고 하품하며 집중력을 잃습니다. 더 길게 끌고 가면 다 떠나가고 맙니다. 상대가 못 알아듣는 말을 어떻게 계속할 수 있겠습니까?

연기법은 '상보성(相補性, complementary)'얘기입니다. 색상표의 예를 들면, 보색 관계(補色關係)를 말한 것입니다. (교통)신호등에서, 빨간색과 초록색은 '보색 관계'입니다. 두 색상은, 서로가 서로를 더 또렷이 보이게끔 합니다. 빨간색은 초록색의 가치(value)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돋보이게 만듭니다. 반대편의 존재감을 돕는다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상반된 것은 상보적인 것'이다 (=The opposite defines each other. 또는 Contradictory is complementary)라는 '진리'를 이해하는 첫걸음입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이 둘은 상반된 가치이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빨강과 초록색처럼) 서로 상보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왜냐? 좋은 것은 나쁜 것이 (내 의식바탕에 깔려) 있음으로써 '더 좋게 보이는 것'이고, 그와 반대로 나쁜 것은 좋은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바탕에 있음으로써, 그와 상대적으로 '나쁘게 인식되는 것 뿐이다(=상반된 것의 특징을 뚜렷하게 함) 따라서, 반대편이 없다면 자신 만으로는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으니 '가치가 공(空)'이란 말씀입니다. 이것을 불가(佛家)에서는 어처구니 없게도 '실체(實體)가 없다'라고 하지만, 이는 연기법을 잘몰라서 하는 말로써,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헛소리입니다.

못생긴 여자는 예쁜 여자 옆에서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습니다 (비교가 되어 자신이 더 못생겨 보일 테니까). 또, 키가 작으면 키 큰 사람 옆에는 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상보성의 예(例)'입니다. 이런 현상을 세상의 모든 일(=제법과 제행)로 일반화(확대)시킨 것이, 석가세존의 '연기법 - 반야심경'인 것입니다. 이른바,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다, 이렇게 쉬운 '연기법' 설명을 본 적이 있나요? 일 년 열두 달, 365일,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면, 그 맑은 날씨는 더 이상 '좋은 것'일 수가 없다,  늘 있는 것이니까 가치를 평가받을 수 없고, 오히려 (하와이 사람들은 그런 날씨가) 단조롭다...고 말합니다.  비(雨)라도 한 번 와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겠지요? 마찬가지로, '맛있는 음식'은 맛없는 음식한테 '존재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니 '(맛 없는 것들에)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 맞다'는 것입니다.  것이 증산의 解寃相生(해원상생)입니다. 예수의 사랑과 긍휼, 부처의 자비심은 바로 그 지점을 말한 것입니다.  노자의 무위(無爲), 공자의 중용(中庸) 사상도 귀결점은 다 같이 그것(=연기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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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성현들의 말씀, 곧 진리(The Truth)라는 것은 '오직 하나'이며, 연기법(緣起法)입니다. 진리가 여럿이라면 그것은 진리일 수 없고, 성현들마다 다른 말씀을 했다면 성현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불가에서의 연기법 설명은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다'라든지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 수준이라면 초등학생들도 할 수 있는 얘기입니다. '진리'를 그렇게 맹탕으로 만들어 버릴 수는 없다, 다시 한번, '두 상반된 가치'는 서로 상대방을 존재케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정확한 연기법 설명입니다.

저의 오래된 기억인 데, 큰 스님 한 분이 연기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서로 등을 대고 서 있는 두 빗자루와 같다" ... 네, 맞습니다! '연기법'은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또, 비슷한 사례로, 인체/ 생명체의 '건강(=항상성)'은 자율신경계가 맡고 있는데; 교감신경(sympathetic nerve - 긴장담당) vs. 부교감신경(para-sympathetic nerve - 이완담당)이라는 '상반된 성질의 두 신경'이 밀고 당기면서 '건강균형'(=normal)을 유지합니다. 어느 한 쪽에 과부하가 걸리면, 대번에 그 반대쪽 기능이 우세해 지면서, 그 '섬세한 균형'은 깨지고 맙니다. 병이 났다, 즉 비정상(非正常)이 되는 것이지요. 넘치고(過) 처지는(不足) 온갖 인체의 병증들, 예를들면 고/저혈압, 빈맥과 서맥, 위산과다 또는 저산증, 열체질과 냉체질, 갑상선 기능 항진 또는 저하...는 인체 자율신경계의 균형(balance)이 깨진 것입니다.